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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한식날 제자들과의 대화: 축복과 기적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기사승인 2019.04.14  13: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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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남

오늘 팔순 고개를 넘은 내가 제자(弟子)와 모교 캠퍼스에서 만난 감회는 큰 '축복'이라 해야겠다. 거기다 우연찮게 재학생(在學生)들과 강의실에서 만나 대담하는 기회를 가졌으니 큰 행운과 행복이 겹친 날이다.

한식(寒食)인 지난 6일, 갓 정치(政治)길에 들어선 한 제자의 청(請)으로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모교 부민캠퍼스를 처음 찾았다. 2005년에 정년했으니 14년 만에 대학을 다시 가본 것이다. 제자는 85학번이다. 나보다 훨씬 일찍 대학문을 나선 셈이다. 그도 이제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사회인이 되어 '스승'과 함께 모교를 찾았으니 조금은 푸근하게 교정을 거닐고 후배들과 얘기를 나누고, 또 지난 날 그 힘들고 고달팠던 세월들을 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3시간여에 걸친 제자와 나와 재학생들, 그리고 그가 거느린 '식구'들과의 대담(對談)과 대화는 생각보다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나는 틈틈이 20여 명의 재학생들의 맑고 까만 눈망울과 부딪쳤고, 그들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고 토론했다.

한 학생이 "교수의 직업 철학과 윤리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내게 물었다. 또 다른 학생은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바람직하게 되고 있느냐", "그 지향점은 무엇인가"고 제자에게 질문했다. 제자와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느라 땀을 흘렸다. 자그만 강의실은 젊음의 열정과 익어가는 봄의 기운이 넘쳐나는 듯했다.

한 학생이 "교수의 직업 철학과 윤리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느라 땀을 흘렸다. 자그만 강의실은 젊음의 열정과 익어가는 봄의 기운이 넘쳐나는 듯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이날 재학생들과의 뜻하지 않은 대화는 40년 전 1978년 첫 강단(講壇)에 선 기억을 찾아가게 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학창시절의 추억을 불러냈다. 우리의 젊은 대학시절은 질곡(桎梏)의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다. 우리는 4.19혁명과 민주화, 5.16 군사정변과 산업화, 6.3 항쟁과 고도성장, 80년대 신군부 시대와 대학 민주화 등을 겪었다. 이 가파른 고개를 숨차게 넘어면서 개인적으로는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사태 및 기자들의 언론자유실천선언에 이어 정권이 개입한 기자 강제해직(强制解職), 80년 또 한 번의 대학교수 강제해직, 그보다 앞서 6.3항쟁 시위로 인한 구속과 제적(制籍) 등 청년과 장년(壯年)의 아픈 경험들-두 번의 강제해직과 한 번의 제적은 그야말로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심한 '통증'이었다.

한식날 오후 모교 캠퍼스에서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재학생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우리는 강의실과 대학문을 나섰다. 늘 고맙게 곁에서 지켜주는 친구가 이날도 차를 드라이브해주었다. 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기도(祈禱) 아닌 기도를 간절히 했다. 

저들 학생들이 몇 년 후 대학문을 나설 때는 지금처럼 청년 일자리가 모자라 다른 나라로까지 일을 찾아 떠나는 '고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제 10일 정부가 발표한 3월 고용동향을 보면 15-29세 청년체감실업(失業率)은 25.1%에 이르렀다. 사상 최고치다. 4명 중 1명이 실업자 상태라니 그들 학생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머지않아 이 골짜기를 벗어나 '구름에 달가듯' 결혼에 이르고 적어도 아이 셋은 거뜬히 키워낼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런 바람직한 직장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또 제자도 지난 해 6월 입성한 '여의도 정치'를 앞으로도 성공적으로, 그리고 나라가 편안하게 이어가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 소망과 기도는 아마도 스승이라는 사람이, 또 교수라는 직업이 기꺼이 짊어져야 할 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이요 절박한 꿈이 아닐까 싶다.

제자와 그의 전후 학번 동료친구들은 학생 때이던 1979년부터 오늘까지 35년 동안 제자와 스승으로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이 한결같이 지내오고 있어 더욱 더 그렇다. 교수인 나에게는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제자없는 스승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돌아보니 축복도 기적도 우리 곁에 늘 머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4월의 푸른 나무들과 눈 맞추는 것, 바닷가를 걸으며 많은 사람들과 옷깃 스치는 것, 아직은 아침 신문을 펴들고 세상을 보고 때로는 잘못 돌아가는 나라 일들을 걱정하는 것, 이런 글을 매주 한 번씩은 제자들과 친지들에게 보내고, 또 손녀손자들에게는 주말에 편지(weekend letter)를 쓰고 받는 것, 멈추어 바라보면 기적과 축복은 수없이 많다. 우리가 '마음 가지기'와 '마음 닦기' 나름이다. 

그래도 나라 다스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맑은 자세로 정치를 올바로 잘 하고, 경제를 백성들이 허기 느끼지 않게 제대로 이끌어 가고, 그래서 미래가 밝게 보이게 해야 한다. 나라와 백성들이 편안해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고대 중국의 요순시대를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백성들이, 국민이 나라 정치를 걱정하고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나라가 품위를 잃어서는 안된다.

차창 밖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그 '4월'의 하늘에 밝은 태양이 반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2019년 4월 13일, 묵혜( 默惠) 씀.

김민남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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