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촛불을 끄세요 - 정호승과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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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촛불을 끄세요 - 정호승과 보르헤스
  • 대표 / 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4.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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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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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촛불이 대세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이 이 정권의 기반이라 자랑하고 있습니다. ‘촛불정권’ ‘촛불민심’이란 표현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저항의 상징, 촛불을 든 국민들이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하고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뜻입니다. 이때, 촛불은 ‘건강한 진보’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촛불은, 어떤 측면에서는, 분화하거나 희화화되거나 조롱거리가 되거나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파 학생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지난 주말 서울에서 ‘촛불민주시민의 명령-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 이건 나라냐’라는 주제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경찰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학 내 대자보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사실을 규탄하는 집회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정권 시절의 촛불 집회 구호인 “이게 나라냐”를 패러디해 “이건 나라냐?”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촛불대주주’란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민주노총을 겨냥해 ‘촛불대주주’라는 맹신에 빠져 국정을 농단하다시피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시민단체의 간담회 때(1일)는 보수 쪽에서 “정부가 촛불에 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민심을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밖에 다양한 형태의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태극기집회의 이스라엘 국기처럼 우스꽝스런 촛불집회도 눈에 띄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당 대표가 교육부장관이었던 시절 ‘열린교육’이 분화해 ‘열린횟집’ ‘열린이발소’ 같은 이름으로 확산되던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 구두닦이가 주식을 샀다면 이건 폭락의 징후라는 말처럼, 촛불도 ‘가치전도’의 현상을 맞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촛불이 가치전도의 현상을 맞은 데는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정권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포함한 각종 어록을 점검해 보면 자연스럽게 증명이 될 것입니다. 몇몇만 추려보겠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대통령의 24시간을 공개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일과가 국민들께 투명하게 보고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인사를 투명하게 시스템화하고 ‘인사추천실명제’로 추천부터 인사 결정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밀실 정실인사가 감히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겠습니다.”

“선진국 대부분은 대통령 직속 경호실이 없습니다. 우리도 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위상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에 맞춰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새로운 경호문화를 정착시키겠습니다.”

“1천만 촛불 국민은 공정한 나라, 원칙과 상식이 똑바로 선 나라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단지 나라다운 나라,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의 명령에 정치가 답해야 합니다.”

자, 현실은 어떻습니까? 미안합니다만,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검증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생각하기에, 지금은 촛불을 끌 시점인 것 같습니다. 촛불에 연연하는 한, 촛불을 훅 불어 끄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정호승 시인이 이미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에게>란 시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밤하늘을 위해
나의 작은 등불을 끄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별들을 위해
나의 작은 촛불을 끄겠습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시인, 소설가입니다. 세계문학사가 중시하는 사람인데, 많은 문인들과 학자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가 정호승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촛불정권’이 부디 열린 마음으로 영감을 받았으면 합니다.

“촛불을 꺼라. 촛불은 어둠을 조금 밀어낼 수 있을 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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