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교수의 에너지와 국제정치] 탈정치화는 에너지 정책의 우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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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교수의 에너지와 국제정치] 탈정치화는 에너지 정책의 우선 과제
  •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철우 교수
  • 승인 2019.04.0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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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철우 교수

부처님께서 ‘인생은 고해(苦海)‘라 해서 그런지, 우리 삶은 문제투성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그런데 문제해결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은 그 중요성과 발생빈도에 따라 해결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국방은 국가 생존에 중요하지만, 무슨 변고가 터지기 전에는 그 중요성이 뒤로 밀리고, 우선적인 국가 관심 분야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시급하지 않은 듯한 이 두 분야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회와 국가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특히 이들 분야의 문제는 오랜 기간 방치되거나 누적될수록 발생한 사고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에너지와 국방은 가능한 시나리오를 기초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비하여 문제발생 자체를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군 복무하던 시절에 우리 군이 21세기에 첨단무기의 비중이 증가할 것을 예상하고 작성한 ‘공학전공 학군장교 양성계획’을 본 적이 있다. 에너지 분야 또한 마찬가지로 인구 구조 변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장기계획을 세워, 정책과 시장을 조율해야 한다. 국방이 군사적 위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기초로 작전계획을 사전에 수립하고, 무기체계와 지휘체계를 장기적인 포석으로 구상하듯이,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도 에너지 수요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기초로 장기적으로 플랜을 짜야한다.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은 첫째 인구, 둘째 1인당 소득증가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인구는 전체 인구와 연령별 인구 구성이 중요하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청장년층의 에너지 소비량에 비해 노인층의 에너지 1인당 소비량이 작다. 이런 식으로, 인구 구성 변화가 에너지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둘째,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삶의 질을 높이는 가전제품의 사용이 늘고, 다양한 자기개발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져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다. 이런 식으로 경제성장률과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에너지 수요 증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는 나라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다.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나, OECD국가들은 경제성장률이 낮은데 에너지 수요는 그에 비례하지 않고(줄지 않고) 정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에너지 소비 형태가 최대 상한선에 근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 수요 예측은 첫째 인구통계와 둘째 소득통계로부터 시작된다.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다음 단계는 실제 에너지 수요를 발생시키는 운송, 건물, 산업의 각 영역별 기초자료로부터 각 영역의 에너지 수요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운송 부문의 기초자료는 운송해야할 화물의 양에 따른 에너지 수요를 무게-거리로, 여행 수요를 승객-운행거리로, 그리고 각종 자동차 수를 합해 전체 운송 부문의 수요를 예측한다. 건물의 에너지 수요는 조리, 조명과 설비 규모, 냉난방 공간의 크기, 온수공급량 등으로 구분하여 예측한다. 산업 영역에서는 상품과 기초 소재의 생산량에 기초하여 수요를 추산한다. 이들 정보는 다시 각 주요 영역(운송, 건물, 산업, 비에너지-원료, 공공부문 등)에서 필요로 하는 최종 에너지(열과 전기)의 수요로 환산된다.

이러한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 과정은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 전체의 살림살이를 짚어보고 그에 따라 최종 에너지 수요를 2차 에너지인 전력과 연료로 나누어 예측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추산된 전력과 연료의 수요는 1차 에너지(수력, 풍력, 원자력, 바이오 연료 등)를 변환시켜 얻으므로 1차 에너지원의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국가 에너지 수급 계획의 정보흐름과 각 단계별 주요 에너지 수요 영역 및 공급 에너지 유형이다. 정보의 방향과 실제 에너지 공급 방향은 서로 반대다(화석연료의 공급량에 따라 운송 수요가 달라지나, 위 그림은 그런 되먹임과정을 생략했다).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 효율은 위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제5의 연료라는 효율향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자료: DNV GL Energy Transition Outlook 2018).

그렇지만 1차 에너지원이 다양하고 각 에너지원의 장단점이 분명하므로, 한 국가가 필요로 하는 1차 에너지원의 구성 비율(energy mix) 결정(화석연료, 수력, 풍력, 원자력, 바이오 연료 등의 생산 비율의 결정)은 에너지원의 가격, 공급안전성, 그리고 환경부하를 고려한 최적화 과정이다. 여기서 최적화란 국민들이 수용할 만한 가성비 좋은 에너지원 조합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에너지 공급은 기술과 설비에 의존하므로 에너지원 구성의 변화는 비용, 시간, 기술혁신 측면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에너지 정책의 기본 원칙을 시대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자. 18세기까지는 목재가 주 연료였으며, 19세기는 석탄의 시대였고,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 21세기는 화석연료의 오염물질 배출과 원자력의 안전에 대한 우려로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여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자원도 충분하지 않고, 정부의 보조금에 의해 신재생에너지의 수익성이 좌우되고 있으므로,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1차 에너지원의 최적화된 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국가 에너지 수급 흐름도(자료: 에너지통계연보, 2017)

결국, 국가적 에너지 수급계획은 그 근거가 되는 기초자료가 분명하나 그에 근거한 1차 에너지원 구성(국가 에너지 수급 흐름도 참조)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친환경적인 에너지 소비는 바람직하나, 그에 따른 비용을 누가 얼마나 지불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 신재생 에너지원은 공짜지만,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지역성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날수록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을 보완하기 위한 비용이 늘어난다.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과 친환경화에 필요한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정보다 사회적 합의가 바람직하다.

그린 에너지나 신재생에너지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정치인은 추가적인 비용에 상관없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 이들을 에너지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제로 에너지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과정을 감안한다면(전 세계 1차 에너지원 구성비 변화 참조), 정파적 이해에 상관없이 일관된 에너지 정책의 지속적인 실행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에너지 정책에 일관성이 없을 경우, 막대한 초기 투자금을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에너지 산업의 특성상 선뜻 투자에 나설 기업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 생활에 필수상품인 에너지가 공공재이면서 동시에 민간 시장을 통해 수급되는 만큼 자유스런 시장기능을 왜곡시키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천연가스를 수입가격보다 낮게 공급한 적도 있었고, 2차 에너지인 전기요금이 1차 에너지원 가격(똑같은 열량의 천연가스나 석유제품의 양과 비교했을 경우)보다 싼 적도 있었다. 비유하자면, 원가보다 싼 제품을 공급한 전력(前歷)이 있었다는 말이다. 에너지 기업을 통해 에너지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자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정부 개입은 곤란하다.

정부의 역할이 법규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미래적인 관점에서 해결해나가는 일이라면, 에너지 정책이야말로 정치적인 진영논리보다는 국가적인 장기목표에 따라 일관되게 효율성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를 통해 국가경쟁력과 국민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려면, 에너지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원 구성과 에너지 가격 등을 전문성에 기초한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국가적인 중요성, 시스템 의존성, 기술의존에 따른 전문성,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사전예방적인 계획 중심의 장기정책 등의 측면에서 에너지 정책은 국방정책과 가장 유사하다. 국가안보에 여야 간 이견이 없어야 한다면, 에너지 문제의 탈정치화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상황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에너지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와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의 그래프로부터 현 세계의 2050년까지 내다본 장기적인 에너지원 구성 비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정치권력이 여기에 개입할수록 합리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어렵다.

위 그림은 전 세계 1차 에너지원의 구성비 변화를 보여준다. 위 그래프의 단위 ‘EJ’은 ‘Exajoules(1018 J)’를 의미한다. 위 그림은 1차 에너지원 구성이 단기간에 변화되지 않으며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위 그래프는 2030년대에 전 세계 에너지 수요가 정점에 이르며(맨 위의 하늘색), 2020년대에 먼저 석탄과 원유의 소비가 정점에 도달하고(맨 밑의 군청색과 자주색), 천연가스도 2030년대에 소비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회색 부분). 그러나 위 그래프는 2050년에도 화석연료의 비중이 여전히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50%를 차지할 것(군청색, 자주색, 그리고 회색을 합친 부분)으로 예측한다(자료: DNV GL Energy Transition Outloo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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