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냐, 육아냐...가정, 직장 눈총 속, 워킹맘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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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냐, 육아냐...가정, 직장 눈총 속, 워킹맘은 괴롭다
  • 취재기자 방민영
  • 승인 2015.09.19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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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후 휴가 못지키는 여성근로자, 절반에 육박...제도 보완과 인식 전환 시급

직장인 김모(31, 부산시 동래구) 씨는 두 아이의 엄마다. 김 씨는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출산휴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복직 날이 두렵기만 하다. 아직 백일도 채 되지 않은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두고 출근해야만 한다는 게 막막하다. 대한민국의 워킹맘들은 김 씨처럼 육아와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기혼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2.8%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워킹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취직하기 위해 수년간 만들어온 노력의 결실을 이루고도, 직장 생활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출산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을 포기해야하는 것이 워킹맘들의 현실이다.

워킹맘이 느끼는 스트레스 척도를 ‘워킹맘 고통지수’라고 하는데, 날이 갈수록 워킹맘들의 고통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워킹맘의 고통지수는 30-40세 워킹맘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사단법인 여성문화네트워크와 여성가족부, <여성신문>이 그 결과를 매년 발표한다. 워킹맘 고통지수는 워킹맘의 어려움을 1단계부터 5단계, 총 5점으로 지수화한 것인데, 이 조사에서 워킹맘 10명 중 7명 이상이 고통스럽다고 답했다. 조사는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개인생활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 지난 2013년 9월, 전국의 워킹맘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워킹맘의 고통이 가장 높은 영역은 ‘사회생활 고통지수’로 3.56점, 그 다음으로는 개인생활 고통지수 3.38점, 가정생활는 고통지수 3.37점, 직장생활 고통지수는 3.00점이었다.

▲ 워킹맘 고통지수의 영역별 차이는 그래프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서 고통지수가 가장 높다(사진: 여성신문 2013년 10월 28일 자 기사 캡처).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산전후 휴가 미활용 실태조사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제도적으로 산전후 휴가를 보장받으며, 육아휴직을 생각할 수 있는 여성 임금근로자 비율은 가임기간에 있는 여성취업자 중 43% 정도다. 국민건강보험과 고용보험에서 여성근로자 출산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나, 이러한 제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성근로자는 절반도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산전후 휴가 사용기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현재 출산 후 복직하여 근무 중인 여성근로자의 41.8%가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산전후 휴가 90일을 제대로 다 사용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 자료에서는 산전후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응답자의 15.7%는 회사의 관행이라고 응답했고, 동료에 대한 부담이 29.4%, 복직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는 답변이 23.5%, 그리고 업무특성상 대행자를 찾기 어렵다는 답변이 13.7%로 나타났다.

앞 사례의 김 씨는 어르신들의 구시대적인 생각 때문에 워킹맘들이 더 힘들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요즘 사회에서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부부가 둘 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게만 유독 더 눈치를 주는 것은 정말 불평등한 것 같다며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가 돌봐야하는 거라며 엄마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가족 어른들의 분위기에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일해 온 하재은(35, 경기도 부천시) 씨는 우리 사회는 결코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직장상사에게 말하자 축하는커녕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그녀는 회사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하 씨는 “워킹맘은 자기 자식들한테 소홀하면 (가족들로부터) 자기 자식 안 돌보고 일에만 빠져 산다고 혼나고, 일에 소홀하면, 직장에서 눈치주고, 그렇다고 애를 안 낳자니 사회가 눈치를 준다”고 푸념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의 대표 김모(49, 부산시 동래구) 씨는 워킹맘들의 처지도 이해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의 사정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 씨는 회사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애초부터 여성들을 고용하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이런 저런 사정을 다 봐주다보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힘들어진다”며 “정부가 무작정 임산부나 워킹맘을 위한 법률만 만들지 말고 중소기업 같은 영세기업의 사정도 고려해서 제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범종 교수는 우리 사회는 워킹맘들을 위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워킹맘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무언의 압박과 차별이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현재 형식적으로만 갖춰져 있는 법안들보다 더 구체적인 법안과 제도를 마련해 더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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