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나경원은 맞고, 이해찬 홍영표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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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칼럼]나경원은 맞고, 이해찬 홍영표는 틀리다?
  • 대표/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3.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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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발행인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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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을 아십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 암살 작전이 소재입니다. ‘법치주의’를 다룬 영화로 읽었습니다.

염석진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독립군에서 일제의 조선인 경찰로 전향한 자입니다. 독립군들을 악질적으로 괴롭힙니다. 광복 후에는 경찰 고위직에서 위세를 부립니다. 그러다, 반민족 행위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습니다.

염석진은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증거 부족입니다. 재판장은 무죄를 선고한 뒤, 법봉(法棒)을 집어던집니다. 화를 내면서 퇴장합니다. 염석진은 웃고, 방청객들은 분해합니다. 그때, 과거의 독립군들이 나타나 염석진을 사적으로 처형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는 법치주의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법치주의 국가라면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동서양의 중세는 야만적 ‘인치’였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 텐데 죄를 토설하지 않으면 나는 때리거나 인두로 지지고 보겠다, 너를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근대 입헌국가의 재판장은 ‘법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형법정주의. 심증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재판장은 이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법치주의는, 때로는 참기 힘든 것을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디자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합니다.

2019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어떻습니까. 상갓집 개 신세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차고, 때리고 있습니다. 안전한 ‘양시양비론’에서 벗어나 말하자면, 권력을 쥔 쪽의 법 감정 부재와 ‘내로남불(이제 이 단어는 일반명사가 된 것 같습니다)’ 탓이 더 큽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을 두고 논란이 거셉니다. 사법 농단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검찰은 다수의 전 현직 법관들을 구속 혹은 불구속기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헌법상의 무죄추정주의와 형법상의 피의사실공표라는 사안은 실종돼 버렸습니다.

성창호 부장판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했습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적폐 판사’라 불렀습니다. 여당은 ‘사법 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사법부를 겁박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인신공격도 난무했고, 성 판사는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석을 허가했습니다. ‘판레기(판사 쓰레기)’란 비난이 나왔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대표적 친문 커뮤니티들은 정 판사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면서 사지를 찢어 죽이자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정 판사는 문재인 정권 때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됐습니다. 이를 두고 “판레기 중 그나마 조용한 인간이라 챙겨줬더니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 등에 제대로 칼을 꽂았다”고 비난한 사례도 있습니다.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판단에 일임하는 것)’가 위험에 처한 것 같습니다.

한편, 여권에서는 보석 문제를 두고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지사가 보석 신청을 하자 "모든 국민이 누리는 사법적 권리의 하나로, 야당이 비판하는 것은 정치공세이며, 사법부의 판단과 법적 절차에 따라 결과가 나올 것"(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의 잣대가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말을 해달라고 국회에 보낸 사람들입니다. 대의민주주의입니다.

국민들에게는 헌법적 권리인 언론의 자유가 있고,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에게는 면책특권까지 있습니다. 따라서 국회의원에게는 말할 자유가 있고, 국민들에게는 국회의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권리와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언론의 자유를 훼손했습니다. 홍 원내대표는 단상에 올라가 “이게 무슨 연설이야!” 하면서 물리력으로 연설을 방해했습니다. 법을 만든다는 사람이 헌법을 무시하고, 감히 국민들의 들을 권리를 유린했습니다. 죄가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죄’ 운운했습니다. 관련 법은 군사독재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사용한 악법입니다. 민주화 투쟁 과정을 거쳐 1988년에 소멸됐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 악법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이 악법을 상대방에게 칼처럼 들이밀었습니다. 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갈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차라리 씁쓸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경청해서 듣고, 그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울 건 또 배우고, 또 그 속에 가장 옳은 소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 반성하고 들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마지막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플라톤과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두 사람은 앙숙이었습니다.

“플라톤은 부자였고, 디오게네스는 빈자였다.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의 궁전 같은 집에 가서 바닥을 어지럽혀 놓았다. 디오게네스는 ‘당신의 오만방자함과 교만을 이렇게 짓밟아 주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 똑같은 오만방자함과 교만으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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