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알메달렌, 폴케뫼데, 그리고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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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알메달렌, 폴케뫼데, 그리고 한국 정치
  • 편집주간 송문석
  • 승인 2019.03.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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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협치의 진수 보여주는 정치박람회 돼야 / 편집주간 송문석
편집주간 송문석

중세 바이킹의 숨결이 살아있는 스웨덴의 섬 고틀란드. 발트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발트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 섬은 매년 여름이면 색다른 정치축제의 현장으로 바뀐다. 알메달렌 주간(ALMEDALSVECKAN·THE ALMEDAL WEEK)이 열리는 것이다.

고틀란드 섬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에 모인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5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 주 동안 시민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벌인다. 정책 박람회, 정치 박람회라고도 불리는 알메달렌에서 스웨덴 국민들은 정치를 즐기고 기꺼이 행사에 참여한다. 함께 밥을 먹고 춤을 추면서 페스티벌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정치를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정치가 일상의 하나임을 확인하는 무대가 알메달렌이다.

알메달렌 축제는 우연하게 시작됐다.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교육부 장관이 1968년 7월 가족과 이 섬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주민들은 총리 내정자이기도 한 팔메 장관을 만나고 싶어 했다. 팔메 장관은 알메달렌 공원에 주차된 트럭에 올라가 영수증에 끄적거린 메모를 보며 주민들 앞에서 즉석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해 총리에 오른 팔메는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고, 이렇게 스웨덴 판 아고라, 알메달렌이 탄생하게 된다.

2011년부터 매년 알메달렌을 찾아 현장을 기록한 정치학자 최연혁 스웨덴 린네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정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말한다. 최연혁의 책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를 읽다보면 부러운 스웨덴의 정치와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텐트 세미나장은 카페 같기도, 춤을 출 수 있는 클럽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다. 커피를 마시며 재즈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스웨덴 연금 문제에 대한 토론. 낯설지만 신선하다. 나의 삶이 중요하듯, 남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 커피를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연금 문제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우연히 들어간 작은 텐트에서의 경험은 일상과 정치가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선거 때에는 경쟁자가 되지만, 선거가 끝나면 다양한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화하고 협의하는 파트너다. 이들은 '서로 싸운다는 것은 자주 만나지 않고 담을 쌓고 지낸 것의 결과물'이라면서 '자주 만나면 첨예하게 맞서던 이슈에서도 결국 합의점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스웨덴 알메달렌의 성공사례를 이웃 나라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가 놓칠 리 없다. 특히 덴마크의 정치축제 폴케뫼데(Folkemødet·민중회의)’는 알메달렌 못지 않다.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매년 6월 중순 코펜하겐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 보른홀름에서 나흘간 정치축제를 벌인다. 인구 2000명의 작은 섬마을은 10만여 명의 사람들로 나흘간 북적인다.

총리 장관 국회의원 노사대표 언론인 등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참가해 이민, 지속가능한 발전, 교육, 환경, 사회통합, 성평등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시민들은 묻고 정치인들은 대답하며 소통한다. 폴케뫼데는 정당에게는 자기 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홍보하는 기회이고, 시민들에게는 각 정당의 정책 차이를 이해하는 정치학교가 된다. 라이브 음악과 댄스파티, 맥주 등이 어우러진 폴케뫼데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알메달렌과 폴케뫼데를 벤치마킹한 정치축제를 시도했다.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자유시민정치박람회’는 비록 흉내 내기이지만 의미 있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국민 위에 군림한 채 고통을 외면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잘못된 정치관행을 바로잡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존폐위기에까지 몰린 당의 위기상황을 고백하면서 지지를 당부하고, 조경태 최고위원이 변화 개혁 혁신을 다짐한 것은 이 같은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최고위원이 “한국당은 국민과 소통하고 합리적 중도, 개혁, 보수세력까지 끌어 안아야 한다”면서 “영호남의 통합, 나아가 국민을 통합시키는 통합리더십을 가진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국민은 우리에게 응답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백번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자유시민정치박람회’에 기대를 걸면서도 한편으론 긴가민가하다. 왠지 미심쩍고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가시지 않는다. 진정성이 느껴지지가 않고 면피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불신 받고 외면 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은 안중에 없이 안하무인 행동하는 정치인들, 특권의식에 젖어 국민들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는 불감증,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행태 등은 숱하게 봐 온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소통과 협치를 외치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노리고 갈등만 양산해 국민통합을 오히려 저해하는 집단도 정치권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선거에 지고나면 으레 돗자리를 깔고 석고대죄를 하네, 천막당사로 옮기네, 삭발을 하네 하며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정치 쇼를 연출했다. 그런 뒤 정권을 잡았거나 총선에서 이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만불손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선거 때는 입속의 혀처럼 유권자를 대하다가 당선되고 나면 1년 열두 달 코빼기도 볼 수 없는 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다.

물론 이런 모습이 자유한국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여의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정당과 정치인 모두가 벌이는 적폐다.

스웨덴의 알메달렌과 덴마크의 폴케뫼데가 추구하는 것은 유권자와의 소통과 정당 간의 협치다. 우리 정치권이 알메달렌과 폴케뫼데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에만 현혹돼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만 벌여서는 정치개혁은 백년하청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만 봐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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