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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BIFF 이사장 이용관 편] 부국제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부산은 아시아 영화 중심 도시로

기사승인 2019.03.12  2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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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이사장 이용관에게 BIFF의 길을 묻다 /편집국장 차용범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2012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획기적 변혁기다. 안으론, 창설 이래 '제1기, 김동호 시대'를 넘어, 이제 '제2기, 이용관 시대‘다. 겉으론, 그동안의 수영만 시대를 넘어, ‘영화의 전당' 시대다. 이 변혁을 바탕으로, BIFF는 ‘세계 3대 영화제’, 부산은 ‘아시아 영상중심 도시’를 꿈꾼다.

BIFF 이사장 이용관(李庸觀, 63, 2019년 기준). 그는 BIFF의 공동 파운더(founder)다.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부위원장을 거쳐 5년여 ‘김동호’와 공동위원장으로 일했다. 김동호=해외 담당, 이용관=실무 담당 체제로-. ‘BIFF의 전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후임을 고르기가 그저 쉽기만 했을 것인가. ‘포스트 김동호’는 일찍부터 ‘한국 영화계의 실세’ 이용관이었다. 부산이 BIFF에 쏟는 관심이면, 새 운영사령탑을 보는 시선 역시 결코 만만치 않을 터이다.

막중한 책임명예, “두렵고 떨린다”

2011년 제16회 BIFF를 치른 직후 행해진 인터뷰에서 ‘부담 백배’였던 그에게 일상부터 물었다. 그는 당시 해운대 원룸에서, 혼자, 먹고, 잔다고 했다. 생업은 교수(중앙대 연극영화학부, 2019년 기준 동서대 학장), 서울에 정착한 지 오래였으므로 가족과 생이별 중이었다. 1년에 절반 정도는 부산에서, 두 달여는 해외에서, 3-4개월은 서울에서 생활했다. 궁금한 것은 역시 ‘포스트 김동호’ 부분부터. “김동호 집행위원장 퇴임 후 그 막중한 책임과 명예가 함께 하는 집행위원장 자리, 부담이 컸겠다...”

“솔직히, 두렵고 떨렸다. 심판대에 선 긴장감 컸다. 김동호 퇴임 이후 나를 보는 주위의 우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김동호를 17년째 ‘모셨다.’ 모셔올 때 평생을 함께 할 생각을 했고, 좋은 인연을 이어가며 지금도 큰형님처럼 모시고 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김동호 위원장이 퇴진 결심을 굳힌 것은 BIFF 10회 때. 그 때부터 5년 동안 후임을 물색해 왔다. 정녕 '사람'이 없으면 BIFF의 산파 중 전양준(당시 부집행위원장), 김지석(당시 수석프로그래머)이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셋 중 맏형이 큰일을 맡은 모양새가 됐다.

‘포스트 김동호’, 자율 혁신하는 격자형 구조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아직 '김동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의 상징성은 그만큼 크다. 이용관 체제는 김동호 체제를 넘어,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BIFF 운영의 연속성은 특이하다. 전임이 가고 후임이 오고..., 그런 성격이 아니다. 같이 만들고, 함께 생활하고, 서로 의논하고..., 앞으로 10년 함께 갈 큰 그림이 있다." 그는 BIFF의 운영을 '인물'에서 '체계'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종전 김동호가 확실한 리더십과 높은 인덕으로 BIFF를 끌고 왔다면, 이제 모든 스태프의 의지와 역량을 체계화, BIFF의 장기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안병률·전양준 부집행위원장, 여러 프로그래머와 업무를 공유하며, '아버지' 아닌 '형'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2012년 당시). 실상 경영학 조직모델로 보면, 이용관 체제는 강력한 지휘를 앞세우는 장군-군인 모델의 사다리형 구조라기보다, 자율 따라 혁신하는 의원-시민 모델의 격자형 구조다.

BIFF 부대행사로, 대중스타들을 기려온 핸드프린팅. 해운대 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김기덕 감독과 함께(사진: 차용범 제공).

BIFF, 한국 영화산업과 아시아세계 이어가야

이용관이 꿈꾸는 BIFF의 비전은 뭘까? '큰 그림'은 어떻게 그려 두었을까? "창립 때부터, 함께 그려온 꿈이 있다. BIFF는 2012년 당시 17세 청소년이었다(2019년은 24회). 겉은 성년 같아도 속은 아직 모자람 많다. 영화인(스타)과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로는 성공했다. 한국 영화산업과 아시아를 잇고 세계로 진출하는 산업적 기능은 아직 취약하다. BIFF, 이제 새 담론을 만들고 아시아 속 공동체를 형성할 이론적 토대를 다져가야 한다."

그는 '부산영화포럼(BCF)'을 실천단계로 본다. 부산의 역량 있는 영화, 문학·미술 평론가들로 포럼을 만들어, 세계 영화산업과 영화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광장이다. 포럼은 부산에서 출발, 아시아로, 세계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2012년 주제는 ‘아시아 영화의 길을 묻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그 꿈의 종착점은? "영화와 인문학, 예술이 살아 펄떡이는 부산을 만들고 싶다", 대담한 꿈이다.

이용관이 꿈꾸는 BIFF의 비전? ‘영화와 인문학, 예술이 살아 펄떡이는 부산’을 만드는 것이다(사진: 차용범 제공).

BIFF 성공, 부산시민한국 영화인 전폭적 지지 덕분

실상, '이용관 일당'이 BIFF를 창립할 때 과연 오늘을 꿈꾸었을까? 이용관이 부산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5년. 아무 연고 없이 경성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부임했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 김지석, 전양준, 박광수, 오석근과 어울렸다. 계간지 '영화언어'를 내며 큰 꿈을 꿨다. "영화제 어떨까?" 김지석의 아이디어에, "좋은 생각이다!" 이용관 전용준의 맞장구다. 진지한 연구와 부산사람들의 격려 끝에 자신감을 굳혔다. 준비작업의 대미, 김동호를 모시고 온 것이다.

연구∙준비에 꼭 10년 걸렸다. 1995년 첫 BIFF 땐 "과연 관객이 올까"를 내내 걱정했다. 폐막 후, 밤새 감격 끝의 울며불며 통음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영화제를 시작하라면 못할 것 같다. 내가 30대, 김지석 20대일 때 아닌가, 젊은이의 겁 없는 열정과 무한한 상상력 대단했다. 그래도 김동호 위원장이 없었다면 실천할 용기 얻기 어려웠겠지...."

'문화의 변방'에서 국제영화제가 성공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부산시민들의 전폭적 지지와 부산시의 전폭적 지원이다. 당시 부산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갈망이 굉장히 컸다." 그는 "BIFF의 주인은 부산시민!"이라고 당당히 얘기하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늘 걱정한다. BIFF의 발 빠른 성공에는 한국 영화인의 전폭적 지지도 큰 몫을 했다. 영화상도 아닌 영화제 개막식에, 온 배우가 다 참석한다? 세계적으로 오직 부산, BIFF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란다.

BIFF가 '문화의 변방' 부산에서 성공한 원동력은 무엇? 이용관은 "당연히, 부산시민들의 전폭적 지지와 부산시의 전폭적 지원“이라고 확신한다. BIFF 조직위원장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사진: 차용범 제공).

BIFF 차별성경쟁력 뚜렷... 차별화 논란 “끝났다”

BIFF는 지금 '아시아 최고 영화제'다. 그럼,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적 영화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선 이용관의 겸손과 자부가 묻어난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 그 표현 무방하다. 해외 영화제 관계자와 언론의 평가, 그간의 실적이 뚜렷하다. '세계적 영화제', 양면성이 있다. 우선 규모∙수준, 명성∙인지도에서 세계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란 평도 있다. 다만, 기준의 차이를 생각한다. 칸느와 베를린은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순수 경쟁영화제, 우린 관객을 우선하는 비경쟁 영화제이다."

그는 "세계 속 BIFF의 차별성과 경쟁력은 뚜렷하다"고 강조한다. 나라 안팎에서 울쑥불쑥 나타나는 여러 영화제, 그들과의 차별화도 끝났다고 단언한다. 국내 여러 영화제와의 차별화? 이미 판가름 났다. 앞으로 20-30년도 변함없다. 오히려 '우후죽순' 영화제가 좋지 않은 결과 낳아 국민 앞에 송구스럽다는 그런 생각이다. 아시아의 선두? 걱정 없다, 칸느∙베를린의 장점을 배우고, (같은 규모의) 토론토∙로테르담과 우호적 관계 유지하며, 아시아의 대표 넘어서려는 노력 다하고 있다, '더 좋은 영화제'로 위상 높여간다..., 그런 자신이다.

BIFF와 함께, 아시아의 위대한 영화인들을 기려온 아시아 영화인상. 2011년 개막식에서 신성일 배우와 함께(사진: 차용범 제공).

이제 전문인력 양성하며 재정 독립 모색할 때

BIFF는 최근 전용관 '영화의 전당'을 마련했다. 도약의 기폭제다. 세계적으로 영화∙영상산업에의 관심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 부산 영화∙영상산업의 미래는 정말 밝은가? "난 영화산업 비즈니스맨이 아닌, 영화 이론가이고 문화운동가이다. 속단하긴 조심스럽지만, 42년여(2019년 기준) 영화활동을 하며 실감하는 것은 있다. 한국과 아시아가 전 세계 영화제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 흐름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 중국이 함께 하고 있다."

아시아 영화가 세계 지형을 바꾸고 있고, 아시아의 중심은 한국이다. 그러니, (한국영화의 중심)부산에서 산업측면의 새 흐름을 당연히 만들어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그 산업적 비전의 실행방안, 부산시 및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BIFF가 크게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는?" 그는 내적∙외적 양면의 과제를 얘기한다. 우선 인력 확충문제, BIFF 스탭 200명을 전문가 그룹으로 양성하긴 했으나, 영화인력을 지속적으로 보강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교육체계에 전적으로 기대할 수 없고, 부산지역 영화학부로 미흡하다. 대학원 수준의 교육체계를 꾸려야 하고, 산학협동과정의 국제화도 필요하다." 그는 '프랑스문화원 세대', 그들은 '영화제'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영상위원회, 영상후반작업기지, 시네마테크 같은, 많은 연관사업들이 생겨났다. 앞으로 훨씬 많은 사업들이 벌어질 터, 이제 부산과 서울의 네트워크를 이어주고, 부산에서 애정을 갖고 일할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

다음 외적 부분. "BIFF가 전용관을 가졌다는 것, 획기적 계기다. 영화인들도 열심히 했지만, 부산시와 부산시민의 부담이 너무 컸다. BIFF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세계 수준에서 아주 낮다. 국고지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 BIFF가 재단법인으로 전환, 맘껏 활동할 수 있다면, 문화예술 및 산업측면에서 확실한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바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부산에서, 과거 서울시장 시절 '서울국제영화제'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부산이 하고 있으면 거기에서 해야지, 서울이 하면 되겠느냐"며 반대했다는 일화를 얘기했다. 대통령의 인식이 ‘지방친화’적이면, 정부의 인식도 좀 변해야 할 텐데-.

“PIFF, 더 타락하라”... “앞으로 더 타락할 터”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무겁나? 그에게 숨 쉴 공간을 주고 싶다, 좀 가벼운 주제를 얘기하며. “BIFF 개∙폐막작, 관객의 시선에서 좀 무거웠다는 지적 있다. 근래 가벼워지고 있지만....” “아, 몇 년 전부터 선정기준을 바꾸었다. 대중성과 작품성이 어우러진 작품들을 고르고 있다. 초기엔 작품성∙작가성 두드러진 실험적 작품을 선택, 아시아에도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편안하지 못했다. 더러 난해했다.”

인터뷰어는 역대 BIFF를 지켜보며 칼럼 몇 편을 썼다. 제목은 “PIFF, 더 타락하라”(2003), “PIFF, 매너리즘의 경계부터 넘어라!”.(2007), “PIFF, 좀, 겸손하라”(2008)..., 그에게 “PIFF, 더 타락하라”를 얘기했다. “PIFF 조직위가 PIFF를 보는 인식의 문제, 부산사람들은 ‘즐기는 축제’로, 진행자들은 ‘고결한 경연’으로 보는 차이가 있다, 그 온존한 순수문화적 발상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문화적 행태로 나아가라...”, 그런 글이다. “요즘 그런 우려 없어 질책성 글 안썼다”는 얘기에, 그는 바로 응답했다, “아, 그런 뜻이라면 우린 더 타락하겠다”고-.

“좋아하는 영화는?” “개인적으로 탐정영화, 추리영화 같은 수사물을 좋아한다. 학교에선 ‘영화사에 남는 작품’을 중시한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서스펜스∙스릴러 영화가 좋고, 김기영, 김수용, 하길종 감독의 영화가 좋다.”

“영화계 인맥은 어떤가?”, “우리, 70년대 프랑스 문화원 세대다, 영화 좋아하며 영화 보다 만난 사람, 지금 영화계 대표하는 그룹이다. 김동호 위원장 모시고 다니며 술자리 자주 어울린 사람들 모두 좋다. 임권택 감독처럼 훌륭한 분, 친구 같은 안성기, 강수연과 예지원, 엄지원..., 모두 가족과 같다.” 2012년 BIFF 개막식 사회는 예지원∙엄지원, 김동호 퇴임기념으로 ‘김동호 사단’이 나셨다.

1세대 영화학자스타 평론가, BIFF에 올인하다

이용관, 평론 전공 영화학자다. 부산과의 인연은 1985년 경성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한국 영화의 새로운 태동기, 약관 30세의 열정과 힘..., 그는 영화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 영화계의 인정을 받는 ‘스타 평론가’로 성장한다. <전위영화의 이해>, <영화구조의 미학>을 번역, 소개했고 <한국영화를 위한 변명> 같은 책도 썼다. 1995년, 그는 부산을 떠나 중앙대로 옮겨간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대답은 단문이었다. “모교로 소환당했다.”

그는 경기 파주 임진강변 출신이다. 부산에서 삶의 절반, 27년을 ‘부산사람’으로 살고 있다. 서울에선 그를 ‘부산 출신’으로 안다. “부산사람과 진한 정을 나누고 있고, 부산사람의 매력적 기질에 푹 빠져 있다. 거기다 BIFF의 인연까지, 나는 행운아다. 부산을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런 고마움에 보답할 각오이다.”

그는 ‘부산시민에게 은혜 갚기’를 모토로 삼아, ‘나는 부산이 좋다’고 늘 당당히 얘기한다. BIFF와 함께 한 부산시장 세 분과의 인연도 소중하다. 굳이 인물평을 재촉한다. ‘멋있는 문정수 시장’, ‘훌륭한 안상영 시장’, 허남식 부산시장은? "겉으론 고결한 선비 풍모인데 은근한 패기에 내공 강하다.“ 그는 ”멋진 분들 흉 좀 봤다“고 쑥스러워한다.

2011년 BIFF 개막파티에서, 신정택 부산상의 회장, 허남식 부산시장, (이용관), 김승업 부산 영화의 전당 사장과 함께(사진: 차용범 제공).

이용관 교수, 원래 깐깐하고 까칠한 평론으로 소문났다. 외모부터 고집 있어 뵈는 강골이다. BIFF 운영을 맡아 정말 고생도 많을 듯하다. “난 성격이 변했다. 나도 놀랄 정도로 모가 닳았다. 김동호 위원장을 모시며 체질이 변하더라. 먼저 말 않고, 화 안내고, 일단 참고..., 세상을 조심하며 나이 값 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 밖의 생활은 없다, 그저 교수 역할 약간 뿐. “당신은 오직, BIFF에 올인한 상태인가?”, “그렇게 말해도 좋다.”

부산, 맘 턱 놓고 BIFF 지켜봐도 좋을 듯

“인터뷰 여기까지, 혹 물어주었으면 하는 주제는 없나?”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반응한다, “BIFF가 폐쇄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 사전 질문지에 들어있었으나 묻지 않은 내용이다. “BIFF, 관객을 위한 영화제다, 부산시민이 ‘영화인, 그들만의 행사’로 느꼈다면 그건 우리 책임이다. 실상, BIFF는 세계에서 관객 GV(Guest Visit)가 가장 많은 영화제다, 세계 영화계에 높은 평가 받고 있다. 해외 영화인들은 놀란다, 젊은이들부터, 어떻게 저렇게, 진지하게 영화 보며 토론하고, 그럴 수 있느냐고....” 그는 앞으로, ‘관객이 주인인 영화제’, 그 목표를 더 다져가겠다고 다짐한다.

덧붙여-. 부산사람들은 '김동호 이후‘의 BIFF를 걱정 않아도 좋겠다, 이용관은 이렇듯 진지하고, 치열하고, 겸손하다. 덧붙여, BIFF의 힘찬 도약을 믿어도 괜찮겠다, 문화행정 전문가가 제1기의 기틀을 다진 위에, 영화이론 전문가가 제2기의 내실을 다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산은 맘 턱 놓고 BIFF의 오늘과 내일을 지켜봐도 좋겠다.

편집국장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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