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괜찮아요” 최악의 미세먼지 습격에도 평온한 부산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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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괜찮아요” 최악의 미세먼지 습격에도 평온한 부산 시민들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3.0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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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2시, 부산 전지역 미세먼지 농도 '나쁨' 수준...마스크 착용한 시민 드물어 / 신예진 기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대는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습격을 받았지만 물리칠 힘도, 방법도 없다. 한낮에도 해를 볼 수 없는 짙은 잿빛 하늘 아래, 마스크를 착용한 국민들은 연신 한숨만 내쉬고 있다. 

전국을 뒤덮은 미세먼지는 보란 듯이 연일 그 수준을 높여가는 중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엿새째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됐다. 미세먼지 수치를 기록한 이래 최장 기간이다.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5일 2시 기준,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 등 14곳이 '매우 나쁨' 범위에 속했다. 서울 190㎍/㎥, 경기 194㎍/㎥, 세종 226㎍/㎥을 기록하면서 ‘매우 나쁨’ 기준인 151㎍/㎥를 크게 웃돌았다.

언론들은 이날 마스크를 착용한 국민들의 출근길, 교육부의 실외활동 금지 지시에 텅 빈 학교 운동장, 미세먼지 마스크가 동이 난 마트 등을 집중 조명했다. 온라인에서는 미세먼지 마스크 고르는 방법, 공기 청정기 순위, 공기 정화 식물 등의 미세먼지 관련 ‘꿀팁’ 들이 쏟아졌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에 이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미세먼지 마스크’, ‘공기청정기’, ‘최악의 미세먼지’ 등이 순위에 올랐다.

5일 오후 부산 전 지역이 미세먼지 농도 '나쁨'을 기록한 가운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순민).

그러나 미세먼지에 대한 부산 시민들은 대처는 타 지역과 사뭇 달랐다. 이날 오후 2시, 부산 시내 전 지역이 ‘나쁨’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날까지 맑고 푸른 하늘을 보았던 탓일까,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한 시민을 찾기 어려웠다. 심지어 길거리 음식을 섭취하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시민도 있었다.

기자가 2시부터 3시까지 한 시간 동안 부산시 남구 대연동을 관찰한 결과, 대다수 시민은 마스크 없이 미세먼지가 내려앉은 거리를 활보했다. 경성대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김모(50) 씨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캐한 미세먼지를 마스크 없이 들이마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야 하는 김 씨는 마스크를 착용하면 답답함만 느낀단다.

김 씨는 “숨도 잘 안 쉬어지고 갑갑하니까 손이 잘 안 간다. 오늘 지켜보면 길거리 지나가는 마스크 낀 사람, 한 10% 되나? 10%도 안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미세먼지보다 오토바이, 오래된 차, 담배 냄새가 더 신경 쓰인다. 정말로 자동으로 손이 올라가 입을 틀어막는다니까. 미세먼지보다 그게 더 싫다”고 했다.

대학생 최지연(22, 부산시 북구) 씨도 마스크를 착용하면 “걸리적거린다”고 했다. 최 씨는 대연동의 한 대학교 캠퍼스 근처 벤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물론 최 씨의 얼굴에도 마스크가 없었다. 최 씨는 “(마스크를 착용하면) 화장도 지워지고, 실내에서 벗어야 하니 정말 귀찮다. 자다 일어난 베개자국도 아니고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남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미세먼지가 당장 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니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5일 오후 부산시 전 지역이 미세먼지 농도 '나쁨'을 기록한 가운데 남구 대연동의 버스정류장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신예진).

부산지역이 한국의 ‘미세먼지 청정 지역’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4일 전국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 때, 부산은 ‘좋음~보통’을 기록해 타 지역민들의 부러움(?)을 받은 바 있다. 즉, 부산은 미세먼지 농도가 낮거나 다른 지역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심하지 않아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생 박모(20) 씨는 “(부산) 하늘이 살짝 뿌옇지만 다른 지역처럼 노란 띠가 보이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가 심한지 모르겠다. 페이스북 보면 서울은 미세먼지 지옥이다. 서울에 비하면 우리는 양호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부산시는 재난 알림 문자도 뜨지 않았다. 마스크를 굳이 돈 들여 사야 할 것 같진 않다”고 했다.

마스크 없는 맨 얼굴로 가게 앞에서 휴대폰을 홍보하던 20대 신혜관 씨도 생각이 비슷했다. 신 씨는 “부산은 미세먼지가 최악인 것도 아닌데 ‘마스크를 착용하니, 마니’ 묻는 것도 극성인 것 같다. 당신이 입고 있는 니트에 얼마나 많은 먼지가 묻어 있는지 알고 있나"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신 씨는 그러면서 "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마스크가 미세먼지를 정말 걸러주는지 직접 실험할 수도 없다. 그냥 언론에서 미세먼지로 유난을 떠니까 사람들이 동요돼서 홀린 듯이 착용하는 거다”라고 색다른 의견을 내놨다.

물론 미세먼지에 대비해 마스크를 챙겨 거리로 나온 부산 시민도 있었다. 대다수가 아저씨, 할머니 등 중장노년층이었다. 바퀴가 달린 시장바구니를 끌던 한 아주머니는 신호등 앞에서 착용한 마스크를 내리고 연신 물을 들이켜기도 했다.

직장인 이경림(28, 부산시 남구) 씨는 몇 없는 청년 마스크 착용자였다. 검은색 마스크로 최대한 얼굴을 덮은 이 씨는 “오늘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쭉 지켜보니 10명 중 1~2명만 마스크를 착용했더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 씨는 “폐 질환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더라. 사전 예방 없이 미세먼지 속에 그대로 노출됐다가 된통 당하는 수가 있다.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젊은 사람들도 미리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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