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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이슈 "세종이라면"

기사승인 2019.03.05  13: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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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장 차용범

편집국장 차용범

‘이청득심(以聽得心)’,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옛말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말이다. 상대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를 배려하며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간 <말의 품격>을 읽으며, 특히 ‘소통’의 가치를 새삼 깨우친다.

그런 뜻에서, 나는 세종을 존경한다. 세종은 온 겨레를 존중하는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국태민안(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문화찬란의 황금시대를 성취한 성군(聖君)이다. 그의 성군적 자질 중 특히 백성과의 소통 역량을, 나는 존경한다. 그는 세법 하나를 개정하며 국민투표를 거친 임금이다. 어느 시대이건 세금이야 가장 중요한 이슈일 터, 그는 토지세의 과표 문제를 두고,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이다.

세종, 세법 시행은 ‘백성 결정 사안’... 국민투표 실시

세종은 ‘공법(貢法)’안을 마련하려 우선 책문(策問, 과거시험)의 제목을 ‘공법’으로 삼아 선비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했다. 신하와 유생의 의견을 알아보곤, 이 법의 시행은 ‘백성이 결정할 사안’으로 판단했다. 지금으로부터 590년 전, 국민투표에는 17만 명이 참여했다. 노비·여성을 제외한 거의 전 백성이다. 결과는 찬성 53.3%, 반대 46.7%, 그는 이 결과를 ‘충분한 찬성’에 미달한다고 봤다.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며, 법 시행을 미룬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버락 오바마도 존경한다. 그는 특유의 포용력과 친화력을 지닌, 21세기 버전의 덕장(德將)이다. 그의 리더십이 어떻게 국민적 지지를 얻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그가 이민개혁법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할 때 얘기다. 막 연설을 시작하려 할 때 단상 뒤편에서 동양인 청년 한 명이 뛰쳐나와 날카로운 구호를 내던졌다. “이민자 추방 중단! 중단!” 건장한 경호원이 달려가 청년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려 몸싸움을 벌였다.

이 때 오바마는 말한다. “괜찮아요. 청년을 여기에 그냥 있게 해줍시다. 나는 저 청년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존중합니다.” 그는 말을 이어간다. “다만 이민정책처럼 복잡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설득과 설명, 서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선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뭔가요? 말해 보세요.” 그가 지닌 리더십의 원천은 상대에의 존중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우리네 정치문화에 진한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여러 대통령이 ‘불통’의 이미지와 함께 비극적 결말을 맞았고, 지금이라고 크게 나아진 구석도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언론평가들을 보면, 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일자리 정부' 같은 핵심정책들은 역풍 끝에 표류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천박한 소통의지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려 않는 야박함, 잘못을 알고도 반성하려 않는 오만함이다.

국민적 핫이슈 앞 정녕 중요한 건 국익·소통

탈원전 문제만 해도 그러하다. 이 정책은 과연 옳은가? 그 정책의 방향과 속도는 과연 적절한가? 이 문제는 실상, 우리 에너지정책을 둘러싼 최근의 핫이슈다. 이 논란에는 정책의 실패를 추궁하는 매몰찬 평가도 있다. 지난 20개월의 성과? ‘탈법·불법+통계 왜곡+전문성 부족’만 드러냈다(이덕환, 서강대)는 것이다.

나는 ‘탈원전’의 정책적 타당성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따질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그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갈등에서, 이 정책의 실패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탈원전 논란 중 당면한 과제, ‘신한울원전 3·4호기 건설재개’ 부분을 보라. 탈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국민 38만 명은 여러 통로를 통해 정부의 정책 재검토를 요청하다, 끝내 대통령께 공개청원을 했다.

청와대의 입장은 나름 뚜렷하다. 대략 ‘탈원전은 공론화로 확정된 정책’, ‘탈원전은 미세먼지와 무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표는 기자적 시각에서 보면, 사실관계를 왜곡한 기만행위다. (여당 중진의원의 말처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확정한 것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부분이며, (관련 통계처럼) 미세먼지 해소대책은 탈원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국민여론 역시 뚜렷하다. ‘향후 원전 비중’에 대해, 확대 35.4%, 현행 유지 32.3%, 축소 31.1%다. 국민의 2/3는 원전의 확대·유지를 원하고 있다. ‘신한울 건설재개 공론화’ 역시 찬성 82%, 반대 13.9%다. 정부는 여론의 압도적 흐름도 아예 토론부터 거부한다. 국민적 시각에서 보면, 국민과의 불통을 넘어, 권력자의 오만이다.

되새겨보면 대통령은 일찌기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을 다짐했다. 그럼에도 탈원전 같은 여러 정책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회피한다. 따져보면,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가? 국민(소비자)의 선택권은 그저 가볍기만 한가? 한 국가의 중요 사안을 둘러싸고, 국민투표든 공론화든, 원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라면, 굳이 받아들이지 못할 건 또 뭔가? 이런 사안 앞에, 토론도 싫다, 여론도 싫다, 이건 예의 ‘국민과의 불통’일 수밖에 없다. 그럼, 국민적 논란에 대한 질서 있는 출구는 뭔가? 정치지도자가 정녕 따져야 할 가치는 또 뭔가? 공약인가, 이념인가? 소통인가, 국익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뭔가? 정말 “뭣이 중한디?“

편집국장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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