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특집 황령산 칼럼] 아베여, '쓰구나이(속죄)' 노래를 들어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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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황령산 칼럼] 아베여, '쓰구나이(속죄)' 노래를 들어보시게나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9.02.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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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사다 마사시(佐田雅志)라는 일본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70년대말 데뷔 이후 <기쿠(국화)>, <아메야토리(비가 머무는 곳)>등 서정적인 히트곡을 많이 남겼다. ‘맛짱’이란 애칭으로 팬클럽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일본 최다, 4000회 이상 솔로 콘서트를 한 중견 가수다.

1982년 그는 <쓰구나이(償)>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했다.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취입한 노래다. 러닝타임 6분 25초. 2절까지 포함해 3~4분이 보통인 일반 엔카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 게다가 요즘으로 치면 랩과 비슷하게 가수가 단조로운 선율을 타고 가사를 울얼웅얼거린다. 그 때문인지 발표 당시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래 제목 <쓰구나이>는 배상, 보상의 의미로 쓰이지만 ‘속죄’라는 뜻이 강하다. 롱타임 노래 답게 당연히 가사가 길다. 반복되는 후렴 따위도 없이 쭉 스토리를 전개한다.

가사는 “월말이 되면 유짱은 얇은 월급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은 채 동네 모퉁이에 있는 우체국에 달려간다. 친구들은 저금이 취미인 궁색한 녀석이라며 놀린다. 하지만 유짱은 싱긋이 웃기만 한다”로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사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배달 일을 하는 청년(유짱)이 있었다. 어느 비 내리는 밤, 배달 일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한 사람을 치었다. 급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길이 미끄러운 탓에 그 남자는 사망하고 유짱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살인자, 당신을 용서치 않겠다”며 울부짖는 피해자의 부인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부인 앞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용서를 빌었지만 자신의 마음에 남겨진 가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을 마치고 나온 유짱은 다시 일을 하면서 받은 월급을 한 푼도 떼지 않고 그 부인에게 송금했다. 그러기를 7년째.

유짱은 어느날 한 통의 편지를 끌어안고 나(화자)에게 달려왔다. 그 피해자 부인으로부터 처음으로 용서의 편지가 왔다는 것이다. “고마워요. 당신의 착한 마음 너무나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제 송금은 더 이상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글씨를 볼 때마다 남편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보다 부디 이제 당신의 인생을 원래대로 올려놓으시길 바랍니다”는 내용이었다.

유짱은 “편지 내용은 상관 없었다. 그것보다 그 사람으로부터 답장이 온 것이 너무 고마워서 하나님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다”며 “그는 이제 용서받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라고 나(화자)에게 물었다.

노래는 ‘나’라는 화자를 내세워 “다음 달도 분명 우체국으로 달려갈 그 착한 사람을 용서해줘서 고마워요”라며 미지의 그 부인에게 감사하고 “인간이란 슬프네요. 왜냐하면 모두 착해요. 그런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 감사안으며... 왠지 나도 끌려들어 울기 시작한 눈물이 멈추어지지 않네요”라고 끝맺는다.

하도 길고 스토리가 복잡해 따라부르기 조차 힘들어 세간에서 잊혀진 이 노래가 다시 일본에서 화제가 된 것은 2002년 한 폭행치사 사건 재판에서 재판관이 이 노래를 인용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1년 전 도쿄 세타가야 전철역에서 발생했다. 청년 2명과 은행원인 한 남성이 전철 안에서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 끝에 역 플랫폼에 내린 청년들은 은행원을 폭행, 뇌수막 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기소된 청년들은 재판에서 자신들의 폭행사실은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만취한 피해자가 시비를 걸어와 정당방위를 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재판관은 “사다 마사시의 <쓰구나이> 노래를 들어본 적 있는가?”라고 묻는다. 재판관은 “이 노래의 가사만이라도 읽는다면 여러분의 반성의 말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 얘기를 듣고 사다 마사시는 “법률은 마음을 재판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내 노래의 젊은이는 남의 생명을 뺏은 데 대해 목숨을 내놓고 성실하고 진실된 사죄를 했다. 재판장은 이 점을 말하려 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지난달 문희상 국회의장이 방미 도중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왕이 위안부 피해자의 손을 잡고 진정어린 사죄를 한다면 한일간의 역사문제는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일간에 다시 외교적 파고가 일었다. 일본 측은 총리, 관방장관 등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나서 “감히 덴노(천황)을 언급하다니 무례하다”면서 공격했고 문의장을 비롯한 한국정부는 “터무니 없는 공격”이라며 일축했다.

이즈음 필자는 연세대 정외과 교수로 있는 한 후배로부터 위 ‘쓰구나이 에피소드’를 들었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필자의 정수리에 와닿았다. 그렇다. 잔혹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우리는 10억 엔 따위의 배상을 원하는 게 아니다. 사다 마사시의 말처럼 성실하고 진실된 사죄의 말 한마디면 된다. 그 사죄의 말이 제국주의 침탈의 책임자 중 한 명인 히로히토 전 일왕의 아들 아키히토 일왕의 입에서 직접 나온다면 대부분 한국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정말 봄 눈 녹듯 사라질 것같다.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신조 등 우익 정치권 인사들과 달리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자신이 백제의 핏줄임을 밝힌 바 있고 부인 마사코 여사와 함께 한국의 문화에 대해 심취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일본이 주변국과 성실한 우호관계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하는 등 우익 정치인들과 달리 평소에도 균형잡힌 역사인식을 드러내곤 했다. 마침 그는 오는 4월 천황(일왕) 퇴임식을 갖는다.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인 아키히토가 한국을 찾아 이제 몇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린다면-.

문희상 의장이 상상했던 것은 바로 이런 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시 사다 마사시. 작가이기도 한 그는 <꿈의 유품으로>란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용서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용서한다면 끝이 없다. ‘거기까지는 용서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부터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까지-.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피해의식은 태산처럼 높고 태평양처럼 깊지만, 아키히토 일왕의 ‘쓰구나이’ 한 마디면 모두 깎여지고 메워질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베 총리여, 당신네 가수가 부른 <쓰구나이> 노래 가사를 한 번 읽어 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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