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와 가마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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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와 가마치 이야기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9.02.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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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박시현

‘누룽지가 휴대폰에게’란 제목의 책이 있다. 문학동인 ‘돌과바람’이 작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펴낸 기념 간행물이다. 이는 지난해에 70주년을 맞은 제주 4·3항쟁을 기리는 작품을 특집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누룽지’는 무언가 정겨운 할머니 세대를 지칭하는 것 같고, ‘휴대폰’은 2030 젊은 신세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할머니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간직하라고 말해주고픈 글이 모였다는 의미가 간행물의 제목에 들어 있지는 않을까 짐작해 본다.

한낮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여자 아이돌 그룹이 출연해서 팀의 리더를 가리켜 “구수한 누룽지 같은 언니”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신세대 아이돌 스타들도 누룽지를 구수하고 정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한다는 것에서 세대를 뛰어넘는 한국인의 누룽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누룽지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2년 전 한 종편 방송에서 무와 누룽지가 소화에 좋다는 사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무와 누룽지에 탄수화물 분해효소가 들어 있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게 방송의 요지였다. 그 뒤 누룽지를 응용한 식품이나 퓨전 요리가 신문과 방송에 많이 소개됐다. 가히 누룽지 전성시대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산성식품인 쌀이 반쯤 숯이 된 상태인 누룽지가 되면 약 알카리 식품으로 변하면서 '탄소'가 만들어지는데, 누룽지가 함유한 바로 이 탄소가 건강에 좋다며 누룽지가 일약 간보호 식품의 스타덤에 올랐다. 누룽지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그래서 그냥 씹어 먹으면 훌륭한 간식이 되고 출출할 땐 끓여서 누룽지밥으로 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문제없다.

누룽지는 구수함의 상징이다. 남한의 누룽지는 북한애서는 가마치고 함한의 눌은 밥은 북한에서는 물가마치라고 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신문과 방송의 인기식품 누룽지를 북한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를까? ‘가마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 샘에 ‘가마치’는 명사로 ‘누룽지’의 함경북도 방언이라고 나와 있다.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서 불려 먹는 밥은 표준말로 ‘눌은밥’이라고 한다. 고기집에서는 고기 먹은 후 후식으로 된장찌개나 냉면을 주로 주지만, 제법 많은 음식점에서 ‘누룽지밥(눌은밥)’이란 메뉴를 서비스하기도 한다. 누룽지밥에서 물의 비율이 많으면 숭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누룽지’의 북한 표기법이 ‘가마치’라면, ‘눌은밥’의 함경북도 방언은 무엇일까? ‘물가마치’라고 한다. 그런데 ‘가마치’는 생선 ‘가물치’의 제주도 방언이기도 하다. 한반도 남과 북의 끝에 있는 지역에서 뜻은 다르지만 ‘가마치’란 말이 공히 쓰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마치를 밥 삼아 함경북도 명천의 특산물인 대구포 무침을 반찬 삼아 한 끼를 해결해 보고 싶다. 요즘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 때면 보글보글 끓는 ‘물가마치’ 뚝배기 한 그릇이 생각난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물가마치 한 그릇 하실래예?”라고 남과 북이 주고 받으며 구수한 한끼 식사를 나눌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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