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외모’ 지적한 여가부...‘문화검열’ 비판 목소리 고조
상태바
‘아이돌 외모’ 지적한 여가부...‘문화검열’ 비판 목소리 고조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2.19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인 나도 동의 못 해"...여가부 "방송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면 된다" / 신예진 기자

여성가족부가 제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연일 논란을 빚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 12일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 가이드라인을 방송국 및 프로그램 제작사에 배포했다. 고착화된 방송의 성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방송 제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됐다. 이는 지난 2017년 여가부에서 방송사와 제작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을 세부적으로 나눠 제작·배포했던 가이드라인을 보완한 것이다.

문제는 여가부가 이를 통해 아이돌 그룹의 외모를 지적했다는 점이다. 여가부는 음악방송 출연자의 외모 획일성을 언급하며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음악방송 출연 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제목의 사례를 들었다.

여가부는 “음악방송 대부분 출연자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출연자의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난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통해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외모 획일화를 꼬집었다(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여가부의 지침이 전해지자, ‘정부의 아이돌 외모 규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일종의 방송 규제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여가부의 ‘탁상행정’이라는 지적과 여가부 존폐까지 언급됐다. 한 네티즌은 “규제를 하려면 차라리 길에 널린 성형외과부터 단속하는 게 빠를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획일적인 외모, 패션 등은 다 유행"이라며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라고 혀를 찼다.

대다수 여성들도 여가부의 가이드라인에 공감하지 못했다. 직장인 박모(27) 씨는 “우리나라는 이미 미의 기준이 획일화돼 있다. 마르고 하얗고 이쁜 아이돌의 음악방송 출연을 ‘비율’을 따져 막는다면 이건 예쁜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 네티즌도 “여성부가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모든 여성들이 여기에 박수를 치는 건 아니다. 공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해당 논란은 정치권으로 퍼졌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가부 가이드라인을 비판하는 글을 수차례 게재했다. 그는 지난 16일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 여두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릅니까? 왜 외모에 대해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합니까? 그것은 정부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고 국민의 주관적 취향의 문제”라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의 한 부분(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하 의원의 비판에 가이드라인 연구를 담당한 한국정책연구원이 발끈했다.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중앙일보를 통해 "하태경 최고위원이 ‘왜 외모를 가지고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하느냐’고 언급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 너무 무지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별로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비판“이라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가이드라인은 참고용일 뿐 규제 의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가이드라인은 방송 제작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외모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자막을 하나 달더라도 달리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든 교육용 자료다. 가이드라인 내용을 놓고 ‘정부가 아이돌 그룹의 외모에 기준을 제시하고 규제한다’고 하는 건 말꼬리를 잡는 데 지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연구위원의 저격에 하 의원도 “여가부가 반성을 안 한다”며 다시 입장을 밝혔다. 그는 19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표준국어대사전에 '가이드라인'의 정의를 보면 ‘언론 보도에 대한 정부의 보도 지침’으로 나온다. 여가부는 외모지상주의 심각한 문제라면서 외모검열주의 하겠다는 거다. 적폐 청산하겠다며 검열독재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 의원은 그러면서 진선미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국가가 개입해서 안 되는 부분에 여가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미디어와 대중의 선호도를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진선미 장관은 깔끔하게 가이드라인 철회하고 사과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여가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사건 무마에 나섰다. 규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과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배포된 자료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여가부를 향한 쓴소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여가부는 “방송사와 제작진들이 방송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번 안내서는 방송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가 불러오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성 역할 고정관념, 선정적 용어 사용에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성 평등한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해 방송 제작 과정에서 이 안내서가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