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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바보’와 ‘거룩한’ 할머니

기사승인 2019.02.17  17: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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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리스트 최원열

칼럼리스트 최원열

엊그제가 우리 곁에 왔던 ‘거룩한 바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년이었다. 현대인은 참 잘 잊는다. 그만큼 삶이 힘드니까 적응하기 위해 망각을 선택한 것이었으리라. 삶을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모두 다 머릿속에 두다간 온전히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기억들 중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선택해서 집중하고, 나머지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처세술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세상의 밥이 되어라”던 추기경의 사자후를 잊어서야 안 될 일이다. 그 소중한 교훈을 마음에 새겼던들 세상이 이처럼 서로 헐뜯는 전장으로 타락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10년 전 그날, 하늘도 그의 선종을 슬퍼하셨던지 메마른 땅에 비를 뿌렸었다. 마치 세상의 죄를 모두 씻어 내리듯이. 그가 생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답장을 할 때면 꼭 ‘혜화동 할아버지’란 닉네임을 썼다. 추기경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묻어나는 이름이었다. 왜 그랬을까. 항상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약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줬던 그였기에 '빛과 소금'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마다하고 굳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밥’으로 대신했을 것이다.

당시 그가 머물렀던 혜화동 주교관의 풍경은 이 나라 가톨릭 수장의 생활공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리가 부러져 쓸 수 없게 된 안경 두 개, 장애 어린이가 삐뚤삐뚤 그린 그림, 침상을 지켰던 곰인형이 그랬다. 그것들을 추기경은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며 좋아했더란다.

그는 이렇게도 당부했다. "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지 않은지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사랑의 화신 김수환이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어쩌면 이토록 적확히 지적하셨는지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혜화동 할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이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이 나라의 미래와 민초들의 삶이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여기 추기경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이웃에게 밥이 되는’ 사랑을 죽음을 넘어 실천한 ‘거룩한 할머니’가 있다. 지난달 하순,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돌아가신 노덕춘(85) 할머니.

경찰이 할머니의 집에서 찾은 건 현금 1700만 원. 은행권에 맡겨진 재산은 1억 3000만 원 가량이었고, 임대 아파트 보증금 3400만 원도 할머니가 이웃들에게 남긴 ‘밥’이었다. 할머니는 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 죽으면 장례 치르고 남은 돈은 동사무소 등과 협의해 좋은 곳에 써주세요." 유언장은 사전에 변호사 인증까지 받아 눈에 잘 띄는 아파트 관리카드에 곱게 접혀져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9년 전 모교인 부산 경남여고에 직접 찾아가 무려 1억 원을 훌쩍 넘는 가치의 골드바를 쾌척했다. 학교발전기금 기탁서에 "부정맥이 있는 학생들을 도와 달라. 또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달라"고 적었다(그런데 아쉽게도 부정맥이 있는 학생을 찾을 수 없어 돈은 할머니에게 되돌아왔다). 자신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을 앓았던 할머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다. 심장 질환으로 인해 직장을 갖지 못했고, 간간이 혼자 노점상을 꾸리며 살아왔다. 이렇게 수십 년을 힘들여 모은 돈을 모교에 쾌척한 데 이어, 천안함 유족을 위해서도 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거다.

필요한 곳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던 노덕춘 할머니.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대했다. 무엇 하나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 이웃의 신고로 119대원이 출동했더니 할머니가 보일러도 틀지 않고 두꺼운 옷을 입고 모포만 두르고 계셨더란다. 그야말로 ‘세상에 밥이 되고자 했던’ 추기경의 뜻을 몸소 실천하신 ‘거룩한 할머니’가 아닐는지.

우리는 삶이라는 배에 너무 많은 짐을 실었다. 남을 배척하는 에고(ego)라는 짐을! 우리 모두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돌아보자. 과연 ‘거룩한 바보’와 ‘거룩한 할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손을 잡아줄 자세가 되어 있는지. 마음이 준비되면 행해야 한다. 따스한 미소 짓기부터라도 당장 시작해보자.

칼럼리스트 최원열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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