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한국 최초 미투, 그후 1년②] 빈번한 성희롱으로 대학가 상아탑 명성은 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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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 한국 최초 미투, 그후 1년②] 빈번한 성희롱으로 대학가 상아탑 명성은 쇠락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1.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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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 단톡방이 성희롱 주범...대학은 상담센터 설치, 피해자들은 외부 여성단체 선호 / 신예진 기자

‘학문과 지성의 요람’, ‘지성의 상아탑.’ 대학을 칭하는 수식어는 고상하다. 대학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학생들도 이에 동의할까. 시빅뉴스가 만난 대다수 대학생들은 손사래를 치며 ”옛말“이라고 했다. 과거 지성인들의 배움터였던 대학 역시 ‘미투’ 광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경남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숨죽여 울던 피해자들은 미투 바람과 함께 수면 위로 올랐다. 피해자들은 대자보를 붙여 문제를 제기했고, 연대하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은밀한 그곳, 남학생들의 단톡방

대학 내 성폭력이 가장 만연한 곳은 다름 아닌 ‘카카오톡 단톡방’이다. 미투 열풍이 발생하기 전부터 ‘남톡방’, 남학생들의 카톡방은 매년 논란거리였다. 보통 단체 대화방을 자신들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여자 동기나 선후배를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 대학생 안모(23, 부산시 진구) 씨는 “나도 누군가의 단톡에서 언급됐을 것 같다. 같은 성별인 여자 친구들도 내 몸매가 좋다고 자주 부럽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당연히 (나에 대한 얘기를) 했지 않겠나. 내가 카톡을 해킹하지 않는 한 성희롱하는 남학생을 잡는 건 불가능하니 그냥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고 했다.

안 씨의 말처럼 남학생 단톡방 성폭력은 대화가 누군가로 인해 표면에 드러나야만 피해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지금까지 단톡방 피해 사실은 단톡방을 우연히 확인한 피해자의 지인이 이를 폭로하는 식으로 공론화됐다. 지금까지 2014년 국민대, 2016년 고려대, 2017년 연세대에 이어, 2018년에는 서울대, 홍익대 등에서 남학생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샀다.

지난해 11월 불거진 홍익대 모 학과 16학번 남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서는 남학생들이 같은 과 동기 여학생이 춤을 추는 영상을 단톡에서 공유했다. 그 단톡방 안에서 남학생들은 ”X감으로 보내 달라“, ”돈 줘도 안 사귄다“, ”옆에서 애교 떨면 하룻밤 자긴 좋지“, ”애나 생겨라“, ”고X 물리고 싶다“ 등 성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홍익대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남학생 3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남학생 카톡 단톡방은 판도라의 상자다. 시빅뉴스가 만난 대다수 남학생들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에 언급된 사건 정도의 심한 성희롱은 아니지만 특정 여성에 대해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 모 대학 4학년 A(27) 씨도 “단톡에서 여자 얘기 안 한다는 남자는 남자친구 상대로 거르는 것이 좋다. 왜냐면 그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단톡방에서 여자 얘기를 하루라도 안 하는 날이 없다. 지인이나 여학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하진 않지만 솔직히 ‘00이가 더 이쁘지’ 정도는 하는 것 같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거나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두고는 ‘가슴 크네’ 등의 대화를 단톡에서 주고 받는다”고 했다.

남학생 중에서는 남학생 단톡방의 성희롱이 심하지 않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부산 모 대학 3학년 최모(25, 경남 창원시) 씨는 “교양과목 시간에 만난 여학생들이나 어쩌다 알게 된 여자들의 얘기는 항상 단톡방에서 언급된다. 나도 여자친구가 있어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다. 그냥 단톡에서 여학생 외모에 대해 농담처럼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최 씨는 이어 “솔직히 카톡은 우리끼리만 보는데 완전 심한 성희롱도 아니고 별로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가 지난 2018년 4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더 팩트 문병희 기자, 더 팩트 제공).

강화된 교내 상담센터, 찾지 않는 학생들

정부는 지난 연말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5월부터 대학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운영실적은 3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과 연계한다. 교육부는 또한 성희롱 예방과 치유를 위해 전문성을 갖추고 효과적으로 전담 기구를 운영하는 대학을 선정해 3억 원도 지원할 예정이다. 유은혜 부총리는 “(이런 교육부의 조치가) 학교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고발하는 학생들의 미투에 응답하는 대책”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상담센터 전문화에 나섰다. 지난해 부산대, 부경대, 경북대, 경상대, 창원대 등은 성폭력 상담실, 여성 커리어 개발센터 등으로 세분화해서 운영하던 상담 센터를 ‘인권상담센터’로 통합했다. 남녀 구분하지 않고 폭넓게 상담을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대구대학교는 미투 운동 이후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별도로 설치했다.

이처럼 정부와 대학이 학생들의 용기 있는 미투에 발을 맞췄지만 갈 길은 먼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교내 상담센터에 대한 얕은 ‘신뢰’가 그 이유였다. 부산의 모 대학 3학년 신모(22) 씨는 “학교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피해를 학교에 얘기하면 비밀 보장이 제대로 될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가해자도 우리 학교 학생일 텐데 학교 이미지를 위해 좋게 마무리하려고 애쓰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대학생들은 대학 내 상담 센터가 아닌, 외부 여성 단체, SNS 대나무숲, 대자보 등을 활용하겠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다수였다. 부산의 한 대학 3학년 김모(22) 씨는 “교내 상담 센터를 먼저 찾아가기보다는 인터넷에 글을 쓸 것 같다. 익명도 보장되고, 무엇보다 빨리 공론화되기 때문이다. 단톡 몇 군데만 올려도 금방 퍼진다. 그러고 나면 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최모(25, 경북 안동시) 씨는 “여성단체를 찾아가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여성들이 똘똘 뭉친 혜화역 집회 못 봤나. 여성 단체를 찾아가면 구체적으로 조언을 얻고 내 편까지 생기는 거다. 만약 내가 교내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면, 가해자가 정학이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게 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워가 있는 여성 단체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대학 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 건수가 특별히 늘지 않았단다. 창원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미투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학생들에게 홍보를 활발하게 했다. 그러나 미투 논란 전과 비교해서 성폭력 상담 건수가 늘지 않았다.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학생들 개개인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 등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 상담은 1년 365일 항상 열려있는 1366이나 전국 180여 개의 지역 성폭력 상담소를 통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발생시 혼자 대처하기보다는 상담소를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얻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펴낸 <보통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 이 책은 성폭력 사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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