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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점기 편④] "크게 생각하고 원대한 목표를 세워라"...중단 없이 봉사하고 노력하는 백점기의 삶

기사승인 2019.01.16  19: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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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해양공학계 양대 ‘노벨상’ 수상 백점기에게 해양∙재난 안전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점기 편③]에서 계속.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4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은 '선장보다 학자'... 난, 뱃멀미 체질

세계적 조선해양공학자 백점기의 꿈, 어떻게 키웠을까? 그는 경남 사천 바닷가 출신이다. 그는 고향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진학을 위해 부산으로 ‘유학’ 왔다. 바닷가에 살며 마도로스를 꿈꿨던 그, 대학원서를 내야 할 때, 그는 부산대 조선공학과와 한국해양대 항해학과의 원서를 들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선장보다 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뱃멀미를 하는 체질이다.

Q.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 취직했다가 갑자기 일본 유학을 떠났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

"내가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비전이란 남보다 한발 앞서서 미래를 보는 것 아니겠나. 모든 기술이 그렇듯 혁신해야 살아남는다고 봤고, 당시 조선기술에서 세계 최고인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1981년 일본 유학을 떠날 때 편도 비행기표를 갖고 갔다.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10만 엔, 당시 환율로 30만 원 정도였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석사∙박사과정을 장학금으로 마쳤다. 학교에서 준 장학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유학을 마쳤다. 그가 학업을 마친 오사카대학 조선공학연구실에는 ‘백구상(백 교수의 일본 호칭)’이 학위과정 중 밤을 새워가며 쓴 논문 편수가 전설로 남아있다.

Q. 논문을 많이 쓰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동안 쓴 논문들이 세계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았다. 그 비결이 뭔가?

“나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을 시험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암기가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요즘처럼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있는 세상에 암기는 유용성이 떨어진다. 창의력처럼 교과서에 없는 부분은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좋은 논문을 쓰는 비결은 있을 수 있다. 좋은 재료를 구해 맛있고 품격 있는 요리를 만들 듯, 좋은 주제를 잡고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 하나의 가이드라인은 있다. 난 그걸 학생들에게 전수하려 노력한다." 그는 ‘Think Big, Aim Big’(크게 생각하고, 원대한 목표를 세워라)을 강조한다. 그는 그 목표를 향해 휴일에도 일을 한다. 조선해양계에서 세계를 장악하고 싶은 생각과 목표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화재폭발 안전기술∙대책 모색... 국가∙사회 공헌 다짐

Q. 교육자로서도 조선과 해양플랜트 인재양성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 인재…, 사정이 어떤가?

"많이 부족하다. 실상 조선분야는 기술이 표준화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국산 자립화도 100% 수준이다. 해마다 1000여 명의 인재를 양성, 배출하고 있다. 기술 표준화 덕분에 시스템 속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는 다르다. 시장규모는 조선 부문보다 3배 정도 크고, 기술은 한창 개발상태이다. 2030년까지 1만 6000명의 해양플랜트 기술사가 필요하나, 지금은 턱없이 모자란다. 지금 나의 직접 지도를 받고 있는 석박사 학생들이 40여 명, 입학만 하면 졸업 후 보내달라는 기업의 요청이 잇따른다." 그래서일까? 그는 경남 하동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에 에버딘대 분교를 유치하고, 2008년부터 부산대에 로이드선급재단 우수연구센터를 유치, 운영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선박해양플랜트 기술연구원의 원장도 맡아 운영하고 있다.

Q. 최근 사회봉사에도 열심이다. 안전행정부 산하 화재폭발안전포럼 이사장을 맡아 안전대책 대응체계 구축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지금까지 교육과 연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데에도 더욱 힘을 쏟고 싶다. 화재폭발 문제, 국내외적으로 육상-해양-일반가정에서까지 빈발하는 추세다. 귀중한 인명과 재산손실, 환경재앙을 일으킨다. 화재폭발 관련 안전기술과 대책을 연구개발, 국가∙사회에 공헌할 각오다."

그는 2013년 12월 (사)화재폭발안전포럼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사)화재폭발안전포럼은 화재폭발 사고의 발생 메커니즘과 위험도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할 안전기술과 대책의 연구개발, 관련 정보교류, 행정제도 규정의 개발을 포함한 정책 제안과 자문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계·산업계·정부출연 연구기관 전문가와 정관계 인사까지, 130여 명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그 명칭은 그리 거창하지 않더라도, 자문위와 15개 기술위원회 참여인사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알차기만 하다. 포럼 산하에는‘국제 선박해양플랜트 화재폭발 조사관협회(IFEO)’도 두어 선박해양플랜트 화재폭발 사고 조사관 인력양성도 수행할 예정이다.

백 교수는 최근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정부 산하 화재폭발안전포럼 이사장으로 취임, 열정을 쏟고 있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사진은 포럼 발기인 총회 기념 촬영 장면(사진: 차용범 제공).

"난 이제 60대... 사회공헌에 더 열정 쏟을 터"

부산사람 백점기, 그는 유학시절을 제외하곤 오직 부산에서 연구∙교육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부산은 자기 전공을 골라 공부한 장소를 넘어, 그 전공, 조선해양 부문 '세계 최고 도시'라는 믿음 때문이다. 부산은 한국의 한 도시를 넘어, 세계 조선해양산업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세계 조선해양의 첨단기지가 거제∙하동이라면 그 중심에 부산이 있다는 자부심이다.

부산은 주변을 두루 포용하는 개방성을 갖고 있는 만큼, 경남∙울산권도 두루 감싸 안으며 동북아 중심도시∙세계 속 선진도시의 포부와 야망을 키워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부산에 아쉬운 것은? 부산, 외형적으로 엄청나게 성장∙도약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측면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부산, 조선해양 부문의 세계중심 역할을 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산업과 사람을 연결하는 그 리더십을 더 키워 가야 하리라는 바람이다.

Q. 학자로서 역사적 업적을 이뤘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내 나이 이제 60대다(2019년). 할 일도 많이 남아 있다. 젊었을 때 연구∙교육에 치중한 만큼 이제 사회공헌 활동에 더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다. 아직 많이 바쁘고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난 그런 강연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 않고 가능한 한 받아들일 생각이다. 강연료도 사회봉사 차원에서 처리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화재폭발안전포럼 활동 역시 참 가치 있는 사회공헌이라고 믿고, 열정적으로 운영하며 제 몫을 다하도록 할 각오다."

Q. 평소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나?

"선천적으로 좋은 체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그럴 여유는 없다. 부산대 정착 이후 지금까지 계속 출근 거리 10분 이내 지역에서 살고 있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온천천을 걷고, 그러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젊었을 땐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학교 부근에 자리 잡았지만, 이젠 그 '걷기 출근'이 건강에도 좋더라."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는 PC가 없던 시절, 번개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 검증할 시간을 아끼려 오직 학교 인근에 머물렀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는 것, 세계를 선도하는 그의 지적 성취 속에는 스스로를 온전히 잊는 몰두와 열정이 깔려 있으리니.

Q.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은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다. 2개의 큰 상(메달)은 나의 목표였기보다는 성취에의 보상이다. 그 메달 수상 사실은 역사에 남겠지. 그 상, 워낙 위대한 분들이 60-70대에 받는 상이다. 나는 '내가 과연 이 상을 받을 만한가?'를 자문하곤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영광임은 분명하다.

다만, 전문가로서의 목표는 뚜렷하다. 선박해양플랜트 분야, 아직 사고도 많고 인명∙재산∙환경 피해도 엄청나다. 이런 재난을 막는 일, 한 두 사람, 한 두 나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전 지구적 대응이 절실한 난제다. 나는 앞으로도 더 노력하겠지만, 그저 '대형재난 대응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 정도로 평가받으면 충분하다."

 

세계적 공학자의 꿈?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본받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관 백점기 교수의 연구실. 한 쪽 벽면의 해외활동 기록사진과 수상메달, 긴 탁자 위의 영문저널과 원고들이 선뜻 눈에 띈다. 방 한 쪽에는 한국과 영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영국 국기? 그는 영국 로이드선급재단 우수연구센터를 유치, 10년간 현금 220만 파운드(40억여 원)를 지원받고 있다. 그는 센터장이다. 그 지원에 감사하는 '의리'의 표현이다.

부산대 연구실의 백점기 박사(사진: 차용범 제공)

뜻밖의 장식도 있다. 네델란드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과 이탈리아의 예술가∙과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초상화다. 두 사람의 공통점, '천재'다. 1993년 덴마크 공대 초빙교수 시절 구입했다. 그의 내면을 짐작하며 묻는다. "그 천재들을 닮고 싶은가?"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들을 본받고 싶다"고. 그는 두 위대한 예술가가 당대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곤 했어도 실상 '어마어마한 비전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남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천재'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실상 고흐나 다 빈치 같은 천재를 꿈꾸는 있음이 틀림없다. 그는 앞으로 '김연아급' 초일류 과학자를 양성할 꿈을 갖고 있지만, 그는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창조적 공학자'다. 그의 남은 비전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천재다움을 더 성취할 것인가? 모두들, 참 궁금하지 아니한가?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곽경택 편①]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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