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향한 여행③]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넋을 잃다
상태바
[시간을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향한 여행③]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넋을 잃다
  • 취재기자 이주현
  • 승인 2019.01.15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래킹 코스의 열정과 마추픽추의 신비함에서 찾은 건 나의 '잃어버린 시간' / 이주현 기자

페루 리마에서 마추픽추를 가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차를 타고 빠르고 편하게 가거나,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해 며칠에 걸쳐 바이킹, 래프팅, 집라인, 트래킹 등 액티비티 체험을 하면서 마추픽추를 가는 방법이 있다. 두 일정 모두 무조건 페루 어디에서든 마추픽추 입구인 쿠스코에 도착해서 일정이 시작된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나와 친구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는 리마에서 마추픽추가 있는 쿠스코로 떠나기 전, 한인 여행사의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이라는 2박 3일 투어를 신청했다. 실제 여행 기간은 2017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2박 3일이었으며,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이 포함돼 있었다.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은 저가형 패키지 투어이므로 숙소나 식사 환경이 일반 투어보다 열악하다고 사전에 여행사가 알려줬다. 그래서 보통 몸이 약하거나 연세가 있는 여행자들은 기차를 타는 것을 선호하고, 액티비티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이 투어를 선택한다고 한다. 물론 기차도 좋지만 우리는 비슷한 가격에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하고 싶어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에 나섰다.

투어의 일정은 첫날부터 바쁘게 시작됐다. 우리는 아침 7시부터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함께 여행할 여행자들을 만나 승합차에 올라탔다. 여행자들 중에는 캐나다에서 온 커플부터 유럽인들까지 다양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떠난 여행자들이 마추픽추라는 공통점으로 쿠스코에서 모였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구불구불한 살길을 한참 달리던 승합차가 산 중턱에서 멈춰 섰다. 이어 가이드가 아침엔 미처 보지 못했던 차 위에 실린 자전거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첫날 일정은 ‘55km 자전거 주행’과 ‘래프팅’이었는데, 나는 자전거 주행이 패키지 투어의 액티비티 중에서도 가장 걱정됐다. 자전거를 탈 수는 있었지만 어린 시절 말고 타본 적이 오래돼서 잘 타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받은 자전거는 다리가 긴 외국인들이 타는 것인지 바닥에 발도 닿지 않아 무서웠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옆에 있던 한 후배가 선뜻 자신의 낮은 자전거를 내 자전거와 바꿔줬다. 고마운 후배 덕분에 큰 사고 없이 55km 자전거 주행을 끝마칠 수 있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자전거로 달린 길은 2차선 좁은 도로였고, 살짝 경사진 내리막길이라 조금만 핸들은 꺾으면 차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위험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 몇 번의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나서야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 뒤에는 타고 왔던 승합차가 뒤따르면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은 승합차를 타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길을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로 완주하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 만년설로 둘러싸인 길을 달렸다. 그날따라 하늘은 파란 물감을 칠한 것처럼 파랬고 기분 좋은 바람이 계속해서 나를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온 신경은 자전거에 있었다. 길은 포장됐지만 구불구불했고, 만년설이 녹아 모인 웅덩이들은 지날 때마다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그럼에도 내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뒤의 친구 덕분이었다. 그 친구는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으며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 달인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뒤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줬다.

뒤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 서투른 자전거 실력에 나는 혹여나 넘어질까 앞만 보고 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옆에 있는 만년설에서 녹아 모인 호수를 보라고 친구가 말했지만, 온통 자전거에 신경이 가 있어 들을 수 없었다. 호수는 보지 못했지만 자전거를 타는 내내 내 뒤에서 나를 신경 써주는 친구의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어떻게 달렸는지 모를 3시간의 자전거 주행이 끝이 났다. 한껏 긴장했던 탓에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주저앉아 버렸지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뿐이었지만, 막상 달리고 보니 끝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주 큰 선물이 있었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그림 같은 풍경과 느끼지 못했을 성취감은 바이킹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얼마나 고됐는지 바이킹 후 이동한 식당에서,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던 향신료 가득한 점심 식사도 깨끗이 비웠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우리는 남은 ‘래프팅’ 일정으로 이동했다. 래프팅은 꽤 서늘한 날씨와 차가운 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빠른 물살과 스릴 넘치는 속도감에 해지는지 모르고 노를 저었다. 익살스러운 래프팅 가이드 덕분에 배가 뒤집히고 수없이 빠지기도 했지만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저녁에는 투어 첫 일정이 끝나는 게 아쉬워 친구들과 몇 번의 다이빙을 하고서야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 첫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둘째 날 역시, 아침 일찍 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렸다. 둘째 날의 일정은 오전에 ‘집라인’을 타고, 점심 식사 후 ‘기찻길 트래킹’을 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첫날의 자전거 주행보다 더 큰 도전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나는 집라인을 이전에 타본 적이 없었으나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각종 안전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부터 느낌이 수상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어 집라인 줄을 내 몸에 연결했을 땐, 도저히 내 발을 뗄 수 없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집라인은 골짜기를 낀 협곡에서 반대편 절벽을 향해 지그재그 모양으로 5번의 집라인과 1번의 다리를 지나 원래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때문에 한번 출발하면 5번의 집라인을 모두 바꿔타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놀이동산의 무서운 놀이기구도 좋아하는 나였지만, 더욱 발을 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집라인은 탑승하면 저절로 출발하는 놀이기구가 아니고 내가 스스로 마음을 먹고 발을 떼야 움직였다. 결국 나는 내가 부릴 수 있는 엄살을 모두 부리고서야 겨우 첫 발을 뗐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마치 푸른 하늘과 발 밑의 대자연을 배경 삼아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이 솟았다. 그때 내 두 볼에 스치는 바람을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마음먹는 것이 어려웠지 그 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나는 한 번 타고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전 가이드와 농담하는 여유까지 보이며 남은 집라인을 모두 탔다.

안전 가이드와 집라인을 타고 있는 친구의 모습. 5번의 집라인은 각각 다른 자세로 탈 수 있었는데 무게가 무거우면 속도가 빨라 재미있다는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가이드와 함께 탔다. 실제로 타고 보니 빠른 속도감이 더욱 재미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마음먹는 것이 절반이었던 집라인을 뒤로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계속해서 걸었다. ‘기찻길 트래킹’이었는데, 기차를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3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기찻길을 걸으면서 산속에 있는 허름한 집에서 식사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터널과 다리도 건너며 같은 패키지 여행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곧 취업을 해야 하는 등 한국에서 놓인 내상황도, 그 어떤 다른 걱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과 그 길 위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런 점이 참 좋은 것 같다. 물론, 내 상황도 걱정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늘 내 곁에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발아래 지긋이 밟히는 나뭇잎 소리나,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오가는 바람 소리처럼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찻길을 계속해서 걸어야 했던 트래킹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는 온전히 나와 여행자들이 함께였다.

기찻길을 따라 걷는 나와 일행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길을 걸으며 마추픽추로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찻길이었지만 트래킹이 아니면 들릴 수 없는 산속의 식당과, 걷다 마주한 일몰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우리가 트래킹으로 지칠 때쯤 발견한 표지판. 표지판에는 화살표로 마추픽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표지판을 보고 마추픽추를 향한 기대감에 힘을 내서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그날 밤 우리가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라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마추픽추를 가는 모든 여행자들이 들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마을이 작고 아담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주로 여행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확연히 비싼 물가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음날 마추픽추로 가는 버스 표를 구매하고 일찍 숙소로 향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마을 사진. 기차가 지나가는 작은 마을이다.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있는 위치 탓에 늘 여행자들로 새벽부터 붐빈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지만 골목마다 아담한 분위기가 일정보다 더 머물고 싶게 만들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마추픽추 정글 트래킹 3일차가 되던 날 새벽 4시, 누군가 우리 숙소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날 우리는 마추픽추 일출을 보는 일정만이 남아있었는데, 혹여나 우리가 일어나지 못했을까 걱정이 됐던 가이드가 직접 올라와 우리를 깨운 것이다. 덕분에 짐을 잘 챙겨 전날 구입해 뒀던 마추픽추 행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지만, 자다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은 어떻게 해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여행자 역시 상황은 같았다. 마추픽추는 일출을 보려는 여행자들이 많아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몰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마추픽추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마추픽추 입구 모습. 줄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새벽부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곧 마주하게 될 마추픽추를 향한 기대감을 감출 수 없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사람들이 서있는 줄을 따라가다 마침내 마추픽추에 들어섰을 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짙은 안개 때문에 그 사이로 겨우 마추픽추를 볼 수 있었지만, 내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마냥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마추픽추를 둘러싼 봉우리에 시선을 옮겼을 땐, 한참을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웅장한 봉우리들과 기세 높은 산세는 나를 압도하며 발아래 구름을 둔 공중도시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이 장관을 마주했을 잉카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떠한 이유로 이곳까지 올라와 도시를 만들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안개가 채 다 걷히지 않은 마추픽추. 처음 이것보다 더 짙은 안개에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곧 안개가 모두 걷혔다. 이 안개 때문인지 한층 더해진 마추픽추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계속해서 발길을 이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이내 해가 뜨기 시작하더니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마주한 마추픽추는 과연 그 명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잉카인들이 머물렀을 주택과 그 뒤편의 계단식 경작지였다. 지금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정교한 건축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집에서 잉카인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안개가 모두 걷힌 마추픽추. 우려와 다르게 해가 뜨자 안개가 모두 걷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추픽추도 훌륭했지만 사방으로 둘러싼 장엄한 봉우리가 일품이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주택으로 추정되는 건축과 계단식 경작지. 마추픽추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 아래에서 보면 그들의 뛰어난 건축이 더욱 눈에 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주택과 경작지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냈을 신전과 제단, 광장, 해시계까지 잉카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잉카인들은 태양신을 섬겼는데, 태양뿐만 아니라 돌 하나까지 허투루 보지 않고 건축에 활용했다. 처음에는 잘 몰라 그냥 지나가기도 했지만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것이 없었다. 걸어 올라가기도 힘든 이 산세 깊은 공중 도시에 어떻게 몇 백 톤이나 되는 돌을 옮겼는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지금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정교한 석조 기술은 내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마추픽추의 석조 기술을 증명하는 건축의 일부분. 종이 한 장도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아귀가 맞는 석조 기술은 몇 번의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마추픽추에 사는 야마. 우리나라에서는 라마라고도 하지만 페루에서는 야마라고 한다. 흔히 알파카와 생김새가 비슷해 많이 혼동하는데, 라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알파카가 조금 더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생겼다(사진: 취재기자 이주현).

 

마추픽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로다. 수로는 어찌나 정교하고 계획적으로 만들었는지 지금까지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떠한 이유로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도시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흘러왔을 이 수로의 물만이 마추픽추의 잃어버린 시간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마추픽추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이곳에 도착했지만 나는 마추픽추를 둘러보면 볼수록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 늘 그랬지만 내가 페루에서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을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처음 지구 반대편의 나라 페루에 간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고 걱정해줬던 사람들이었다. 한국과 14시간의 시차와 20000km가 넘는 거리였지만, 마음의 거리는 늘 그들과 가까웠고 애틋했다.

마추픽추 여행을 할 때쯤 페루의 생활에 적응은 됐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자기 전 그리운 마음을 담은 전화를 가족에게 하고 잠이 들면, 늘 꿈에 그들이 나와 깨기 아쉬운 아침을 맞이하게 했다. 그러던 나에게 2박 3일의 마추픽추 여행은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편안함에 안주했던 나에게 도전을 가르쳐줬고, 당연함에 잊었던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일깨워 줬다. 마추픽추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떠난 여행에서 나는 내가 그 동안 잃어버렸던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