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자판기’를 갈아야 정치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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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자판기’를 갈아야 정치가 바뀐다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8.12.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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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문재인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여러 정치개혁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대통령 중임제를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과 국민기본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은 지난 6월 지방선거와의 동시투표가 야당의 반대로 좌절된 후 물밑으로 가라앉아 그 누구도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검경수사권 조정·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도 소리만 요란하더니 오리무중이다. ‘사법농단’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사법부도 제 식구 감싸기에나 급급할 뿐 근본적인 개혁엔 관심이 없지 않나.

그나마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구제 개혁’ 정도가 살아있는 이슈인데, 그마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이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 언제 가뭇없이 꺼질지 모른다. 내년 예산안과 선거구제 개혁을 연동하자는 군소 3당의 요구를 거대 양당이 들은 척도 않고 깔아뭉개자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와 정의당 대표 이정미가 단식에 들어갔던 건 다들 아는 터다. 대통령이 엄호사격을 하고 거대 양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 검토를 약속하고서야 단식이 끝났다. 그런데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유한국당은 “검토해 보자고 했지 언제 들어준다고 했느냐”고 오리발을 내민다. 더불어민주당도 “100%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시행할 생각은 없다”고 초를 친다.

우선 퀴즈 하나부터. 재작년 총선 당시 의석 분포는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었다. 그럼 그때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면?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각각 79석과 104석,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83석과 23석을 얻게 된다. 민주당이 제3당으로 내려앉고, 국민의당이 어엿한 원내 2당이 되며, 정의당도 당당히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되는 거다. 당시 정당득표율이 민주당 25.5%, 새누리당 33.5%, 국민의 당 26.7%, 정의당 7.2%였기 때문.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또 뭘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자. 현재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지역구에서 최다득표자가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비례대표제가 병존한다. 그러니까, 전체 300석에서 지역구 253석을 뺀 47석에 대해서만 정당득표율로 나누는 거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의 당선 숫자와 무관하게 정당득표율에 의해 의석수를 결정하는 방식. 만약 어떤 정당의 정당득표율이 30%이라면 총 정원 300명의 30%인 90명을 갖게 된다. 만약 그 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50명이 당선됐다면, 비례대표를 40명 가져가 자기 몫 90명을 채우는 방식이다.

정당득표율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지역구 선거에서 자당 후보가 2등 이하로 맥을 못 추는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이 이 제도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나. 영·호남 지역구도가 엄연한 현실에서 한국당이 영남과 농촌의 지역구를, 민주당이 호남과 대도시 지역구를 쓸어먹은 다음 얼마 되지 않은 자투리 비례대표 몇 석을 선심 쓰듯 작은 정당에 던져주는 게 현행 제도인 거다. 거대 양당은 떡을 제몫보다 훨씬 많이 잘라가고 작은 정당은 콩고물이나 얻어먹는 것이니 표심의 왜곡, 투표의 비례성 훼손이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현행 선출방식의 문제점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지역구에서 단 한 표라도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도이니 2등 이하의 후보를 찍은 표는 원천적으로 사표가 된다. 누군가가 3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면 다른 정당에 간 70%의 표는 쓸모가 없게 되지 않나.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평소엔 작은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도 거대 양당에 표를 던지게 되니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의회에 뿌리내릴 수 없게 된다.

그 결과로 제 몫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챙긴 코끼리정당과 하마정당 둘이서 갖가지 국정 현안을 쓱싹쓱싹 바꿔먹기 하는 거다. 이번 예산안 심사만 해도 그렇지 않았나. 양당이 국회 예결위원의 대부분을 차지한 다음 소위원회니 ‘소소위’니 해서 밀실에서 예산을 척척 갈라먹는 거다. 힘 있는 여야 대표나 소소위 위원들끼리 쪽지를 돌려가며 나무늘보가 흰개미 핥아먹듯 챙겨가는 선심성 지역구 예산이 도대체 얼마인가. 보유 주식은 미미한 데도 지주회사를 지배해 떵떵거리며 갑질하고, 자식에게 상속하는 재벌들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문제는 또 있다. 여야 양당이 사사건건이 싸우고 저희들끼리 발목을 잡아 시급한 국정 현안이 표류하면 도대체 어째야 하나.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작은 정당들은 중재는커녕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꼴이 되는 게 현실이다. 부모가 싸워 집안에 분탕질이 나면 자식이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데 자식들이 너무 어리고 약하면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만능이기만 한 건 아닐 터. 300석인 전체 정원은 묶어두되 지역구를 200석으로,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재조정하자는 게 선관위의 안이다. 하지만, 지역구 53석이 줄어드는데도 현역들이 “알겠소” 하며 선선히 고개를 끄떡일 턱이 없다. 다음 선거 당선을 위해서라면 ‘철새’ 노릇에 온갖 정치적 배신도 마다 않는 그들이 제 밥그릇 줄어드는 걸 보고만 있겠나. 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면 어쩔 수 없이 밥그릇이 늘어나게 돼 있다.

이 대목이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로는 숫자를 늘리자면 고개부터 가로젓게 돼 있다. 여야로 갈려 맨날 싸움질이나 벌이고 꼭 필요한 법안도 태산처럼 쌓아만 두고 있는 게 국회가 아니냐는 거다. 거기에다 걸핏하면 뇌물에, 이권 챙기기에나 골몰하고 온갖 특권으로 장착해 외유나 다니는 게 그 인간들 아니냐, 지금도 신물이 나는데 뭐가 예쁘다고 숫자를 더 늘려준단 말이냐.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들의 이런 고정관념이 틀렸다고 할 수만도 없다. 그러니, 거대 양당은 국민들의 이런 거부심리를 끌어다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반대 논리로 써먹는다.

하지만 이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 격이 아닐까.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숫자 자체가 많은 건 아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독일 하원의 정수는 598명인데 투표결과에 따라선 100석 이상의 초과의석도 발생한다. 프랑스는 576명이다. 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도 스웨덴, 영국, 독일이 각각 3만, 5만, 12만 명인데 한국은 17만 명이 넘는다. 200명을 뽑았던 제헌국회 때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가 10만 명이었던 게 1.7배로 늘어난 거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따르는 국민의 저항감을 줄이고, 국회의원의 대표성·비례성을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더러 말하라면, 현행 47석인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리는 대신 253석인 지역구를 230~240석 정도로 줄여 전체 정수를 330~340석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다. 지역구를 확 줄이라면 거대정당들이 아예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전체 정수를 10% 가량 늘려주는 대신 지역구도 좀 깎고 비례대표를 제대로 확대하는 절충형 말이다.

세비나 유급보좌관 운용 경비 따위는 대폭 깎아 전체 총액으로는 현행 300석 때와 비슷하게 묶는다는 걸 선거구제 개편의 전제로 삼으면 어떨까. 국회의원들이 제 손으로 세비나 기타 경비를 멋대로 올리지 못하게 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정하도록 하는 식 말이다. 하기야, 그렇게 한대도 제 잇속 챙기기에 그악스러운 사람들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때는 다시 대처하기로 하고 일단은 제도 개선에 나서 봄 직하지 않나. 사실 말이지, 국회의원들이 지금처럼 왕이나 된 듯 날치는 건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의원 한사람이 휘두르는 권한이 너무 큰 탓도 있다. 잘만 하면 늘어난 비례대표 의원 자리에 청년, 여성이나 소외된 계층의 직능대표를 채워 넣는 효과도 나올 수 있다.

다시 요약하자. ‘표’라는 이름의 동전을 집어넣으면 ‘국회의원’이란 이름의 음료수 캔이 또르르 굴러 나오는 자판기를 연상하면 될 게다. 지금 자판기는 너무 구형이어서 동전을 집어넣어도 ‘민주당’, ‘자유한국당’이란 두 종류 밖에 나오지 않는다. 보수에서 중도 보수, 중도 진보, 진보를 아우르는 여러 맛을 가진 음료수를 맛볼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거다. 자판기에 다양한 회사의 음료수가 진열돼야 서로 품질 경쟁도 하는 법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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