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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③] 근검 실속 경영으로 기업의 사회공헌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

기사승인 2018.12.17  19: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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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장학 사업가 장복만에게 육영(育英)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②]에서 계속.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역개발, 소외계층, 국가유공자 지원에도 열성

장 회장은 남에의 배려․나눔에도 꾸준하다. 영역은 넓다. 사회․이웃이 도움을 절실해 할 때, 힘닿는 한 뒷받침을 다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BS금융의 지역아동센터 시설개선작업에, ‘희망주택’ 집수리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부산지역에서 공부방 시설이 열악한 대표적 지역아동센터 16곳은 동원개발을 비롯한 4개 건설사의 도움으로 시설을 현대화했다. 부산 동구 범일동 김모(79) 씨 가족은 화재로 집을 잃고 6개월째 동네 경로당에서 생활하다, 지난 4월 불탄 집을 수리한, 멋진 새집으로 이사했다. 새집 시공은 동원개발 몫. 동구 각 단체들은 목재를 지원하거나 도배, 장판깔기 같은 잡무를 지원했다. 김 씨의 새집은 HOPE(House of Peaple's Empowerment: 서민 주거역량 강화를 위한 집) 하우스의 첫 번째 사례. HOPE 하우스(희망주택)는 남구 문현동, 중구 대청동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개발과 소외계층 돕기도 마찬가지. 기초생활수급자를 돕기 위해 명절마다 통영시와 인근 고성군에 성금을 기탁한다. 2012년 여름에는 부산 적십자사에 1억 1550만 원 상당의 의류를 기증하기도 했다.

Q. 정부의 국가 유공자 지원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계시던데?

“국가 유공자 노후주택을 무료로 보수해 주는 국가사업에 20년째 참여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와 유족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소 생각에 따른 것이다. 참여 첫 해인 1994년 전몰군경 유족의 30년 넘은 노후주택(동래구 온천동)을 전면 개보수, 산뜻한 새 집으로 만들었다. 다음 해는 애국지사 유족의 24년 묵은 가옥을 수리했다. 이런 방식으로, 해마다 낡은 주택들을 정성껏 개보수하고 있다.”

Q. 다방면의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특별한 이유 있나?

“얘기한 대로, '약간의 성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이다. 교육․장학사업? 그저 열악한 환경의 지역인재를 키워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 뿌리는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잃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어린 시절을 서럽게 보낸 만큼, 이제 가정환경 때문에 굶거나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힘닿는 한 돕고 싶다. 건설업계, 체육계를 위한 기여?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업가로서 당연히 맡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영화만을 위해 살아서야 되겠나.”

장 회장이 부산지역의 존경받는 사업가로 선 것은 나름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성실히 실천한 결과다. 기업인이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은 것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부산시민 서포터즈 대표회장을 맡는 등 사회참여 활동에 모범을 다한 결실이다.

Q.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방향을 제시한다면?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주위에선 나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고 칭찬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사회로부터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은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지역의 유지로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에 한 부분을 책임지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내가 제시한 ‘동원학당 건학이념’에도 드러나 있듯, 가난이, 혹은 그에 버금가는 어떠한 역경이라도 배움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인간을 넓게 만들고 깊게 사고하게 하며, 결국에는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게 한다. 이 귀하고도 중요한 일, 누가 맡을 것인가? 결국은 기업이 큰 몫을 맡아야 할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그의 주변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지난 해 가을 동원중고 교사 이전 때 축하하러 온 부산 상공인 중, 직접 후원 또는 문화재단 활동방식으로 사회환원에 앞장선 분들이 여럿이더라. KNN 강병중 회장 같은 분도 문화재단과 장학회를 통해 여러 대학과 중고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산학협력을 통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분은 경남 진주의 한 중학교 운영을 맡아 열정을 쏟았으나, 이농현상으로 입학생이 줄어들며 결국 문을 닫았다더라. 그 분이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 이전소식에 부지를 기증했으나, 역시 취학아동 감소로 학교가 문을 닫은 아쉬움도 갖고 있다.”

기업이 직접 대학이나 중고교를 맡아 운영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교육환경이 급변하는데다 학교사정이 나날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일선 지자체나 교육기관에서 기업인에게 학교 경영 또는 지원을 청하는 예도 많다. 기업인의 학교를 통한 사회환원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동원개발 근검 절약 경영… 꿈 성취할 힘 바탕

동원개발 장복만 회장. 그는 동원개발을 건실하게 경영하며 사회기여의 꿈을 성취하고 있다. 동원개발을 설립, 하루도 쉬지 않는 근검과 작은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절약으로 꿈을 성취할 힘을 얻고 있다. 동원개발은 부산의 대표적 향토건설사다. 주택건설 40년에 4만 3000세대의 주택을 공급했다. 지난해 시공능력 평가액 5040억 원으로, 전국 시공능력 53위를 달성(부산업체 1위)했다.

앞서 2011년에는 부산과 경남 김해, 울산 등 전국에 6000여 가구를 분양하는 공급력을 과시, 주택공급실적 전국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는 경기 하남 미사지구, 경남 통영 정량동, 부산 민락동 등에 아파트 공급을 앞두고 있다. 계열사로 동진건설산업, 동원주택, 동원종합건설, 통영수산, 통영산업, 경남제일저축은행, 뉴코아건설 등을 두고 있다.

Q. 1975년 동원개발을 설립한 계기는?

“군 제대 후 월급쟁이 생활을 통해 철강재 판매업무를 익힌 뒤 1970년 건축용 철강재 판매점 신흥철재상사를 설립했다. 자영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1970년, 우리나라 고도성장이 첫 발을 뗀 해다. 새마을 운동 시작-주택건설 10개년 계획으로 ‘철근만 구하면 돈을 벌던 호시절’, 신용을 발판 삼아 열심히 뛴 끝에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시대흐름을 살핀 끝에 주택사업으로 전환, 단독주택을 지어 팔기 시작했고, 1975년 개인사업체 ‘동원개발’을 설립했다.

‘동원(東園)’, 집단 단독주택지(33세대)를 개발하며 집을 배치하다 보니 동향 집이 많아 지은 이름이다. 시대추세에 따라, 부산지역 주택업체(업자)들과 50여 차례 동업을 경험했다. 나의 동업철학은 ‘일은 51% 하고 이익은 49% 받겠다’는 것, 그래야 분쟁이 없다. 1978년 ‘(주)동원개발’로 이름을 바꿨다. 부산지역 주택건설 면허 1호 기업이다.”

Q. 그동안 유수의 주택건설업체들이 숱하게 떴다 사라졌다. 그 속에서 건실한 성장을 낳은 경영방침은?

“내실경영-신용경영-책임경영 세 가지다. 우선, 과도한 외형 성장보다 안정적 성장을 추구한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 고객 직원 사회 국가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다한다, 이런 것이다. 트렌드보다 기본에 충실하며 경영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고객중심 사고 원칙, 전문성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영으로 일류기업을 추구한다. 동원개발 사훈 역시 경영방침과 회사비전을 뚜렷하게 선언하고 있다. ‘진정 너 자신을 사랑한다면 바르게 사고하고 신용을 축적하라. 그리고 열심히 뛰어 최고가 되라’고.”

동원개발인들 왜 고난의 시기가 없었으랴. 1, 2차 오일쇼크, IMF 환란, 세계금융위기, 모두 기업경영의 큰 위기였다. 오일쇼크 때만 해도, 주택 건설계약을 한 상태에서 자재 값과 인건비가 폭등했다. "포기하자“는 동업자도 있었다. 그는 ’도망가면 어디로 가나? 차라리 계약대로 집 다 짓고 우리 손해 호소하자. 건축주가 이해 못하면 빚을 안아야지…‘, 이렇게 버텼다. 그런 신의를 쌓아가니 "저 사람, 틀림없다"는 평판이 쌓여갔다. IMF 때도 그랬다. 아파트 사업, 선분양-후공급 방식 아닌가? 분양 후 물가가 오르면 주택사업자는 망하기 십상이다. 그런 위기를 버틴 저력, 금융에 기대지 않는 보수적 경영에, 어려울 때 쌓아온 신용 덕분이다.

 

성장비결? 기본에 충실 소비자 만족으로 수도권 진출

동원개발은 부산에서 출발, 수도권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며 주택 전문업체로 좋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울산, 경남을 비롯, 전국에 주택을 공급하며 미분양이 거의 없는 건설사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들에게 기본에 충실하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상품만 공급하는 데다, 이익을 적게 남기더라도 미분양은 없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동원개발은 2006년 부산의 부동산 침체기 이후 수도권에서 분양을 추진해 왔다. 경기도 성남 분당지구, 남양주 호평지구, 용인 죽전지구, 흥덕지구 등에서 대형건설사와 경쟁, 면적당 가장 높은 분양가와 입주 뒤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수도권에 진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도권 상륙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장 회장은 “지방업체라는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신평면 개발, 단지조경의 특화, 조망권 확보,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만족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지었다”고 설명한다.

동원개발은 아파트를 지을 때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체 자금으로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는다. 장 회장은 “남의 돈(은행 대출금)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자체 자금으로 내실을 다진 덕분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Q. 주택사업에 대한 철학이나 신념이 있다면?

“사소한 부분이라도 안전을 소중히 여기며, 크고 많이 지어서 얻은 명성보다 튼튼하게 잘 지어서 사랑받아야 한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자 가족이 생활하는 터전이다. 온 가족에겐 마음의 안식처인 것이다. 당연히, 주택사업은 착실하고 성실하게 운영하여야 한다.

되돌아보면, 주택업은 초기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자금 차입은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리스크를 키우는 ‘독’이 되기도 한다. 회사 규모를 키우려면 금방 키울 수 있지만, 이런 자기 과신과 무리한 투자가 가장 위험하다. 시장을 분석하고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자제력이 중요하다. 보수적 사업판단과 체질적 내실경영,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 없이는 장기생존이 불가능한 것이 주택업이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④]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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