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고등학생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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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고등학생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 부산시 남구 남유진
  • 승인 2018.12.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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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시민발언대] 부산시 남구 남유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등수에 집착했다. ‘몇 등이 좋은 거야?’부터 시작해서 ‘나는 지금 반에서 또는 전교에서 몇 등이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보다 높은 등수를 차지해야 한다. 높은 등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까? 꽤 많은 것을 주는 것 같다. 선생님의 칭찬, 또래의 부러움과 선망, 부모님의 자랑, 소위 높은 대학 또는 대기업 취업 등 많은 것을 준다. 하지만 반대로는 그 등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지키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부담감을 준다. 이것이 쌓이다 보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큰 병이 생긴다.

고등학생들이 광화문에서 대학입시에 반대한다는 ‘대학 반대 선언’ 퍼포먼스를 기사로 봤다. 20년간 한국에 살아 온 나는 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의 생활을 버리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대학중심사회에서 당당하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거리에서 선언하러 나온 친구들을 보니 부러웠다.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대학을 가기 때문에 나도 왔다. 나에게 필요한 그 무언가를 더 배워보려고 대학에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그 친구들이 멋있어 보인다.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가도 버거운 시대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택한다는 건 용기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년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아마 그 답은 수능이지 않을까. 고등학교 3년 내내 어떤 대학을 진학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반이었고, 수능을 위한 교재를 공부하는 시간이 반이었다. 그 만큼 대학 진학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다.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대학을 진학해서 자신의 꿈을 찾거나, 성적에 맞춰 들어왔지만 적성에 잘 맞아서 꿈을 찾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졸업 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한 미래 계획이 없다. 그저 대학 나왔다는 졸업장과 재학 시절에 쌓았던 스펙들로 만들어진 등수로 우리의 미래가 정해지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에 ‘내 삶의 등수는 몇 등일까’라고 자문했을 때 과연 내 등수는 몇 등일까? 각박한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대학 왔으니 고등학교의 강압식 교육 울타리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더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학 사회도 공부방식이 다를 뿐 지독한 경쟁 사회의 준비 기간인 것은 고등학교 때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돼도 경쟁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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