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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②] 동원 장 회장의 교육사업, 중고교 넘어 동원과기대와 동원문화재단으로 확대일로

기사승인 2018.12.12  20: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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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장학 사업가 장복만에게 육영(育英)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에서 계속.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사업, 중고교 넘어 동원과기대 키우기까지

장복만 회장은 경남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2012년 12월 경남교육상을 수상했다. 사재 485억 원을 출연해 동원중고를 신축 이전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경남지역 불우학생 및 성적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대학진학 학생에게 입학금 및 등록금을 후원했으며, 경남대 등 3곳에 발전기금을 기부, 지역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다.

경남교육계는 이제 그에게 ‘경남교육상’을 보답하지만, 실상, 그의 교육사업 영역은 중고교를 넘어 일찍부터 대학까지 뻗어 있다. 올 2학기부터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교명을 바꾼 경남 양산 양산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동원과기대는 지난 1990년 개교한 뒤 꾸준하게 성장, 현재 6개 학부 27개 학과에 국제교류센터 등 7개 부속기관과 평생교육원 등 7개 부설기관을 갖추고 있다. 현장실무형 전문인력 양성과 교수학습개발센터 운영에 중점 투자, 올해 교육부가 주관한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대학에도 올랐다.

Q. 양산대,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특별한 이유라도?

“양산대는 그동안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양산’이란 교명으로는 지역의 한계를 넘을 수 없겠더라. 새 교명 '동원'은 학교재단(동원교육재단)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교명 변경과 함께, 간호과 4년제 학사학위 과정도 신설했다. 동원과기대는 이번 교명변경으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견 기술인과 전문인력 양성’(건학이념)에 더욱 매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대해 달라.”

Q. 그 학교 경영에는 어떻게 참여했나?

“동원 중고교를 인수한 과정과 같다. 지난 1994년 동원교육재단을 설립, 양산대학 재단을 인수했다. 당시 양산대학은 개교 3년 만에 더 이상 운영이 어려울 만큼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했고, 많은 부채 때문에 인수 의사를 밝히는 곳도 없었다. 나는 당시 경남 양산에서 동원가족사 ‘경남제일저축은행’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다. 난 주위의 우려를 이겨내고 양산대학의 미래에 투자할 것을 결심했다.

내가 기업을 경영하며 깨달은 사실 중 하나가 인재의 중요성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부존자원은 부족한 우리나라와 국내 기업에게, 사람은 투자하고 개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내가 양산대학을 인수하며 교육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업이익을 사회에 가장 가치 있게 환원하는 방법은 바로 사람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 회장이 양산대를 인수할 즈음 주택경기는 장기침체 조짐을 보이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장 회장의 결단은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국가인재로 양성하겠다는 평소의 신념, 그 신념에 평생 땀 흘려 모은 사재 수백억 원을 기꺼이 출연한 것이다.

장 회장의 재단 인수 후 대학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동원교육재단 출범 후 1년 만에 전국 전문대학 평가 4위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교육역량강화 우수대학, 성장동력 특성화대학에 뽑혔다. 2010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발표 경남지역 전문대학 종합평가 최우수 대학에 이름을 올렸다. 또 2010년 경향신문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가 전국 135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전문대학 지속가능지수 교육부문, 편의소통 부문에서 모두 10위에 오르는 등 미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동원과학기술대학(옛 양산대)은 장 회장(재단 이사장)의 탁월한 경영 시각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효과적 지원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장복만 회장의 동원과학기술대학 재단 이사장 취임식(사진: 차용범 제공).

발빠른 대학 성장, 탁월한 경영과 효과적 지원 바탕

옛 양산대가 결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빠른 성장을 이룬 비결?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장 회장(재단 이사장)의 탁월한 경영 시각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효과적 지원정책이다. 지속적으로 지원과 투자를 확대해 오면서 ‘선 투자 후 모집’이라는 원칙을 꿋꿋하게 지켰다.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지하는 경영으로는 대학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먼저 교육환경부터 잘 구축해야 우수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소신 때문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첨단 실습실을 갖추고 교수를 지속적으로 충원한 결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유능한 현장형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취업률 1위, 전국 취업률 5위의 기록이다.

장 회장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인재는 없어야 한다’는 고집으로 장학금 혜택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현재 부산경남 지역 장학금 지급률 1위, 전국 대학 19위의 우수한 장학제도를 갖추고 있다. 매년 일본 30명, 베트남 15명, 캄보디아 5명의 유학생을 선발해 학비 전액 장학금 유학을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국제 학생교류사업과 학술문화 교류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Q. 동원과기대, 어떤 목표 아래,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특성화다. 재능 있는 젊은 인재들이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을 만큼 학과운영을 특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전문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을 실천하는 길, ‘Vision 2020'을 달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우리 대학의 지난 20년 역사는 ‘지역 산업계에 인재를 공급하며 전문 기술직업인의 산실로서 위상을 다진 시기’다.

이제, 미래의 변화에 대비해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 준비, 곧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기업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얘기한다. 이는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대학의 책임이 크다. 대학이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수요에 맞춰 적절하게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리 동원과기대 역시 대표 브랜드 학과를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새 대학 이름답게…”

장 회장은 2009년 3월 제8대 총장에 장호익 당시 동원개발 전무이사를 선임,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새 의지를 과시했다. 그는 장 회장의 장남이다. 모기업의 임원으로 13년을 재직하며 경영 일선을 이끌었다.

 

장복만 동원개발 회장은 2013년 2학기부터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교명을 바꾼 경남 양산의 양산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8월 8일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현판을 변경했다. 점선 안이 장복만 회장(사진: 차용범 제공).

늘 배움이 목말랐던 청년의 꿈과 비전 성취

장 회장은 새 천년을 앞둔 1999년 10월 거액의 사재를 출연, 동원문화재단을 설립한다. 2가지 목적을 위해서다. 첫째,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유능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 그들의 재능을 길러 국가․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둘째, 각종 문화사업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국가의 문화사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재단은 2000년부터 장학금 지급사업을 펴고 있다. 부산 경남 일원 261개교 260명의 학생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대에 진학한 2명에게 4년간 학비를 전액 지급하며, 연고대와 지방 국립대 입학생에겐 1년치 등록금을 지원한다. 이런 식으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연간 60여 명, 10년간 700여 명에 이른다. 장학기금은 매년 2억 원씩 조성하고 있고, 향후 100억 원으로 확대할 계획. 지역사회의 각종 문화사업을 발굴․육성, 부산․경남 문화사업 진흥에도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Q. 교육 문화 장학 사업가로서, 그 값진 투자의 대상 청소년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음, '책을 많이 읽어라',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나에 관한 한, 성공적 경영자로서 나를 키운 8할은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년시절, 속상했던 것은 책을 읽고 싶어도 책 살 돈이 늘 부족했던 현실이었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오를수록 읽고 싶은 책들은 점점 늘어도 책을 살 돈이 없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돈이 생기면 죽어라 책만 사서 읽었다.

통영상고 시절, 자취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양식을 가지러 가곤 했다. 그때 쌀을 가져오면, 나는 일주일에 하루치 정도의 쌀은 반드시 따로 떼어 놓았다. 그렇게 모은 쌀을 팔아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책을 사봤던 거다. 한참 먹을 나이에 끼니를 이을 양식마저 책 사는 데 쓸 만큼 나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다. 책 읽는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기업을 경영하는 짬짬이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책을 지식의 보고(寶庫)로 본다.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동서고금의 지혜와 깨달음, 각종 사상들을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의 타인에게 가장 명료한 언어로 제시해주는 보물이다. 가장 좋은 교육은 직접적 체험이지만, 책을 통한 간접경험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굳게 믿는다. 좋은 책은 좋은 인간을 길러낸다고. 그런 뜻에서 그의 책읽기는 죽을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의 여생 중 독서하는 시간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일 것이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장복만 편]으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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