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또순이 유학생 사랑 씨, "베트남 마이카 시대 그리며 자동차 공학 전공해요"
상태바
베트남 또순이 유학생 사랑 씨, "베트남 마이카 시대 그리며 자동차 공학 전공해요"
  • 취재기자 최호중
  • 승인 2018.12.12 0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 투병 소식에 스스로 학비 벌려 알바와 공부 병행..."기필코 석사까지 공부할 것" / 최호중 기자

시원한 물밀면과 매콤한 비빔밀면을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가득 찬 부산의 어느 한 밀면집.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라고 말하며 160cm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손님들을 안내한다. 그녀는 들어오는 손님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능수능란하게 손님을 맞아들인다. 얼핏 보아서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억양이 한국 사람과 조금 다르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어느덧 3년 차가 된 사랑(26) 씨다.

베트남 북중부 해안에 위치한 응에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랑 씨는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2016년 2월 응에안에 위치한 빈 대학교에서 환경자원관리과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 그 자체를 즐긴 그녀는 평소 동경하던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대장금>, <꽃보다 남자> 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사람들의 큰 키와 예쁜 외모, 베트남과는 다르게 오토바이가 아닌 자동차가 많은 한국 거리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녀는 유학을 결심하고 하노이에 가 3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정보를 찾던 중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부산과학기술대학교가 눈에 띄었고, 2016년 5월 8일 부산과학기술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녀는 “아직도 한국에 입국한 날을 기억이 생생해요. 모든 것이 낯설고 정말 떨렸어요”라고 말했다.

사랑 씨가 베트남 빈 대학교를 다닐 때의 모습(사진: 사랑 씨 제공).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고 한국이 좋아서 온 사랑 씨는 2016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어학당에 다니며 한국어 공부에만 몰두했다. 이는 한국어를 잘하는 상태에서 수업을 듣고 교수의 강의를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랑 씨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학을 결심했을 때부터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 전공을 공부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사랑’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도 이때쯤부터다. 그녀는 베트남어 이름보다는 한글로 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한국 생활에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 그녀의 베트남 이름인 ‘레티트엉’의 의미를 한국어로 번역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의미도 좋고 한국 사람들이 부르기도 쉬워 아주 만족해요”라고 말했다.

1년 6개월가량 한국어 공부에만 몰두한 사랑 씨는 올해 3월부터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자동차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수업을 듣고 있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발달하게 되면 오토바이가 아닌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져 자동차 기술자들이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베트남도 서서히 발전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위험한 오토바이보다는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져 자동차 기술자들이 꼭 필요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한국 생활은 낯선 것들의 연속이었다. 베트남에서 겪지 못했던 일들을 한국에서 처음 경험했다. 부산과학기술대학교에 입학 후 기숙사에서 처음으로 단체생활을 해보고 한국에 와서 알바를 처음 시작했다. 그녀는 “베트남에서는 어머님이 공부만 하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절대 못 하게 했어요. 몰래 하다가 걸려서 호되게 혼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랑 씨가 집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본격적으로 알바를 하며 학업을 병행한 것은 2017년 2월경 어머니의 투병소식을 알고 난 후부터다. 친오빠와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신장결석 수술 사실과 통풍으로 팔조차 펴기 힘들어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투병소식을 듣고는 정말 며칠을 온 종일 울었어요. 제가 어머니에게 잘해드린 게 없어서 더 슬펐어요”라고 말했다. 그때의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이제 일하지 말고 쉬세요. 저는 이제 다 컸으니 제가 벌어서 학교도 다니고 효도할게요’라고 말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랑 씨는 금방 알바를 구해 일을 시작했다. 같은 해 3월부터 오리고기 집에서 일하다 올해 5월부터 그녀의 남자친구 베트남 유학생 판 휘융(27) 씨의 소개로 지금까지 밀면집에서 일하고 있다. 사랑 씨와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함께 일한 동료 이재무(21) 씨는 “사랑이 누나는 정말 일을 잘하고 성실해요.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계산을 하는 사랑 씨의 모습. 능수능란하게 포스기를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 취재기자 최호중).

사랑 씨는 알바를 시작하고 난 뒤 새로운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바로 한국의 회식문화가 그것. 그녀는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일과 후 치맥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회식문화는 몰랐을 거예요. 술을 거의 먹지 않지만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은 정말 신기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 씨는 흔히 있는 진상손님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주문 확인을 위해 다시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짜증을 내는 손님, 계산할 때 트림을 대놓고 하는 손님 등 여러 진상손님들을 겪어봤다. 그녀는 “그런 손님들을 겪으면서 멘탈이 더 강해진 거 같아요”라며 능숙한 아르바이트생의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가장 큰 위기이자 한국 생활 중 가장 큰 일을 올해 9월 겪었다. 바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500만 원을 사기당한 것. 어느 한 베트남 브로커가 그녀에게 접근해서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돈을 보내면 수수료가 많이 들지 않냐며 자신이 수수료를 조금만 받고 대신 보내주겠다고 한 것. 브로커의 꼬드김에 넘어간 사랑 씨는 돈을 브로커에게 주었지만 가족에게는 돈이 가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외국인 사기꾼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주기 위해 바보같이 속아 넘어갔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울분이 터지지만 비싼 인생 수업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털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사랑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학업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그녀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일하는 도중 손님이 없거나 여유로울 때 전공용어들이 적힌 단어장을 보며 공부한다. 또한 내년에 있을 토픽시험(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어능력시험)을 위해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토픽 4급 이상을 취득하면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서 공부에 소홀하면 안 되죠. 저는 한국에 공부를 하러 온 사람이에요”라고 단호히 말했다.

알바 중에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일하는 틈틈이 공부하는 사랑 씨(사진: 취재기자 최호중).
토픽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사랑 씨의 한국어 책. 빼곡히 베트남어로 번역해 놓은 교과서는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사진: 취재기자 최호중).

한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랑 씨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사랑 씨의 한국에서의 최종 목표는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석사까지 공부하고 싶었다. 그녀는 “부산대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저곳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교에 가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싶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지금 매순간이 저에겐 도전이에요. 앞으로도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