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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 김순옥 할머니 별세...생존자는 이제 26명

기사승인 2018.12.05  23: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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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에 중국에 끌려가 수난..."일본 정부 사죄 받지 못하고 타계해 안타깝다" 추모 물결 / 신예진 기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순옥(97) 씨가 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씨의 별세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중 생존자 수는 총 26명으로 줄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은 5일 김 씨가 이날 오전 9시 5분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난 2일부터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나눔의 집에서 지내던 김순옥 씨가 5일 오전 9시 5분 노환으로 타계했다(사진: 나눔의 집 제공).

김 씨는 1992년 평양의 한 가난한 가정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계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식모, 유모 등의 일을 줄곧 했다고 한다. 김 씨는 20세가 되던 해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평양에서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김 씨는 중국 ‘석문자’ 위안소로 끌려가 피해를 당했다.

김 씨는 해방 이후 중국인과 혼인해 중국에 정착했다. 그러나 2005년 여성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김 씨는 나눔의 집에 입소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는 ‘수요시위’ 및 증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외에, 김 씨는 2012년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벌인 일본 극우 인사 스즈키 노부유키 소송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일본정부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민사조정을 신청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비하한 일본 록밴드 ‘벚꽃 난무류’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4년에는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박유하 교수를 고소하는 등 김 씨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김 씨는 생전 ‘친절한 순옥 씨’였다고 한다. 나눔의 집은 “김순옥 할머니는 항상 밝은 미소로 방문객과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따뜻한 분이셨다”며 “일본의 사죄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셨는데 끝내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씨의 타계에 국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64차 정기 수요시위에서는 김 씨의 영정이 놓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날씨가 상당히 추운데 그곳은 따뜻한 봄이길 바란다”며 “더 늦기 전에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에 서린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할머니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한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한편 김 씨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1호에 마련됐다. 일반인 조문도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취재기자 신예진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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