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과 선동 사이...무고 피해에 대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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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선동 사이...무고 피해에 대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 부산시 대연동 이준학
  • 승인 2018.11.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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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시민발언대] 부산시 대연동 이준학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우리나라에 또 있었던가.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에게 남겨진 상처와 고통을 두고 여느 상해 및 사고로 인한 그것들과 감히 비교하자면, 전자가 훨씬 지속적이고 악질적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에 성범죄 피의자를 향한 현대인들의 적개심과 분노는 결코 부당하지 않으며, 가해자는 응당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한때 광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투 운동’은 상당히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미투 1호’, 서지현 검사의 검찰청 내부고발을 향한 전 국민의 지지는 우리 사회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중이다. 지금은 사건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서 검사의 온전한 복직뿐만 아니라 권력구조의 개선까지도 보장돼야 한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연이어 터졌던 미투 폭로 역시 예술계의 폐단을 완전히 걷어내는데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됐다. 미투 운동은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수많은 권력형 성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함과 동시에 예비 성범죄자들까지 견제하는데도 큰 의의가 있다.

미투 운동이 최근에는 '변질됐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미투가 다시 힘을 찾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그러나 지금 ‘미투’에 대한 인식이 심상찮다. 미투 운동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이른바 ‘허위 미투’와 무고피해자가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방지하려는 움직임조차 정부로부터 공개적으로 묵살된 것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미투의 본질이 흐려지는 중이며, 실제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조심스러워 졌다. 불필요한 성별갈등은 덤이다. 성범죄 피해자를 위로하고 도와 철저한 응징을 약속하는 사회운동을 참여하는 것에 망설이는 사람들이 왜 생겼는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할 때다. 그리고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 개선할 점이 명확하게 드러났음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미투 운동이 계속된다면, 미투의 끝은 선동에 그칠 것이 뻔하다.

최근 정부기관인 여성가족부와 그 자문단체에 해당하는 인권위원회는 무고 ‘피의자’를 위한 법률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과 대검찰청은 성범죄 수사에서 “사건의 전말이 명확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고 여부에 대해 수사하는 것을 보류하라”는 지침까지도 적용했다. 성범죄의 처벌이 강해짐과 동시에 무고 사례의 발생확률이 늘어난 만큼, 밝혀진 무고 사례에 대해서 만이라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미투 운동은 옳고 정당하다.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며, 가해자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엄연한 ‘허위 미투’와 무고사례도 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무고가해자가 악의를 지니고 있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무고 피해자들은 미투에 연루되는 순간 피해를 입는다. 피해자들은 처음부터 보호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된다. 결국 ‘허위 미투’의 시작은 진짜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히 따져봐야 하지만, 이를 보장받지 못한다. 허위로 밝혀진 이후에도 무고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미투 운동의 안전장치를 요구했지만, 마련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미투 운동은 ‘변질됐다’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투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미투가 다시 힘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일부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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