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손흥민을 찾아, 유소년 축구에 청춘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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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손흥민을 찾아, 유소년 축구에 청춘을 바쳤다”
  • 취재기자 류효훈
  • 승인 2015.05.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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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 지도로 세계적 축구 스타 배출을 꿈꾸는 여원혁 감독 이야기
▲ 해초FC 감독 여원혁 씨가 어린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초등학교는 점심시간이 되면, 늘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을 휘젓는 조무래기들로 한바탕 시끌시끌하다. 한 청년이 항상 이 시간대에 해운대 지역의 여러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축구하는 초등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다 축구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다가가 축구를 정식으로 배울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다. 축구 배우기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그는 방과 후에 해운대초등학교로 오라고 권한다. 이렇게 모인 아이들에게 그는 축구교실을 열고 축구를 가르친다.

점심시간마다 초등학교를 기웃거리는 수상한 젊은이는 해운대초등학교 축구부 ‘해초 FC’ 감독 여원혁(27) 씨다. 여 씨는 처음부터 유소년 지도자를 꿈꿔왔던 것은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축구를 해오던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자질 부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몸도 약하고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선수로써 비전이 밝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후 그는 대신 유소년 지도자를 통해 재능 있는 선수들을 직접 발굴해서 키우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졌다. 그는 초등학생 때가 축구 선수에게 기술 습득력이 가장 빠른 시기인 ‘골든 에이지’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배우는 축구 기본기와 기술들이 선수생활을 하는 평생 동안 함께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계적인 구단들은 유소년 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 씨는 “나는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축구)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한 축구 선수가 됐다. 내가 직접 지도하는 아이들은 단계적인 교육을 통해 나처럼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유소년 축구지도자를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는 국내 최초로 축구학과가 개설된 호남대학교에 입학했다. 호남대학교 축구학과는 축구선수, 축구지도자, 심판 등 축구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곳에서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3학년 때 취업계를 내고 2011년 경남의 남해초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했다. 그는 “축구에 대한 이론을 노트와 머릿속에 정립했고, 이제는 이론을 현장에 접목시킬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답을 찾기 위해선 현장으로 가야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해초 축구부 코치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문득 코치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그는 “코치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나의 비전은 재능있는 아이들을 스카웃해서 좋은 교육을 통해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코치로만 계속 있으면 이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2014년 1월 남해초 코치를 그만뒀다. 누구의 구속도 없이 온전히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자신만의 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팀’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그는 우연히 선수 수급이 안돼서 축구부가 없어진 해운대초등학교를 발견했다. 해운대초등학교는 인조잔디와 실내체육관 등을 갖고 있어서 운동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선수 수급은 내가 직접 뛰어서 스카웃하면 해결될 것 같아 이 팀을 한 번 맡아 보자는 도전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호남대학교에 복학준비를 잠시 했지만,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아무런 연고도 인맥도 없는 부산으로 달려갔다. 오로지 자신이 키울 제2의 손홍민만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부산에 도착한 지 불과 2주 만에 패닉상태에 빠졌다. 선수 스카웃이 뜻대로 잘 안되었다. 없어진 축구부를 선뜻 재건해서 교육을 맡길 의사가 학교에 있지 않았다.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후회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변 지인들은 학교가 운영하는 학원축구보다는 프로구단들이 운영하는 유소년 클럽축구가 더 좋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그는 “학원축구는 클럽축구와는 달리 인성적, 교육적 등의 지도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학원축구를 고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클럽축구팀 축구 코치 일을 잠시 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해운대초등학교가 방과 후 축구교실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알게 됐다. 망설임 없이 그는 축구클럽을 그만두고 해운대초등학교 축구교실 강사가 됐다. 그는 “면접을 보러갔는데 단번에 합격했다. 방과 후 축구교실이지만 해운대초등학교에 들어갔다는 자체로 기뻤다”고 말했다.

▲ 해초FC 감독 여원혁 씨가 선수들에게 훈련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그는 방과 후 축구교실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해운대 구청장배 축구대회에 참가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막 맡은 축구팀 선수들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고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대회까지 남은 기간은 단 2주. 그는 단기 목적용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 내용은 수비 전술 위주였다. 수비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경기 중 몇 번의 공격 찬스가 올 때, 골을 넣으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대회가 왔다. 놀랍게도 해운대초등학교 축구팀은 기적처럼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해운대초등학교는 체력과 기술의 한계로 강팀인 상대에게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교장선생님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 해운대구청장배 축구대회 준우승 후, 해초FC 선수들은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사진: 여원혁 씨 제공).

이 대회를 계기로, 여원혁 씨는 해운대초등학교에 축구부를 만들어달라고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그 결과 작년 12월부터 방과 후 축구교실이 해초FC로 도약했다. 해초FC의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가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의 체계적인 축구 교육을 지금 그가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초FC 훈련일지를 꼼꼼히 날마다 작성하고 매일매일 지도할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이 이뤄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매일 훈련 프로그램을 짠다.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노력과 정성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팀은 주말마다 연습경기를 갖는다. 이번 5월에 있을 학교스포츠클럽대회(축구, 풋살)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의 팀 목표는 지역 리그전 1위를 차지한 다음, 부산대표 선발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고, 결국 전국 학교 스포츠 클럽대회 우승을 거머쥐는 것이다.

▲ 해초FC 여원혁 감독이 해초FC 선수들의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최근 그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생겼다. 그의 밑에서 축구 코칭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원혁 감독 밑에서 코치 역할을 배우고 있는 대학생 이정호 (22,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씨는 여 감독 팬이다. 그는 “옆에서 지켜봤을 때 감독님은 대단하신 것 같다. 하나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고 세심하게 챙긴다. 좋은 감독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해초FC 여원혁 감독(가운데)이 남해초등학교 코치였을 당시의 모습이다(사진: 여원혁 씨 제공).

그는 이승우 선수같이 유능한 국내 유소년 선수들이 일찍부터 해외로 가는 이유가 국내 유소년 선수 지도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그의 꿈은 유소년 축구 선수 교육을 체계화시키는 것이다. 현재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선수지도가 매번 달라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 드리블을 중시하는 감독 밑에서 배우다, 중학생 때 패스를 중시하는 감독 밑에서 배우는 등 교육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의 코칭 스태프끼리 모여 감독철학을 공유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까지 이어지는 연계 교육을 통해, 한국에서도 충분히 손흥민 같은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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