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기 짝이 없는 공공조형물...설치는 '대강대강', 관리는 '대충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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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기 짝이 없는 공공조형물...설치는 '대강대강', 관리는 '대충대충'
  • 취재기자 백창훈
  • 승인 2018.11.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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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각 구청에 공공조형물 조례 정비 지시..."지차체의 시민 홍보과 교육 절실" 비등 / 백창훈 기자
해운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전시된 <블랙 팬서> 조형물. 센텀CGV에 있던 조형물을 이곳으로 이전했다(사진: 취재기자 백창훈).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 팬서>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가 부산 최초 촬영을 기념해 블랙 팬서 조형물 3점을 부산시에 기부했다. 조형물은 지난 2월 광안리 해수욕장, 남포동, 센텀 CGV에 각각 설치됐다. 하지만 현재 조형물은 센텀 CGV 것 1점밖에 남아있지 않다.

부산 중구 남포동에 설치된 블랙 팬서 조형물은 지난 3월에, 광안리 해수욕장에 설치된 블랙 팩서 조형물은 4월에, 모두 만취한 시민에 의해 파손됐다. 김효준(33, 부산시 금정구) 씨는 “부산 최초로 촬영된 마블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이 두 달도 되지 않아 시민들에 의해 파손됐다. 아직 시민의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시민들에 의해 파손된 블랙 팬서 조형물 2점은 모두 폐기처분된 상태이며, 효율적인 조형물 관리를 위해 센텀 CGV에 남아있던 블팩팬서 조형물은 해운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로 옮겨 전시 중이고, 남포동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서울에서 하나를 받아 전시 중이다. 부산 영상위원회 이승희 팀장은 “기존에 있던 장소들은 안 좋은 일들이 많기도 하고 좀 더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실내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산시에 설치된 다른 공공조형물은 관리가 잘 되고 있을까?

공공조형물이란 공공시설에 건립된 동상, 기념탑, 환경조형물(벽화, 분수대), 상징조형물(상징탑), 기념조형물(기념 회화, 조각, 공예) 등을 말한다. 공공조형물은 지역별로 상징적인 공공조형물을 건립해 도시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2014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 ‘지방자치단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에 따르면, 1980년대 전국의 공공조형물은 74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288점, 2010년 이후에는 1066점에 이른다. 현재 부산시에만 설치된 공공조형물은 총 765점이다. 그중 사유지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이 336점, 주유지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이 429점이다. 유형별로 분류하면 조형물 170점, 동상 24점, 문학비 46점, 기념비 75점, 추모비 26점, 헌장비 25점, 조각공원 내 공공조형물 209점, 공공미술 프로젝트 조형물 80점이다.

왼쪽은 2008년 7월에 설치된 부산 남구 오륙도 SK뷰 공공조형물. 오른쪽은 2017년 12월에 설치된 부산 금정구 ‘만남의 광장’의 <금정의 메아리>. 두 조형물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사진: 취재기자 백창훈).

공공조형물은 부산시청 조례 ‘부산광역시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 또는 구청이 자치적으로 규정한 조례를 기준으로 공공조형물을 설치한다. 하지만 공공조형물 조례는 꼭 있어야 한다는 상위 근거 법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례가 있는 구청은 부산진구청, 남구청, 해운대구청 뿐이다. 나머지 13개 구청은 부산시 조례를 준용하고 있어 우후죽순으로 공공조형물이 설치되고 있다. 금정구의 경우, 시설개선사업 일환으로 6억 1000만 원을 들여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첫 번째 휴게소인 ‘만남의 광장’에 7점의 공공미술작품을 작년 12월에 설치했다. 그중 너비 3m 높이 3.2m로 제작된 <금정의 메아리> 조형물은 2008년 7월 남구 오륙도 SK뷰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조형물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정구청 관계자는 “금정의 메아리를 제작한 작가의 견해를 들어보면 두 조형물은 제작재료나 제작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조형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우수외식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명륜 1번가> 조형물. 최초 조형물 설치 지역에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자 11개월 뒤 이곳으로 이전했다(사진: 취재기자 백창훈).

공공조형물이 선정되려면 시/구 조례 기준 설치계획, 건립의 필요성, 건립 위치 적정성, 주민의견 수렴 여부 등에 대해서 11명의 심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논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위치에 조형물이 설치된 탓에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동래구청은 부산지하철 1호선 동래역 2번 출구 앞에 길이 13.84m, 높이 3.99m의 <명륜 1번가>라고 적힌 공공조형물을 2016년 1월 총 66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설치했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우수외식사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조형물 바로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 마을버스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됐다. 이에 동래구청은 <명륜 1번가> 조형물이 설치된 지 11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12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50m 떨어진 자전거 보관대로 조형물을 이전했다. 배기태(33, 부산시 동래구) 씨는 “쓸데없는 돈을 썼다. 처음부터 잘 지었으면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영완(15, 부산시 동래구) 군은 “오토바이랑 자전거가 조형물 주위로 많이 주차돼 있어 조형물이 더 지저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부산시 부산진구 향토기업인 ‘럭키치약’이 초읍동 시민도서관삼거리 횡단보도 앞 벤치에 설치한 <럭키치약> 조형물. 현재 유지 및 보수는 부산진구청이 담당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백창훈).

예산을 들여 설치만 하고 전혀 관리되지 않아 곳곳에 얼룩이 묻은 공공조형물도 발견된다. 부산진구 초읍동 시민도서관삼거리 횡단보도 앞에는 일반 성인 남자 신장 크기의 <럭키치약> 조형물이 벤치에 설치돼 있다. 이 조형물은 2014년 1월 부산진구의 향토기업인 ‘럭키치약’이 60년대 치약 케이스를 조형물로 제작해 방문객에서 이색적인 포토존을 형성하자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해마다 시에서 공공조형물 관리비를 받아 관리 및 유지보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형물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연복(72.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보기에 안 좋다. 광고하려고 만든 거라면 관리를 하든지 아니라면 빨리 철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모(32,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차라리 사람 한 명 더 벤치에 앉는 게 낫겠다. 이쁘지도 않고 설치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 지나가던 시민들이 조형물 주위에 꽃, 태극기를 걸어놓고 목에는 손수건을 매어 줬다(사진: 취재기자 백창훈).

그렇다고 부산시 내 공공조형물이 불편을 초래하고 아무 의미 없는 조형물만 설치된 것은 아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2011년 12월 시민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서울 종로 주한 일본 대사관에 처음 설치한 것이 지금은 전국 각지에 30점이 설치됐다. 하지만 2016년 12월에 설치된 부산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은 도로교통법상 불법 조형물로 규정돼 있어 부산시의회와 부산 시민단체가 ‘부산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시민단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미진 운영위원장은 “일본과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도로교통법 명목으로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반대했다. 시장이 바뀐 이번 해에는 꼭 70여 개의 시민단체와 정당을 대표해 소녀상을 세우고 일제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공공조형물이 흉물이 되지 않으려면 조형물 선정방식을 강화해야 한다. 작년 부산시에 응모한 조형물 설치계획서는 모두 4건으로, 탈락없이 4건 모두 통과됐다. 이는 선정방식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응모만 하면 모두 선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경우는 다르다. 서울시는 시민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시민 6000명의 의견을 듣는 등 우후죽순으로 설치되는 공공조형물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공공조형물이 설치된 뒤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관리가 명확히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 주체를 명확하게 해야한다. 또한 시민들이 공공조형물 바라보는 의식을 강화할 수 있게 지자체의 교육과 홍보가 절실하다.

공공조형물이 설립 취지에 맞게 제 역할을 위해서는 부산시의 지속적인 조형물 관리와 모든 구청의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 규정도 시급하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모든 구청에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 규정을 위해 공문을 보낸 상태다. 11월 말까지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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