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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페스티벌 제대로 알기

기사승인 2018.11.07  11: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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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투고/시민발언대] 부산시 남구 송민아

이번 여름과 가을은 퀴어인에게 뜨거운 계절이었다. 서울에서 벌어진 서울 퀘어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제주, 부산, 광주에서도 퀴어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통념적으로 ‘이성애’만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퀴어 페스티벌은 양성애, 동성애, 무성애자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존재함을 알리는 이벤트로, 미국의 스톤월 항쟁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퀴어 페스티벌이 개최되면 그에 대한 반대세력의 항의 시위도 거세게 벌어진다. 반대세력은 항의 집회를 넘어 퀴어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모습만을 단편적으로 수집해 페스티벌 자체의 존폐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행위는 퀴어에 대한 무지, 무의식 속의 퀴어인에 대한 혐오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 속에서 퀴어인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혐오당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부산에서 열린 제2회 부산 퀴어페스티벌에 참여했으며 바로 옆에서 이루어진 퀴어축제 반대 페스티벌을 보며 과연 그들이 말하는 ‘비정상’은 누구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퀴어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안 서명운동을 하는 모임, 성소수자 지원센터에 대한 후원모금, 다른 지역의 퀘어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전국의 수많은 퀴어인 모임이었다. 서로 허락을 받은 후 사진을 촬영하고 풍선을 주고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남들이 말하는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로가 서로의 단체를 응원하고 차별철폐에 관해 이야기하고 지지했다.

퀴어페스티벌은 외설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닌 사회적인 억압에 대항하는 저항정신 코드로 이해한다는 주장이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하지만 바로 옆에서 벌어진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축제’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그들은 퀴어페스티벌 입구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해 “전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소리쳤으며 “너네의 모습에 집에서 부모님이 울고 계시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것도 모자라 외부스피커를 장착한 자동차로 퀴어페스티벌 주변을 뱅뱅돌며 “더러운 사랑들, 전부 지옥간다”고 혐오를 표출했다. 더욱 큰 문제는 아직 성에 관한 가치관이 자리잡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를 따라, 교회 어른들을 따라 반대 문구가 내걸린 피켓을 들고 길에 나와 혐오의 언어를 함부로 내뱉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배우며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데 남에 대한 차별과 혐오부터 배우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된 이유는 ‘퀴어축제 내에서 벌어지는 선정적 노출’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의 자유가 지나쳐 남이 보기에 불쾌할 만큼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퀴어페스티벌이 생겨난 배경이다. 퀴어페스티벌의 시작은 축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억압에 대항하는 시위였다. 1969년 6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에서 발생한 시위가 이 페스티벌의 효시였던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노출은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이라는 코드로 이해하는 게 옳다. 또 이미 외국의 시위 속에선 노출이 하나의 저항정신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마초이즘에 분노하며 “노출이 강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님”을 표현하기 위해 알몸으로 거리를 걷는 시위를 해도 노출에만 초점을 두어 해석할 것인가. 이미 북미와 유럽의 모피반대운동, 성차별반대 운동 등에서는 노출이 저항정신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우리나라만 “노출은 곧 외설”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초점을 노출에만 집중시킨다면 그 속에 담긴 본질적인 메시지는 훼손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노출을 보며 분노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저항과 본질을 봐야 한다.

퀘어페스티벌 내에서 행해지는 노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하나 의문이 드는 것은 “그 노출의 모습을 어디서 어떻게 보았느냐”다. 이미 퀴어인들은 다양한 차별들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웃팅(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밝혀지는 것)’ 문제에 대해 매우 신경을 쓴다. 따라서 퀴어축제 내에서 무단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금기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운영위원회로부터 촬영허가를 받은 후 촬영허가를 받았음을 알리는 스티커와 같은 표식을 지녀야 한다. 또한 사진을 찍히는 당사자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에 ‘퀴어축제 노출’을 검색했을 때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사진들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진들은 모두 ‘몰카’적 성격을 가진다. 상대가 인식할 수 없는 각도에서 남의 다리, 엉덩이, 가슴 등을 동의없이 찍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몰래 찍은 사진을 열심히 모아 블로그 등에 업로드한 후 온갖 비난을 내뱉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몰래 찍힌 사진을 보며, 동의없이 찍힌 사진을 보며 왈가왈부한다. 나는 정말 묻고 싶다.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은 사람과 그 사람을 몰래 촬영해 자신의 입맛대로 편집하여 비난하는 사람 중 잘못되고 비정상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퀴어페스티벌에 대해 “동성애 자체가 옳지않다”, “성경에서 금지하는 것이다”, “에이즈를 퍼뜨리는 주된 요인이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성애가 아닌 사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동성애자들이 더욱 당당하게 활동하여 결국 사회를 타락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무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에이즈의 주된 요인은 청결하지 않는 환경에서 성관계, 또는 에이즈 보균자와의 성관계이다. 심지어 여성-여성간의 성관계가 에이즈를 발병시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경을 예로 들어 주장하는 것은 어떠한가. 성경에서는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는 것 또한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징어와 조개를 먹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또한 성경이 씌여진 시대에는 동성애가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어린 소년을 성노리개로 가지고 있는 행위가 유행했던 시기다. 과연 그 시대의 동성애와 현대의 동성애 모습은 같은가. 위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퀴어페스티벌에 간다고 퀴어되나요? 취업박람회간다고 취업되는 것도 아닌데..”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우리 사회 속에서 퀴어에 대한 인식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블랙유머다. 퀴어축제에 반대한 대부분의 주장은 퀴어에 대한 무지와 사회적으로 ‘이성애’에만 학습되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남의 정체성에 대해 혐오하고 반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찬반이 나누어지는 것이 곧 퀴어인들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로 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부산시 남구 송민아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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