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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③] 인문학 열풍, 문명적 추세 딛고 상당 기간 지속 전망

기사승인 2018.11.06  00: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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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고전 전문가 한형조 교수에게 인문학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에서 계속

번거로움 싫어하는 인문학자 ‘천막’에 끌어넣기

이쯤에서 인터뷰를 갖기 전 한 교수와의 '관계 맺기' 과정을 되새긴다. 그가 제시하는 '인문학 속 행복의 길'을 '부산이야기' 신년호에 실을 요량으로, 지난 여름 어느 날 인터뷰 요청 편지를 보냈다. 그는 늦은 답장을 주며, "국제 세미나를 하고 왔고, 공부하는 재미가 만사(?)를 잊게 해 주었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편지와 기획을 읽고, '부산이야기'와 '차용범'이란 인물을 검색해 봤다. <부산사람에게 삶의 길을 묻다>(차용범 저) 서평을 보고, 기획의 의도와 방향을 대강 짐작했다. 인터넷에 건축가 승효상 편이 있어 읽어봤다. 정리 잘 했더라. 깔끔한 고수의 칼 솜씨(?)를 보는 듯 했다...."

이 부분까지 읽고 인터뷰의 성사를 낙관한 것은 성급한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피하는 이유를 열거했다. "아주 흥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나는 거기 끼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인문학은 실용이나 건축, 예술에 비하면, 한가한 소리 아닌가. 하고 싶은 얘기는 책에서 하고, 가끔 신문에 적기도 했고, 인터뷰를 하자면 오가는 번거로움도 번거롭고... 그렇게 이해해 주면, 마, 고맙겠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각주에 붙은 한자성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원전은 "중산간괘(重山艮卦)', '간기배(艮其背) 불획기신(不獲其身) 행기정(行其庭) 불견기인(不見其人) 무구(无咎)'...(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대략 이런 풀이였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생각이 적절한데서 멈추어 본래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그의 내심을 짐작했다. 그는 '공부하는 재미'를 얘기했으니 공자의 말대로 행복을 얻는 길을 즐거이 걷고 있다. 그는 '번거로움도 번거롭고'를 말하며 '허물이 없으리라'를 넌지시 들이미니, 그 역시 행복을 즐기는 길의 한 갈래겠다. 이런 사연을 딛고, 한 두어달 묵혀가며 대시한 끝에 성사에 이른 인터뷰이다. 그는 "낙타가 천막에 들어가는 수에 걸렸다"고 한탄했지만. 그런 만큼, 그에게 이 부분을 물어야 한다.

Q.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가치를 설파하는 당신,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난감한 질문이다. 나도 잘 모른다. 에둘러서 말해보면, 사실 ‘행복’이란 말은 수입어, 신조어다. 유교, 불교에는 없던 개념이다. 행복은 ‘요행(幸)’으로 얻은 ‘행운(福)’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용>에는 '요행수를 바라고, 무리한 일에 뛰어드는 것(小人行險而徼幸)'을 깊이 경계하고 있다. 대신 '주어진 자리를 지키면서 운명을 수용하기(君子居易而俟命)'를 주문한다. 그 안에, 어디쯤에 ‘행복’이라는 부수 효과가 들어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게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요컨대, 행복은 쫓아오게 해야지, 절대 쫓아가서는 안된다. 내 생각이다.

이 점에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원래의 취지에 가깝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스파에서 쉬는 것으로들 알고 있는데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 행복이 수줍게 숨어 있을 것이다. 행복 이전에 존재를 물어야한다. 성경도 같은 주문을 하고 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여튼, 요행수에 대박을 꿈꾸거나, 자기 밖의 가치에 매달리지 마라. 남의 눈에 비치거나, 걸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 건강이나 인격에 더 깊이 유의하고 잘 보살펴야 진정 노리는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런 얘기다."

그는 한국학의 세계화에도 작은 노력을 보태고 있다. 미국 보스턴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한국학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것도 그러하다. 잠시, 시티투어 버스르 타고 보스턴 시내를 둘러보는 장면(사진: 차용범 제공).

인문학 열풍, 문명적 추세 딛고 상당 기간 지속 전망

Q. 40여년 동양철학을 연구하며 모든 고전들도 상당할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떤 자료들을 얼마나 모았나?

“내 서가에는 책이 몇 권 없다. 두 달에 한 번씩 책을 솎아내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준다. 퇴계 두 권, 율곡 두 권, 이 정도면 평생을 해도 새롭고 아직도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책을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 ‘오늘 한 겹을 벗기고 내일 한 겹을 더 벗길 뿐’이라는 자세로 책을 대하면 충분하다.”

한 교수는 “책에 대한 골동적 취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차피 읽는(읽어야 하는) 책은 누구나 보는 오픈 소스일 것, 버리고 없으면 또 사면 된다는 생각이다.

Q. 동양고전에 바탕한 한 교수의 인문학 저작, 인터넷 검색망에 16권 올라 있다. 최근 인문학 열풍 속에 책도 많이 팔렸을 것 같다. 그런 저작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온전한 내 저작은 7권 정도, 나머지는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난 독자에게 책을 읽히려 출판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 내가 뒤적이려고(?) 출판을 한다. 출판사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자기만족이라고 할까? 나도 결혼할 때 집사람에게 ‘뻥’을 친 적이 있다. ‘책 1-2권 쓰고 나면 빌딩 생길테니 걱정 말라’고. 난, 책 2권 쓰곤 ‘이게 아님’을 실감했다. 동양고전, 독자가 한정적이다. TV강의를 거절해 온 것도 그렇다. 레벨을 ‘중3 수준에 맞춰달라’니 불감당이다. 동양철학은 심화과정 아닌가.”

그의 저작은 유교와 불교가 반반이다. 출판사 말로는 고정 매니아 층이 있다고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저작을 수십 번씩 읽는다. 공부하는 도정의 중간보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거 정말 내가 썼나?”면서 감격할 때도 있지만, 정리가 덜 되고, 변죽을 더듬는 자신을 더 자주 발견한다고 한다. “역시 임중도원(任重道遠), 길은 멀고 짐은 무겁다.”

지금 퇴계 이황의 평생 온축이 담긴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준비 중이다. 퇴계가 한사코 물러나며 성학에의 간절한 기대를 담아 갓 등극한 어린 선조에게 올린 주자학의 문법이자 설계도다. 10년전 200자 1500매 분량으로 정리하고도 아직 출판을 못했다. 개정판을 염두에 두고 쓴 최초의 책, 내년 초 출판할 계획이다.

Q. 인문학에의 관심과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인문학 열풍’,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나?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다. 우선 문명적 추세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경계와 생존의 위협을 극복한 단계다. 이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며 정신적 만족을 찾는 본질적 욕구가 있다. 그리고 고령화 시대다. 수렵농경시대 수명 40-50세의 생존을 걱정하다, 이제 50세부터 인생의 절반을 더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지식‧기술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 산업적 기술보다 인간과 삶의 관계를 이끌 문화가 중요하다. 기댈 곳은 인문학 아닐까?”

그는 ‘삶의 조언자’로서의 철학을 목말라 동양철학에 입문했다. 앞으로, ‘유교의 두 얼굴’에 집중하여 공부할 생각이다. 복고적∙ 억압적 측면과 자유를 향한 심신의 훈련 측면이다. 즐겨 찾는 여행지▫휴식처 역시 불교 사찰, 유학 서원이다(사진: 차용범 제공).

우등생의 철학과 선택... 유교의 두 얼굴 다루기 집중할 터

한 교수는 동해안 바닷가 경북 영덕군 강구 출신이다. 부산과의 인연? 그는 ‘운명적’인 데가 있다고 했다. “홀어머님의 결단으로 부산으로 유학, 그 희생으로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기소개 대로다.

중학 2학년 시절, 친구들이 ‘대처(大處)’로 떠나갔다. 어느 날, “나도 보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동상이몽, 나는 친구가 그리워서 떼를 쓴 건데, 어머니는 공부가 그리도 하고싶은 줄 아셨다.”

사흘을 잠 못 자고 고민한 어머니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첫째, 보낼 건가, 말 건가? 답은 ‘보내야 한다’였다. “시골에 그대로 있으면 ‘판장(어판장) 지킴이’로 살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둘째,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답은 ‘서쪽 아닌 남쪽으로’였다.

당시는 대처 유학 붐을 막으려, 온 가족 이사가 아닌 학생만의 전학을 금하던 시대였다. 어머니는 온 가솔을 이끌고 이사짐을 쌌다. 전학증을 손에 쥐고 나서, 이웃과 누나집에 맡겨둔 짐을 다시 찾아와 풀었다. 중3 한형조는 영도 부산남중으로 전학했다.

곧 고등학교 입학이 다가왔다. 당시 서울‧부산은 추첨제, 대구 등지는 시험제였다. 그는 대구로 진학하려 했지만, 학교는 체력장 확인서를 떼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많은 부산친구들이 외지로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억울(?)해 했지만... 결국 ‘뺑뺑이 1기’로 경남고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은 그의 ‘뜻대로’ 였다. 학교와 어머님은 ‘공부 잘하는 한형조’가 법대로 갈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인문대로 갈 것을 고집했다. 자기의지에 따른 선택, 공부하는 삶, 그는 만족한다.

그는 중‧고교 시절을 보낸 부산생활을 새삼 회고한다, “운명적인 데가 있다고 한 것은 부산이 내가 원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용한(?) 점장이 덕분에, 그리고 대구행을 가로막은 남중학교 덕분에 그는 경남고에서, 하숙집을 오가며,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원 없이, 아무런 디스트랙션 없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잘난 척이라 하겠지만, 그는 심심해서(?) 공부했다.

그때 입시에 지쳤으면 아직 공부를 붙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유학자들도 그랬다. 정치와 가정 관리에 바쁠 때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유배를 가서야, 비로소 학문에 집중할 수 있다. 부산은 그런 점에서 내게는 일종의 유배지였다... 그래서 그는 되새긴다, “돌이켜 보니, 나를 키운 것은 절반이 부산이다. 나머지 절반은 당연 어머님이고....”

 

Q.동양철학, 앞으로, 언제까지, 어떤 부분을 더 연구할 계획인가?

"동‧서양 철학을 같이 공부하고 있다. 지금 서양철학과 인문전통에 조금 더 힘쓰고 있는 단계다. 서양철학도 동양의 문제와 기법을 공유하고 있다. 생각보다 공유지반이 넓고 대화는 생산적이고 풍요롭다. 우리는 기술적 진보시대를 살며, 고대인은 소박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오해다. 고대인은 훨씬 지혜로웠다. '진리는 오래된 것이다. 다만 오류만이 새롭다'는 듀런트(W. Durant)의 경구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앞으로 집중할 연구분야로 ‘유교의 두 얼굴’을 말했다. 복고적∙ 억압적 측면과 자유를 향한 심신의 훈련 측면이다. 권위적 유교와 인문적 유교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 대립은 유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철학과 종교, 사회학과 정치학의 근본 대립이라고 덧붙였다. <성학십도>, <성학집요> 같은 심화된 매뉴얼 2-3권을 발간하는 것을 단기적 작업 주제로 잡고 있다. 유교심학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벌써 환갑 즈음에, 수염∙머리칼도 하얗고 게을러 내 공부를 심화시키지 못한 단계지만, 진짜 조금 알았다 싶을 때까지 공부를 다할 생각이다. 그 꿈을 못이뤄도 중도(中途) 단계에 이르긴 했지 않나?"

 

“주변 평가 관심 없다, 기억▫기념도 번거롭고...”

Q. 인문학을 통한 동양고전의 대중적 해설과 확산, 얻은 보람은 무엇이며, 남은 숙원은 무엇인가?

"보람이라니, 어색하다. 책은 내가 고전의 띠풀을 헤쳐나간 보고서라 할 만하다. 그 노트를 누가 읽었다고 '뿌듯하다’든가 이런 의식이 약하다. 내가 쓴 것은 이전의 누군가가 했고,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쓴 책을 읽고 좋았다거나, 삶을 다시 성찰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썩 괜찮은 기분이다.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Q. 책 쓰고 연구하고 강의하고,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에 체력 소모가 클 것 같다. 평소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나?

"집 뒤 개운산(서울 성북구 안암동) 산책을 즐긴다. 산에서 독서하는 재미도 그저 그만이다. 취미가 독서∙산책인가? 해동검도 경력도 있지만 지금은 그만 뒀다. 먹는 것도 '고급'이다. 가령, 된장찌개 같은... 깊은 맛? 양은 일정하지 않다. 몸은 음식을 안다. 몸에 전권을 주면 알아서 한다. 너무 많은 걱정∙의도로 생각이 번잡하기보다, 깨끗하게, 적절히 섭취하면 건강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책 쓰고 연구하고 강의하는 멀티 플레이어, 그의 건강관리법은? 자택 뒤 개운산(서울 성북구 안암동) 산책이다. 철학자 한형조, 그가 “독서∙산책 취미를 함께 즐기는 곳”이라며 직접 촬영한 개운산 산책길 설경(사진: 한형조 제공).

Q.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은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다. 얼마 전 아들에게 딴에는 선심을 썼다. '나 죽고 나서 제사 지낼 필요 없다'고. 아들녀석은 바로 대꾸하더라, '누가 지내 드린다 했나요?' 내가 밥알을 튀길 뻔했다. ‘네가 진정 내 뜻을 잘 알고 있구나.’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도 번거롭지 않나. 죽기 전에 가상 장례식이나 치르면 쿨하겠다 생각 중이다. 정리는 살아서 해야지, 보고 싶은 사람도 보고, 묵은 감정이 있으면 찾아와서 삿대질도 하고..."

한 교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을 기억했다. "언젠가 너는 세상을 잊을 것이다. 세상 또한 너를 잊을 것이다-"

그가 인터뷰 때 전해 준 책 한권을 살폈다. <인문학의 즐거움과 희망>(충남대 대전인문학포럼)이다. 그는 이 포럼에서 ‘유교 심학(心學), 혹은 오래된 삶의 기술’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발제의 마지막 단원 제목은 ‘(마무리) 나 자신을 위해 산다’-위기지학(爲己之學; learning for myself)'이다.

결국 그는 유교의 공부법에 따라 스스로 마음의 훈련을 거듭하며, 인문학의 이름으로 그 심학을 심화∙확산시켜 온 줏대 있는 ‘딸깍발이 선비’였다. 이 선비는 특유의 열정과 숙성한 경륜으로, 어디까지 '좀 아는 수준'의 공부를 성취하며, 언제쯤 나름의 행복을 느낄 것인가? 두루 참 궁금한 부분이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④]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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