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①] “행복을 꿈꾸는가, 인문학 통해 ‘삶의 기술’ 연마하라"
상태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①] “행복을 꿈꾸는가, 인문학 통해 ‘삶의 기술’ 연마하라"
  • 차용범
  • 승인 2018.10.29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양고전 전문가 한형조 교수에게 인문학의 길을 묻다 / 차용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전공 한형조(56, 韓亨祚) 교수. 동양고전의 현대적 해설을 통해 삶에의 통찰과 행복의 길을 전파하는 한국 인문학계의 쟁쟁한 고수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입심 좋은 얘기꾼‧인기 높은 글쟁이다.

한형조 교수가 필자와 인문학, 동양고전, 그리고 행복을 논하고 있다(사진: 차용범 제공).

<유교, 희로애락의 기술>, <붓다의 치명적 농담>, <허접한 꽃들의 축제>..., 그의 저술과 문장은 모던하고 경쾌하되 엽기와 과감을 넘나든다. 이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 진지함과 레토릭을 넘나드는 종횡무진은, 그가 모든 원전(原典)과 원전에의 다양한 해석을 형형한 눈빛으로 꿰뚫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찬사다.

동양고전의 현대화를 통해 삶의 문제를 천착해 온 집념은 어디에서 출발했나? 위대한 불교경전에도 인문학적으로 접근, 종교의 정수를 쉽고 깊이 있게 설명하는 그 저력의 뿌리는 무엇인가? 한국의 인문정신을 찾는 열정으로, 우직하고 성실한 대중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인문학의 심화‧확산에 헌신해 온 그의 남은 숙원은 또 무엇인가?

[약력] 1958년 경북 영덕 출생. 경남고, 서울대 철학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졸업(철학박사). 동양철학과 고전에 천착하며, 동아시아 전통 속에서 미래 인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옛 고전을 우리 시대 언어로 불러내는 작업에 열중, ‘인문학의 대중화’에 헌신한 공로로 제4회 민세(民世)상 수상(2013). 저서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강의 세트 시리즈' <붓다의 치명적 농담> <허접한 꽃들의 축제>(2011), <왜 동양철학인가>(2009), <왜 조선 유학인가>(2008), <조선 유학의 거장들>(2008),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1999), <주희에서 정약용으로>(1996) 등 다수. 에드워드 콘즈의 <불교>와 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의 <화엄의 사상>을 번역했다. 계간 ‘문화와 나’에서 ‘아시아의 고전들’을, ‘중앙선데이’에서 ‘교과서 밖 조선 유학’ 이야기를 연재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누구나 잡으려는 행복, 하지만 많은 이에게 행복은 그림의 떡이다.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이란 한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의 신간 제목처럼, 국민들은 (국가의)경제적 풍요가 (국민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인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와 그 적들>를 지은 대한민국 대표 융 심리학자 이나미 박사 역시 한국인의 행복을 걱정한다. 대한민국, 세상 어딜 가도 이만한 자연도 없고 이만큼 친절한 관공서도, 이만큼 정 많고 똑똑하고 잘 생긴 국민도 없다. 그 속에서 한국인은 욕망의 덫에 빠지고, 통하지 못하며, 분노에 지쳐 외로운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그 집단정신의 바탕은 무엇인가?

정녕 우리 사회는 '냄비사회'다. 성공의 사회학으로부터 재테크가 태어나고, ‘웰빙’과 ‘힐링’이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이제 ‘행복’이 등장했다. 그 행복 증후군은 ‘스스로 행복 찾아가기’, 곧 '빨리 달리기' 대신 '깊이 살기'의 추구다. 대학가에선 문(文)‧사(史)‧철(哲)이 찬밥 신세지만 살아 본 사람은 안다. '빨리 달리기'만으로 세상을 뚫는 통찰의 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은 이제 먼저 나를 뚫고, 사람을 뚫고, 세상을 뚫기 위해 인문의 힘을 기대한다. 융합▫통섭을 얘기하는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 사회적 흐름이다.

한형조 교수가 그의 서재에서 필자와 대담하고 있다(사진: 차용범 제공).

인문학, 인간적 삶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

Q. 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문화를 탐구하는 학문’, 그 인문의 열기가 뜨겁다. 인문학, 도대체 뭔가? 동양철학에 정통한 인문학자로서, 현대적 어법으로 설명해 달라.

“인문학은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을 배우고 연마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에서의 종교, 철학 모두 자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성장, 삶을 존중하고 겸손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인문학은 인간적 삶을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할까.”

철학에 바탕한 인문학자 한형조는 인문학의 효용 몇 가지를 든다. 첫째,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둘째, 삶을 견뎌내는 기술을 습득시키며, 셋째,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기술은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이며, 고전‧역사의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강조다.

Q. 인문학, 어떤 값어치가 있어 오늘, 그토록 열풍인가?

"최근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배우려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을 넘어, 정신적‧육체적 조화를 이루는 '웰빙(wellbeing)'에의 요구가 커졌다는 의미다. 누구나 그 ‘삶의 기술’을 원하지만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곳곳에서 인문의 열기는 뜨겁고 강좌는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는 고은 시인의 시 <그 꽃> 구절을 들어 인문학의 가치를 설명한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본/그 꽃”-우리 인생도 나이 40, 50에 들어서면 꺽어진다, 내려갈 때 보면 그동안 올라갈 때 봤던 것과는 또 다른 가치, 또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소홀히 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막 뛰기만 하던 삶에 또 다른 가치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놓친 삶의 진실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인문학의 가치다, 이런 얘기다.

그는 일반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얘기하며 우리의 물질적 풍요에 미치지 못하는 행복 수준을 지적한다. 실상, ‘성공한 국가’-대한민국의 세계 속 경제위상은 경이롭다. 한국은 2012년 ‘20·50클럽’에 가입했다. 세계 7번째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선진국 말곤 한국이 유일하다. ‘불행한 국민’-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26위. 교육, 일자리, 치안 항목의 높은 평가에, 환경(29위), 일과 삶의 균형(30위), 공동체 생활(33위) 항목에서 최하위권이다. 갤럽 조사 결과, 세계 148개국 중 97위다.

그의 인기 높은 인문학 저작은 유교와 불교가 반반, 때로 엽기와 과감을 각오한 종횡무진으로 위대한 경전까지 자유롭게 풀어낸다. 주간 ‘현대불교’ 칼럼 원고를 점검하는 장면(사진: 차용범 제공).

우리, 자기 마음‧상대방 마음부터 배워가야

Q. 오늘을 사는 우리, 인문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 자신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특히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람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물’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는 특히 '나' 자신부터 제대로 다뤄야 함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중심은 물질이 아닌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으면 곤란하다 싶어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 그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고를 인용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Q. 사실 행복은 온 인류의 변함없는 소망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반면 ‘희(喜·기쁨)’와 '락(樂·즐거움)'이 약하다.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분노’와 ‘슬픔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기쁨'은 지속적이고 은근한 기쁨, '즐거움'은 손발을 고양시키는 존재의 흥분을 말한다. 그게 곧 행복 아니겠나."

 

인문학 공부, ‘기쁨’ 얻는 과정... 독립적 삶 안겨

Q.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을까?

"공부하는 삶이 바로 그 통로이다. 공자가 말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를 기억할 것이다. ‘배우고 익힘’은 스스로를 엔터테인먼트한다는 말과도 같다. 곧 인문학 공부는 ‘기쁨’을 얻는 과정이며, 이로써 ‘분노’와 ‘슬픔’을 불식할 수 있는 처방이기도 하다. 배움으로써 얻어진 기쁨은 독립적이고 세련된 삶을 안겨준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이 눈물의 골짜기, 고해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비책은 오직 ‘공부하는 삶(intelellctual life)’에 있다고 역설했다.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배워라. 상처로부터 배우고 고전으로부터도 배워라. 그를 통해 우리는 고통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 그렇게 터득한 이치가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지혜롭게, 행복하게 한다. 결국 행복이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닌 것이다.“

최근 출간작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2014)에도 한형조 교수의 행복론이 들어 있다. 이 책, 행복을 화두로 놓고 17명의 인문학자·과학자·예술가를 만난 기록이다. ‘행복’이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행복의 형태와 질감, 색깔과 맛을 찾으려는 시도다. 철학자에게 상처와 힐링을 캐묻고 뇌과학자에게 행복의 근원을 따진다. 천문학자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시인과 선악을 논한다. 그의 행복론 제목 역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동양고전, 현대 물질문명 폐단 해결할 효과적 대안

Q. 현대사회에서 동양고전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현대사회는 왜 인문학의 가치를 강조하나? 산업화를 통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동안 소외되어온 ‘인간의 정신’을 돌아보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되찾는데 인문학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동양고전은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이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과 특유의 레토릭으로 강조한다. 동양의 고전 중엔 동양의 대표적 철학자, 문학가의 정신을 오롯이 담은 주옥 같은 작품,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세계, 인간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객관적 관조를 가능케 하는 명작들이 즐비하다고. 그런 면에서, 동양고전은 파고들어 씹고 또 씹을 때 그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인생의 고전(苦戰)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라고-.<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명강; 동양고전>(2013)-을 보라.

쟁쟁하고 쟁쟁한 학자 13명이 동양고전을 빌려 들려주는 삶과 앎 얘기가 뛰어나고 맑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풀어 얘기한다. 1577년 율곡이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그는 거대한 산맥 같은 그 동양철학을 익히려 많은 동양고전을 읽고 궁리한다. 하나의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까지 되씹는 것이다. 주자학 공부의 체계적 매뉴얼, <성학집요(聖學輯要)> 역시 평소 펼쳐두고 ‘되씹는’ 기본 텍스트다(사진: 차용범 제공).

Q. <격몽요결>, 어떤 책인가?

"이 책,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동몽수지(童蒙須知)>가 어린이 책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때의 '몽(夢)'자는 어린이를 의미하기보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지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야 한다. <격몽요결>의 대상은 오히려 어른을 향해 있다.

현자들의 우화는 대체로 '인간의 무지'를 두고 한 일침, 혹은 풍자인 경우가 많다. '장자'의 '조삼모사(朝三暮四)'나 불교의 '육도윤회(六道輪回)'가 그러하다. <격몽요결>의 취지도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이기보다 인간이 갖고 있는 무지를 깨는 비결을 보여주는 데 있다."

Q. <격몽요결>,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동서양의 고전은 무궁하고 다양하다. 그 중 유교가 내세운 대표적 고전은 <사서삼경(사서삼경)>임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여기 <격몽요결>은 삶의 기술에 대한 유교적 입문, 혹은 기초를 담고 있다. 율곡은 오랜 전통을 따라 '학문'을 지금의 분과(分科) 지식과는 달리, '삶의 기술'로 정의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노릇을 하자면 '공부(학문)'를 해야 한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 공부를 안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한형조 교수는 <격몽요결>의 서문을 들어, 유교식 학문의 정의를 내린다. 곧 학문은 사람이 살면서 익혀야 할 최초▫최후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인문학'이라고 부른다면서-.

이 책에서, 다산 정약용을 소개한 박석무 다산연구소장은 그의 이름만 알고 사상 공부는 뒷전인 세상을 한탄하며 “다산을 읽어보면 정말 안 미칠 수가 없다”고 일갈한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설명한 이광호 연세대 교수는 성학을 '인간의 향기를 꽃피우는 학문'이라 푼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매월당 김시습을 일러 “이런 사람이 우리 역사에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②]에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