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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③] 백건우의 음악, 윤정희의 내조, 그리고 고향 부산

기사승인 2018.10.22  19: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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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음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②]에서 계속 

난, 부산사람, 예술적 감수성 부산서 키웠다...

백건우는 ‘부산사람’이다. 1950년 5세 때 6▫25 전쟁 피난민으로 부산에 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살았다. 집은 동래구 온천동 금정산 기슭. 금정산과 온천천의 벚꽃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강렬한 산과 꽃의 색에 취해 금정산에서 많이 놀았다. 한창 감수성을 키울 무렵, 자연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가난했으나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지금도 “부산!” 하면 즉각 호감을 보이는 까닭이다.

지난 5월 24일 부산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백건우 씨(오른쪽). 그 옆은 리신차오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사진: 차용범 제공).

Q. 백건우에게 부산은 어떤 곳인가?

A. "부산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곳이다.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첫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부산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부산이 너무 좋다. 부산의 바다도 너무 좋다. 어린 나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심어준 곳 아닌가... 사실 내 인생, 떠돌이 생활이다. 뉴욕에, 파리에 오래 살았어도, 역시 어린 시절 나의 정서를 키운 부산이 마음의 고향이다.“

Q.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A. 해운대 바다다. 너무 아름답다. 부산에 오면 늘 해운대서 쉬고 잔다. 이번에도 해운대 한 호텔에 머문다. 근처를 산책하고 드라이브하고, 어릴 적 동경했던 그 넓은 바다를 보며 좋았던 시절을 기억을 회상하고.... 그리고 아, 달맞이길, 산책하며 해운대 해변을 내려다보는 그 경치, 그저 환상적이다.“

Q. 부산만의 매력,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많이 달라졌다. 난, 어렸을 때 부산을 굉장히 로맨틱한 도시▫낭만적 풍경으로 기억한다. 그 때 항구▫포구와 산, 그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기억이 진하다. 아버님은 어린 나를 음악회와 영화관에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유행하던 음악감상실에서 음악도 많이 듣고, 그런 예술 속에서 자라 아름다운 추억이 진한 모양이다. 지금 부산은 세계도시 아닌가. 영화▫영상에서, 전시▫컨벤션이며 관광에서, 해운대의 그 맨해튼 같은 현대적 풍광에서, 여러 예술적 풍모까지, 세계 속의 유명도시 아닌가. 그건 부산이 자랑하는 개방성▫도전성의 알찬 결실이라 생각한다.“

Q. 부산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부산팬들은 부산사람 기질 그대로 정말 열정적이다. 매번 공연에서 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깊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부산팬을 자주 만나고 싶다. 나도 딴 도시보다는 부산엘 자주 오는 셈이다. 의식적으로. 나의 연주에 계속 자주 오셔서 즐겨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백건우는 이번 부산협연 때도 금요일 공연을 앞두고, 수, 목, 금 사흘 동안 시향과의 리허설을 강행했다. 좋은 연주를 위해, 그처럼 열정적인 준비를 다하는 것이다.

백건우-윤정희, ‘매니저·예술 동반자’로 함께 산다

이쯤에서, 백건우에게 궁금한 바, 빠트릴 수 없는 삶의 얘기를 더 묻는다. 우선 그는 아무리 개런티가 많아도 상업적 공연, 광고 출연 등은 결코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윤정희씨도 “결혼생활 37년 동안 그에게 최소한 수백 건의 광고요청이 들어왔고, 나와 함께 출연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그런데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음악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는데 여기서 뭘 더 욕심을 내나’ 하는 입장이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Q. 부에 대해 특별한 철학이 있나?

A. "사실, 광고라고 하는 것과 음악인으로써 얻은 이름의 가치를 바꾸고 싶지 않다. 난 음악인으로 남고 싶지 그 가치를 팔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 부부는 화사스러운 삶은 필요하지 않다.“

안단테(Andante) 같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스타카토(Staccato)처럼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배우 윤정희는 일상에서도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산다. 왼쪽부터 리신차오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사진: 차용범 제공).

한 가지 더, 부인 윤정희와의 스토리다. 두 사람은 '심청'이 맺은 인연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제 때 한국영화 <효녀 심청>(감독 신상옥)의 주연배우 윤정희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세계 초연을 보러 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처음 만나 반했다. 두 사람은 2년 뒤 프랑스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시작했고, 2년 뒤인 1976년 결혼,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딸을 하나 얻었다. 현재까지 서로의 매니저이자 예술의 동반자로 살고 있다. 휴대폰 하나를 둘이 ‘공유’할 만큼, 두 사람은 비밀이 없는 사이다.

Q.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금슬이 좋은 부부로 유명하다. 예술가로서 개성이 강할 텐데 마찰 없나?

A. “윤정희, 정말 대단한 배우다. 어떻게 자기 직업에 저렇게 충실할 수 있을까? 난 윤정희가 1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 이창동의 5번째 장편 <시>(2010)를 찍을 때도, 옆에서 지켜보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에 빠질 수 있을까 놀라웠다.” 백건우의 표현은 실상 ‘배우 윤정희’에 대한 존경이다. 윤정희는 <시>에서 홀로 손자를 키우며 늦깎이로 시를 배우는 미자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이 영화가 프랑스 칸 영화제에 진출, 배우인생 최초로 칸 레드카핏을 밟고 10분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백건우는 물론 아내를 응원하기 위해 바쁜 연주일정을 쪼개 칸에 동행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배우 윤정희도 공감한다. “부부가 견해차가 없다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성격상 오래 참지 못하고 곧바로 풀어버립니다.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서로 보완적입니다. 먹는 거, 여행하는 걸 둘 다 좋아합니다. 남편 역시 워낙 영화를 좋아해 하루에 최소한 1편을 봅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 나중에 영화감독을 할 거라고 해서 그럼 ‘바이바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반면 저는 클래식 음악이 없으면 못 살죠.”

세월이 흘렀지만 부부는 마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소년과 소녀 같다. 늘 서로에게 무디지 않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배우 윤정희’가 칸에 가면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내의 핸드백을 들어주고, 남편이 연주할 땐 아내가 연주복을 들어준다. 둘 다 예술가라서, 그들의 작업이 미완성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가치관이 잘 맞아서 각자 색깔이 뚜렷하지만 문제없이 잘 지내는 것 같다는 거다. 부부는 색깔은 달라도 각자의 색깔이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한다. 안단테(Andante) 같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스타카토(Staccato)처럼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배우 윤정희는 서로 그렇게 일상에서도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산다.

이번 인터뷰 때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부산문화회관 응접실에 자리했다. 사진촬영을 할 땐 남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가다듬어주기도 했다. 백건우가 아내를 쳐다보며 붙이는 한 마디, “우리 부부는 원래부터 정해진 짝이 아닌가 싶다.”

남은 도전? 힘 닿는 한 음악에 매달릴 터

Q. 음악 외에 즐기는 일 없는지?

A. "난 사진과 여행을 좋아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든 내 눈을 통해서든,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게 좋다. 모르는 나를 모르는 세계에 도착시키는 것, 언어나 지리를 모르는 곳에서 헤매기도 하면서 새롭게 삶의 열정을 느끼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얼마나 좋은가. 난, 아무래도 ‘궁금증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Q.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A. "나에게 스트레스란 없다. 어떻게 보면 똑 같은 곡, 악기 앞에서 나날을 보낸다는 것, 참 따분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 작업이다."

Q. 다시 태어나도 피아노를 하고 싶은가?

A. “그럴 것 같다. 이건 확신에 찬 답변이다."

Q. 행복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A. "음악으로서 청중과 한 마음이 될 때....“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A. "난, 인생을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후 수입을 따져가며 노년 계획도 세우고 그러던데, 예술가는 좀 다를 듯하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본인도 모르니, 항상 여유롭고 자유롭게 창작세계에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 난, 힘 닿는 한 음악에 종사하고 싶다.“

Q.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A. "거짓 없이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백건우의 강점은 무엇보다 연주가로서의 주관과 그 세계가 뚜렷하다는 것, 항상 쉼 없이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 이외의 다른 활동은 전혀 해 본 적인 없는 전문연주가의 길을 계속 걷는다는 것, 연주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지켜나가려는 굳은 노력에서 가능한 사실임을 결코 넘겨버릴 수 없다. 지극한 완벽을 추구해왔기에 주로 연주회를 통해 활동을 해오다가, 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레코딩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백건우는 앞으로도 빛나는 찬사들을 들어가며,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솔리스트, 이 시대 최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백건우의 연주는 신비로운 여행길이다(프랑스, 르 마틴)", "백건우는 한마디로 경이롭다(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붙임]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을 부산시 공식 블로그(쿨부산)에 올렸더니, 서울 계신 ‘윤정희 팬’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요지는, 윤정희 선생도 ‘부산사람’인데, 알고 있는가? 윤정희, 2012년 전미영화평론가협회 선정 ‘세계의 여배우’ 2위 선정 사실 아는가? 등등. 그는 백건우와 윤정희 스토리를 압축해 담은 CD 한 장씩을 이내 보내왔다.

윤정희 선생께 물었다, “아니, ‘부산사람’이신가요?” “네, 우리 가계(家系) 모두 부산이에요. 저도 유년에서 여고 시절까지, 한참 부산에서 자랐죠.” 그랬다. 그의 선대(先代)는 모두 부산이었으며, 그는 외할머니의 손녀사랑에 끌려 광주-부산을 오가며 지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 유학생으로, 부산에서 신문기자를 거치기도 했고. 단, 이번 백건우 인터뷰 땐 ‘남편 백건우’에 포커스 맞췄으므로, 그는 자기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랬다. 이 ‘미묘한 뉘앙스와 감수성으로 가득한 세계적 여배우’ 역시 자랑스러운 ‘부산사람’이었다. 이 인물탐구 코너는 ‘부산사람 윤정희’를 다시 초대할 수 있을까?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④]로 이어집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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