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아파트 청풍장, 소화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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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최초의 아파트 청풍장, 소화장을 아시나요
  • 취재기자 예소빈
  • 승인 2015.04.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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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세워져... 너무 낡아 붕괴 위험, 보존 철거 싸고 줄다리기

1998년 가수 윤수일은 <아파트>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다시 또 찾아왔지만/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로 진행된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으로 조국 산하가 폐허가 됐다. 그런데 그 땅 위에서 <국제시장>의 ‘덕수’ 세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피 나는 고통과 노력으로 고작 반세기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스카이라인을 바꿨다. 그 주범은 도심의 업무용 빌딩과 주거 지역의 아파트였다.

기성세대의 유년시절에는 집에서 겨울에 샤워하기란 꿈도 꾸지 못했다. 목욕탕 말고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한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아파트는 유일하게 뜨거운 물이 겨울에도 나오는 집이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부자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인구가 팽창하자, 살 집과 집지을 땅이 부족하게 되었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를 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파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에 아파트 시대가 왔다. 1980년대부터 신도시가 곳곳에 들어섰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뺘곡히 채웠다. 199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사람 중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이제 우리 머릿속에는 ‘집=아파트’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 주택 형태별 거주 인구 증가 비율 표(사진 출처: 통계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37년에 지어진 서울 서대문구의 ‘충정아파트’다. 건축 당시 이 아파트는 당시 건축가이자 건축주였던 일본인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서 도요타 아파트라고도 불렸다. 광복 뒤에는 북한의 군사시설, 미군 숙소 및 호텔로도 사용되었으며, 이후 1975년에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일부에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의 열기로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남포동 BIFF 광장을 따라 국도 시네마 뒤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골목이 나온다. 고풍스런 단편 소설에나 나옴직한 여인숙, 여관 간판도 보인다. 바로 여기가 부산시의 아파트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941년, 그리고 1943년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아파트 청풍장(淸風莊)과 소화장(昭和莊)이 이 골목에 서있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아파트 건물은 언뜻 아파트로 보이지도 않고,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는 배관 가스, 가스통은 물론 빨래도 널려 있어 사람들이 아직도 사는 곳임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 국도 시네마 뒤편 골목의 모습. 일반 도로에서는 보기 힘든 여관 간판도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예소빈).

청풍장과 소화장 아파트는 부산시가 지정한 '부산 기네스 125선'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부산의 첫 아파트다. 이 두 아파트는 모두 4층짜리 건물들로 1층에는 입주민들이 개조해 점포 영업을 하고 있고, 2층부터 주택 공간으로 쓰인다. 28세대가 살고 있다고 하며, 빈 집도 몇 군데 있다.

청풍장과 소화장이란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져 여관 같기도 한 이름이다. 청풍장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당시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타일로 벽면이 장식돼 있다. 타일 벽면 장식은 아직까지도 그때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년 후에 지어진 소화장 아파트는 부산에 거주했던 일본 사람들의 아파트 수요가 늘면서 지어진 아파트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물자가 부족했다. 그래서 외관에 타일을 붙이지 못했다. 철근 또한 많이 넣고 짓지 않았다. 3분의 2는 목재를 사용하였고, 나머지는 콘크리트로 지었다. 층과 층 사이에는 1m 정도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나무를 받쳐 층과 층 사이에 층간소음이 없다. 또 화재방어벽 또한 층과 층 사이에 깔린 목재 덕분에 잘 되어있다. 목재만 타고 다른 층으로 불이 번질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벽은 빨간 벽돌에 횟가루를 발라서 지어졌다. 이러한 건축양식들은 일제 말기의 모더니즘 양식이다.

소화장 아파트 1층을 개조해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차동주(67, 부산 중구 광복동) 씨는 5년 전 부산대 교수가 청풍장과 소화장에 관한 논문을 쓴다 하여 같이 아파트 조사를 했다. 그래서 아파트 구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차 씨는 “그때 그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드릴로 구멍을 내도 구멍이 잘 뚫리지 않는다. 당시치곤 굉장히 잘 지어진 아파트”라며 “아직까지도 옛날 구조 그대로 다다미방이 보존된 집도 있다”고 말했다.

▲ 청풍장(왼쪽)과 소화장(오른쪽) 아파트 외관의 모습. 어찌나 튼튼히 지었는지 전문가들은 아직도 100년은 더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예소빈).

일본 관사로 이용되던 이 아파트들은 해방 후 건물이 비게 되면서 먼저 차지하게 된 사람이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3층 건물이었으나 비가 새서 1층을 무허가로 세워 총 4층 현재의 아파트 모양이 완성됐다. 임시수도 당시에는 국회의원들의 관사로 쓰였다. 당시 아파트 주위는 허허벌판이었다. 때문에 앞은 자갈치 바다와 뒤로는 탁 트인 벌판으로 전망이 상당히 좋은 고급 아파트였다고 한다. 가격 또한 꽤 비싼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양옆으로 큰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당시의 전망은 가려졌다.

2007년에는 부산시가 이 두 아파트를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시와 주민들 사이의 보상 문제와 4층은 무허가로 나중에 올린 건물이기 때문에 4층 소유주는 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서 문화재 지정이 무산됐다.

▲ 아파트 내관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예소빈).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법체계 연구>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은 정부나 지방 자치단체가 문화재를 보호할 때 관계자의 소유권 등 재산권을 존중한다. 또 미국은 유적지 등 국가가 인정하는 건축 문화재는 국가지원금을 받거나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창풍장과 소화장의 문화재 지정이 실패하면서, 더 이상 시와 주민들 사이에서 문화재 지정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주민들과 큰 갈등을 겪은 시는 손을 놓고 있고 관리도 전혀 되지 않아 건물 환경이 엉망이다.

구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청풍장과 소화장 아파트의 경우, 결국 민간 소유의 건물이기 때문에 소유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문화재가 될 수 없다. 엄연히 사유 건물이므로 구청이나 시에서 해줄 만한 것도 없는 상태다. 현재 두 건물은 70년 이상이 지난 노후 건물이어서 재개발할 것인지 문화재로 보존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많은 갈등을 낳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이 아파트들은 민간 소유이기 때문에 안전도 검사는 개인 소유주 몫”이라며 “문화재 전문가의 가치 판정은 딱히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서울시와 거주민들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프로젝트'의 하나로 문화재 예비목록에 충정 아파트를 선정하고 문화재 지정하는 쪽으로 주민 동의를 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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