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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①]“음악으로 청중과 함께, 나누고 소통할 때, 난, 가장 행복하다"

기사승인 2018.10.15  21: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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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음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온 세계인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있다(사진: 차용범 제공).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白建宇, 67). 10세 때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하고 16세 때 미국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시작으로 영국, 이탈리아에서 사사, 국제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피아노 신동’의 명성을 얻은 천재적 연주자다. 26세 때 라벨의 독주곡 전곡을 완주한 뒤 라흐마니노프, 포레, 부조니를 집중 탐구했다. 2005년부터 3년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녹음한 뒤, 지금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재발견 중. 한 작곡가를 탐구할 땐 책, 그림, 영화까지 섭렵하며 몰입한다. 그 연주는 단순한 건반의 울림을 넘어 그의 인생관과 음악철학을 아우르는 메시지다. "건반 위의 순례자", "건반 위의 구도자", 그의 최선을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을 평가하는 찬사다.

"피아노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음악가다(르 피가로)." 프랑스 파리에 살며 온 세계인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기사훈장’을, 한국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고, 오늘도 세계를 누비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연주활동 중이다. 협주곡을 한 번만 듣고도 피아노로 연주한 ‘천재’지만, 지금도 피아노 연습과 악보 연구에 매일 6시간씩 매달리며 음악에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990년대부터 그랜드 피아노도 없는 중소도시, 연평도 같은 섬마을에서의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그가 부산직할시 승격 50주년을 기념, 부산에서 ‘베토벤’으로 부산사람과 만났다. 1976년 영화배우 윤정희(尹靜姬)씨와 결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부산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그는 왜 한 작곡가에게 그렇게 몰입하는가. 왜 소도시와 섬마을의 ‘특별음악회’를 중시하는가? 상업적 광고를 거부하는 그의 인생철학은 어떠한가? ‘내조의 여왕’ 윤정희, ‘외조의 대왕’ 백건우. 그 행복한 부부의 전형으로 사는 비결을 또 무엇인가? 3년 만에 고향을 찾는 자랑스러운 부산사람에게 궁금한 것은 그뿐이겠는가?

1946년 서울 출생.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1956년 10세 때 국립교향악단과 협연 통해 데뷔,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피아노 전공, 줄리어드스쿨 음악대학원 졸업. 1989년부터 프랑스 디나르 에메랄드 코스트 국제음악제 음악감독, 2007년 제13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분 심사위원. 뉴욕 미트로폴로스 콩쿠르 특별상(1961), 부조니 콩쿠르 입상(1969), 프랑스 디아파종 음반상(1992·1993),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호암상(예술상)(2000), 경암학술상(예술부문, 2009),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10) 수상.

 

온 세계인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피아니스트

먼저, 백건우의 인간성 얘기. 그는 역시 ‘겸손한 거장’이다. 유명인사들은 더러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인터뷰를 미루기도 하지만, 그는 ‘부산이야기’의 인물탐구 인터뷰를 흔쾌히 수용했다. 사진촬영 역시 “리허설 장면이면 어떤가?”고 먼저 제안했다. 유명 스타에의 선입견을 단번에 뒤집을, 반할만한 인간미였다. 하나 더. 그는 지금 파리에 살지만, 실상 ‘부산사랑’에 있어선 출향인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깊은 애정을 품고 산다.

그가, 부산직할시 승격 50주년 기념 부산시립교향악단 특별연주회 협연자로 부산을 찾았다. “브람스를 연주할 때는 브람스의 명인이 되고, 바흐를 연주할 때는 바흐의 대가가 된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최고의 베토벤 연주가가 된다"는 찬탄을 받는 그. 그가 부산 팬에게 들러줄 베토벤에의 기대를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실상, ‘부산사람’ 그는 이번 공연에 나름의 부산사랑을 흠뻑 담아내 그 기대에 한껏 보답했다.

 

차용범과 인터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 차용범 제공).

‘최고의 베토벤 연주가’ 베토벤으로 부산 찾다

Q. 부산에서의 공연, 얼마 만인가?

A. "2~3년? 2000년 10월 곽 승 지휘자 시절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 기억이 있다. 부산시향과의 연주, 정말 좋았다. 중국에서 리신차오 지휘자와 여러 번 공연했고,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훌륭한 지휘자와 부산에서 만나, 정말 기뻤다.”

이번 부산 무대에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제4번을 연주했다. 협주곡 제1번은 베토벤의 초기 작품에서 보이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그는 여러 곳에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려 노력한 흔적이 드러나는 곡이다.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은 베토벤의 5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새롭고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오케스트라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뒷받침, 피아노 협주곡인데도 교향곡을 연상케 하는 곡이다.

 

연습에 빠진 백건우와 남편 구두닦기에 바쁜 윤정희

지금도 온 세계 청중의 가슴을 흔드는 열정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는 오늘도 세계를 무대로 그 열정적 연주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여러 화제를 낳았다. 전 세계 순례객이 예수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고난주간(苦難週間),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자 주빈 메타)의 초청으로 2017년 3월 28~30일 하이파▫예루살렘▫텔아비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했다. 실내악까지 포함해 사흘간 4회 연주의 강행군이다.

Q. 그 이스라엘 필과의 협연, 어땠나요?

A. "성 금요일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빈 메타 씨와 이스라엘 필, 그리고 베토벤, 그 이상 영광스러울 수가 없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회였어요. 연주를 마치고, 앙코르를 연호하는 청중의 기립박수에 주빈 메타가 저의 등을 떠밀면서 ‘슈만을 듣고 싶다’고 속삭인 뒤, 그는 더블베이스 주자 곁에 앉아서 경청했습니다. 전,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 중 <아리아>를 연주했어요.“ 메타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He is great pianist. 허세를 부리기 쉬운 요즈음, 백건우는 여전히 고전적 미덕을 갖춘 연주자”라고.

연주 내내 부인 윤정희는 1층 객석 뒷자리에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포갰다. 오른손 엄지로 묵주의 십자가를 어루만졌다. 백건우의 진심이 청중에게 닿기를 기도한다. 2010년 ‘최고의 영화’ <시(詩)>로 국내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윤정희. 그녀는 이 남편이 연습하는 동안,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남편 구두를 닦고, 연주용 연미복을 매만졌다.

연주회가 끝난 뒤, 한 스위스 출신 관객이 부인 윤정희와 취재진에게 다가와 속삭이더란다. ”내 평생 들었던 베토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다“고. 스물셋에 영화 <청춘 극장>으로 데뷔, 325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당대의 스타. 그녀는 남편 연주회에서 말없이 묵묵히 내조를 계속 하고 있다. “아침에 서울서 영화를 촬영하고 저녁에 지방에 내려가 다른 영화를 찍던 시절부터 짐 싸고 푸는 일이라면 이골이 났어. ‘백건우 비서 노릇’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거야.”

 

소도시 연주▫섬마을 콘서트로 음악적 감동 나누기

Q. 세계적 명성을 떨친 국내 연주자 중 중소도시에서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언제부터 지방연주를 하셨나?

A. “1986년부터, 벌써 28년째다. 지방연주를 다니면서 늘 깨닫는다. 언제나 진실된 음악이 담는 소리는 청중과 함께 할 수 있고, 서로 감동을 준다는 거다. 사실 외국 같으면 중소도시 연주회, 별 의미 없다. 한국이니 그 뜻이 다르다. 국내연주를 하다 보니 중요도시 몇 군데 빼 놓곤 전혀 음악회가 없더라. 음악은, 모든 사람을 위하는 것, 찾아가서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KBS와 연이 닿아 과감하게 시작했다.

첫 중소도시 연주는 전북 전주에서였다. 그 때는 도시마다 음악회장이 없을 때다. 극장, 강당, 체육관에서, 피아노도 빨간색, 하얀 색, 작은 것 큰 것, 국산, 일산.... 만족한 연주의 조건이 모자라 힘들었지만, 청중들은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더라. 요즘은 지방 음악회가 많지만, 그 때 그런 음악회를 시작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그의 93년 순회음악회를 한 언론은 ‘애향 나들이’로 표현했다. 고국의 10개 도시를 19일간 순회하는 연주 대장정, 창원을 시작으로, 광양 춘천 안동 대구 울산 과천 광주 수원 서울을 돌며 모두 11차례 독주회를 갖는 일정이다. 최고 연주자가 클래식 실연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동서남북으로 찾아가 직접 피아노음악의 매력을 맛보인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Q. 연주가로서 개인적 지향도 있을 듯 한데요?

A. "20여년 전 귀국 때 시골 절만 찾아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나의 조국과 산하를 숨쉬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갖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힘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앞이 막히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금은 그때와 달리 조급한 마음은 아니에요. 그저 우리네 땅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과 만나 차분히 음악만 놓고 얘 기하고 싶었습니다. 연주자 백건우는 숨고, 음악만으로 청중과 만나고 싶습니다.“

의도가 훌륭해도 청중이 연주자를 따라오지 못할 때는? 그는, 청중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잘 알려진 곡을 연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곡으로 프로그램을 짜면 청중동원에는 도움이 될 터. 그러나 연주회는 청중과 연주자가 1 대 1로 만나는 자리 아닌가. 쉬운 곡이건 어려운 곡이건 연주가 훌륭하고 설득력 있으면 다 전달이 된다는 믿음이다. 연주회가 끝난 뒤 청중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연주장을 처음 찾았다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음악적 감동을 받은 경우가 많았단다.

 

북한 포탄이 쏟아졌던 그곳에… “쇼팽이 찾아왔다”

백건우, 그는 ‘섬마을 콘서트’도 갖고 있다. 2011년 9월, 북한의 포탄세례를 받았던 연평도를 찾아 평화의 선율을 선사하면서부터다. 인천 옹진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에서 첫 야외 콘서트를 열었고, 이어 전북 부안 위도, 경남 통영 욕지도까지 세 곳을 순회했다. 그는 연평도 관객 앞에서 쇼팽의 <뱃노래>, 리스트의 <물 위를 걷는 성 프랑수아>, 드뷔시의 <기쁨의 섬>, 베토벤의 <월광> 같은 낭만적인 피아노 선율을 들려줬다. 1000명이 넘는 청중이 공연장을 찾았고 의자에 앉지 못한 관객은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거나 근처 언덕에 올라 노을 속에서 음악을 감상했다. 앙코르곡으로 리스트의 <잊혀진 왈츠>를 선사했다. 부인 윤정희도 함께 했다.

Q. 섬마을 콘서트를 연 계기는?

A. "부산에의 기억 때문이다. 어릴 때 부산에서 자랄 때 산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였다. 부산에서 본 섬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국에 일찍 나가서 생활해 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국을 찾게 된다. 오래전부터 프랑스 연습실 벽에 대형 대한민국 지도를 붙여놓고 섬마다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 나의 언어인 음악으로 또 하나의 고향인 바닷가 주민과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인 셈이다.“

배우 윤정희가 영화 <화려한 외출>(1977) 촬영차 욕지도에 갔을 때, 결혼 1년차 신랑 백건우도 따라갔다. 1주일간 섬 이곳저곳을 그냥 돌아다녔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매혹적인 섬이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섬에는 대기실도, 음향 시설도 없다. 연주자는 한 평 간이 천막에서 숨을 돌리고, 관객은 방석에 앉아 감상한다. 협찬 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가져간다. 피아노와 객석 거리가 1m에 불과하고, 좌석 번호도 없다. 어디든 앉아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생업에 지친 심신을 녹이고 달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마음 씀씀이다.

Q. 연평도 콘서트를 마친 뒤 느낀 점은?

A. "공연을 마친 뒤 주민들과 막걸리를 나눴다. 내가 '아름다운 섬에서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더니, 조윤길 옹진군수는 ‘고맙다, 그리고 (포격 당해) 슬픈 섬을 기쁜 섬으로 만들어 줬다’고 답했다. 뒤풀이가 끝나고, 주민들은 우리 부부가 탄 버스를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계속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를 반복하면서. 사회자도 없고 우왕좌왕 소란할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참 아름다운 모험이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90년대부터 그랜드 피아노도 없는 중소도시, 연평도 같은 섬마을에서의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2011년 연평도 콘서트(사진: 차용범 제공).

백건우, 그는 이번 부산협연을 마치고, 다시 울릉도 저동항(6.3일)과 통영 사량도(6.7일)에서 섬마을 콘서트를 가졌다. “듣고 싶은 분들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그의 음악철학에 충실한 결과다.

알려진 계획에는 없던, 절해고도에서의 1인 청중 연주회도 이번 섬마을 연주 여정 중 나왔다. 서울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저동항 연주회를 앞둔 1일, 울릉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20분을 더 가야하는 죽도를 찾았다. 이 고도를 지키는 유일한 주민을 위해서다. 학창 시절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선물 받았으나, 이제 어머니를 보내고 사모의 정에 젖어 사는 40대 중년남자. 그는 백건우의 연주로, 어머니가 생전 즐겨부르던 <매기의 추억>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중 2악장을 감상했다. 남자는 어머니 생각에 노래 부르다 목이 메고, 백건우는 함께 눈망울을 촉촉하게 적시며 건반을 두드리고. 남자는 백건우 부부에게 영덕 게를 넣은 라면을 끓여 대접했다.

사실 확인 차 윤정희 선생과 통화했다. “죽도 다녀오신 얘기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아, 그 얘기 신문에 났던가요?” 아, 이런 감동적 스토리가 우리 주변에 그리 흔한가? 백건우 같은 멋쟁이는 또 그리 흔할 터인가?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②]에서 계속 됩니다. 

차용범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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