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과 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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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과 갈치
  • 칼럼리스트 강석진
  • 승인 2018.10.1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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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리스트 강석진
칼럼리스트 강석진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가 전 지구를 돌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미국 영국을 넘어 이제는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파리에서 열리는 한·프랑스 우정 콘서트에 참석해 그들의 공연을 볼 정도로 국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행에 뒤처지기 마련인 나이든 세대는 이름도 몰랐던 아이돌 그룹이 한국의 문화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유행어를 구사하거나 인기 있는 연예인을 가까이 함으로써 득을 보려 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BTS와 함께 하는 것은 인기 차용에 도움이 됨직하다.

눈길을 돌려 보면 인기나 유행의 그늘에 놓여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들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요즘의 한일 관계다.

한일 관계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일 대로 꼬인 미로다. 현안 하나하나가 난제인데다가 모아 놓고 보면 더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되어 버렸다.

한국과 일본은 박근혜 정부 말 한일 통화스와프협정을 위한 협상을 중단했다. 일본 측이 부산주재 일본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진 데 항의하는 뜻에서 중단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역전되어 해외자본 유출 가능성이 우려되는 현재 외화자금 수급 안정을 위해 한일간 통화 스와프 협정은 필요성이 더 커졌다. 지난 5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연석 회의에 참석해 “일본과 통화스와프 재개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비슷한 시기에 협상 재개에 대한 희망을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여러 복잡한 정치 문제에도 불구하고 통화스와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도 한일 간 협상 재개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 일본으로부터 협상 재개를 향한 긍정적 시그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부산 주재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을 치워 준다고 일본 측이 당장 협상에 응할지, 그렇게 해서 맺은 통화 스와프가 국민에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다. 일단은 장기전 형국이다. 필자는 위안부 문제의 바른 해결을 희망하지만 소녀상의 숫자가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일어업협정은 종료된 지 3년이 됐다. 2015년 만료된 이후 3년째 표류하고 있고, 일본 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던 어민들의 조업중단은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업 협상에서 일본은 불법조업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갈치 조업 어선 수를 대폭 줄이라고 요구했는데, 한국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여기에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한국이 후쿠시마 현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데 대해서도 일본 측은 ‘과도한 규제’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고, 이것이 어업협상의 장애가 되어 왔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들은 자국민의 식품안전을 생각하지 않아서 완화된 조치를 취하고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이미 한국은 이 수입규제 조치와 관련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고, 현재 한국이 상소한 상태다.

요즘 갈치 값이 비싼 게 우리 어선이 일본 경제수역에서 조업을 못한 탓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농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어업협상이 난항을 겪는 데 대해 “독도를 둘러싼 한일 중간 수역은 대한민국 영역인데 지난번 협상에서 일본 측이 정부 간 협상을 앞세우고 있다. 독도에 대한 우리 측 지위가 훼손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말해 독도 문제와 묶여 있음을 분명히 했다. 독도 문제가 걸렸는데 어떻게 쉽게 어업협상이 풀리겠는가? 갈치 값싸게 먹기는 글렀고, 당장은 독도 주권 수호의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는 일만 남게 됐다.

한일관계는 화려한 인기나 매끄러운 유행의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지난 9월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 간 합의에 따라 설립된 위안부지원재단과 관련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해 재단의 해산을 사실상 통보했다. 지난 5월 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서로 초청했지만 올해 안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문 정부의 관심은 남북문제, 북미 중재 등에 온통 쏠려 있는 것 같다. 또 한일관계에 관한 한 문 정부는 국민, 조금 좁혀서 이야기하면 지지자들의 민심을 크게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 제주 국제관함식에서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그들의 깃발인 욱일기(旭日旗)를 달지 못하게 하자, 일본은 아예 관함식에 불참해 버렸다. 자국기와 태극기 이외에는 달지 말라고 요청하는 형식으로 욱일기를 달지 못하게 했으나 한국 함정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달았던 ‘수(帥)’자 기를 달았다며 일본 측은 불만을 표하고 있다.

연내에 일제 강점기 징용자 배상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올 예정이다. 판결 내용에 따라서는 일본과 풀기 어려운 숙제가 하나 더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래저래 한일관계는 험한 길에 첩첩산중 형국이다. 정부도 문제를 풀기보다는 격정을 토로하며 확전 불사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을 두드리는 것은 국내 정치에서 단기적으로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수습의 책임도 정부가 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웃 나라와 외교를 풀어나가지 못하는데 먼 데 외교가 잘 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취약한 규제는 우리가 먼저 풀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는 중요하다. 하여도 여러 문제 가운데 중요한 문제들일 뿐 전부는 아니다. 관계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앞세우지 않고는 풀리길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일관계는 우리나라 외교의 커다란 한 축이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이 231만 명,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14만 명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젊은층이 크게 늘었다. 이들은 지방 소도시까지 관광을 즐길 정도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가져가고 있고 일본 음식도 즐겨 한다. 그런가 하면 BTS의 음반 수십 만 장이 일본에서 팔릴 정도로 일본 젊은층의 한국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러한 관심과 선호, 인기도 한일관계를 다루는 데는 중요한 요소여야 한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세례를 강하게 받은 한국에서 역사 문제와 주권 문제가 불거지면 다른 문제들은 옆으로 젖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외교는 명분의 경연장인 동시에 이익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국제 정세, 국제 경제 상황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거나 혼돈에 빠져드는 때에 과거사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 있으나, 민주주의 가치관은 공유하고 있는 기존의 우호관계국인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 때가 됐다. 남북 관계를 잘 풀기 위해서도, 북한 핵 문제가 정리된 다음 북한에 대한 지원 태세를 널리 튼튼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싫든 좋든 함께 해야 할 동반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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