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보다는 셀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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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보다는 셀프 대화
  • 편집위원 박시현
  • 승인 2015.03.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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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인의 <따뜻한 얼음>이란 시에는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겨울 동안 두꺼웠던 얼음이 봄이 되면서 점차 맑고 반짝인다고 시인은 노래했고, 그 이유는 그 얼음 아래에 작고 여린 물고기들이 푸른빛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시인이 읊은 듯하다.

봄이 되면, 대학 캠퍼스는 노란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새내기 신입생들이 이리저리 분주히 오간다. 캠퍼스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는 벚꽃은 연한 분홍 꽃망울을 흐드러지게 펼쳤다. 나의 눈에는 대학 새내기들이 푸른빛이란 희망을 가슴에 담고 얼음 아래를 힘차게 헤엄치는 여린 물고기를 닮았다. 신입생들은 옷차림마저 밝고 가벼워 보인다. 그런 신입생들과는 달리 2, 3, 4학년 재학생들의 옷차림은 새내기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테지만, 나의 눈에는 재학생들은 여전히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는 듯 보인다. 대학 재학생들은 입학 이후부터 학점이다, 장학금이다, 스펙이다, 취업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고문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속마음에 과연 희망과 꿈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3월 2일 서울대는 신입생 입학식 축사를 할 사람으로 이 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를 단상에 올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으로 젊은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김 교수가 대한민국 최고 대학 신입생들에게 무언가 산뜻한 입학식 축사를 해줄 것으로 대학은 기대했을 듯하다. 김 교수는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를 강조했다. 최고 대학 입학생들은 이 나라를 위한 책무가 있다는 말인 듯하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닌 채무자”란 말도 했다. 나라 안의 세대 이기주의 문제와 나라 밖의 일본과 중국의 도전에서 이길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독려했다.

김난도 교수의 이 입학식 축사가 인터넷에서 번져 나간다고 한다. 호불호가 나뉜다고 하는데, 나에게 이 축사는 참 잘난 학생들에게 참 잘난 교수가 해주는 덕담이라고 느껴진다. 너무 혹독한 평가일까? 왜냐하면, 나는 일류대 교수도 아니고, 저명 교수도 아니며, 내 학생들은 국가에 채무를 느끼고 나라 안팎의 도전을 책임질 의무를 져야하기는커녕, 자기 한 몸도 이 험한 세상에서 건사하기 힘겨운, 정말로 ‘아픈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 1학기에 ‘아나운싱과 리포팅’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이 과목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바른 발음, 전달력 있는 스피치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스피치 능력 향상 수단으로 모든 학생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카메라 앞에 세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가치)과 진로(직업)를 말하게 한다. 나는 이 장면을 녹화한 다음, 학생 하나하나와 스피치 능력에 대한 진단과 교정은 물론, 스피치 내용에서 언급된 학생들의 꿈과 진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는 몇몇 학생들은 직업과 연관된 ‘진로’와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꿈’을 별개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몇 명 학생들은 진로와 꿈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또 아직 미래 직업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들도 있다.

진로와 가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학생들에게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10가지씩 적어 오라고 주문한다. 모든 항목에서 10가지씩을 채워서 오는 학생들은 극히 드물다. 항목마다 겨우 두세 개, 혹은 서너 개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걸 꺼내 놓고 학생들과 대화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진로를 깨달았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학생 중에는 기자가 되고 싶다거나 PD가 되고 싶다고 적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대화 중에 꼭 “저 정말 PD가 될 수 있을까요?” “저 기자가 꼭 되고 싶은데 힘들겠지요?” 이렇게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미래 직업을 아직 졸업이 몇 년 남았으니까 의례적으로 적었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학생들도 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들은 자신이 없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이 말은 빈말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들에게는 앞날을 헤쳐 나가고 도전할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편에서 유홍준 선생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나’를 알고, 그래야 ‘내’가 보이고, 그제서 보이는 ‘나’로부터 각자는 꿈과 진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셀카를 찍으면 나의 겉모습이 보이나, 나의 속 모습은 모른다. 마음의 셀카를 찍어야 하는데, 이것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셀프 대화’다. 바로 자신과의 대화란 말이다. 셀카를 찍기보다는 각자의 나와 대화해보자. 어차피 늦었고 어차피 뒤처졌다고 느꼈다면, 차라리 근본적으로 나를 알고 진로와 꿈을 세우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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