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밀라, 구엘 공원 등....바르셀로나에서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만나다
상태바
카사 밀라, 구엘 공원 등....바르셀로나에서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만나다
  • 취재기자 류효훈
  • 승인 2018.09.16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빅뉴스 류효훈 기자 스페인 탐방기① 자연을 본따 직선아닌 곡선의 건축물...예술감흥 "흠뻑"
안토니 가우디의 생전 모습(사진: Wikimedia Commons).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밀라, 구엘 저택 등을 만든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긴 말이다. 말 그대로 그의 건축물들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대부분 이루어져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의 마을 레우스에서 대장장이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어렸을 때부터 류마티스 병을 겪으며 자랐다. 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서 많은 시간을 지내곤 했지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철을 만지며 자연을 관찰하는 등 유년기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때의 시기 덕분에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물을 짓는데 많은 영향을 받게 됐다.

그는 사소한 계기로 건축가의 길을 가게 됐다. 몸도 성치 않고 성적도 좋지 않았던 어린 시절, 친구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줬는데 칭찬과 동시에 실력을 인정받으며 천천히 건축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건축가를 꿈꾸게 된 그는 몇 년 후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건축가 자격증을 따면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건축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빅토리아 양식을 사용하다가 후에는 트랜카디스 기법과 동시에 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을 혼합한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하는 한편,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건축 양식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지은 카사 비센스를 시작으로 건축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건축물들에는 카사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있는데 스페인어로 카사(casa)는 집이라는 뜻이다. 즉, 누군가에게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만든 건축물이기 때문에 그의 건물에는 카사가 건물 이름 앞에 붙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07년에 완공된 카사 바트요는 돌, 자기, 타일, 금속 등의 조각들을 건물의 겉면에 기하학적 모양으로 입혀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가우디만의 트랜카디스 기법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성 조지(Saint George)’의 ‘성 조지와 용’이라는 전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지어졌다.

카사 바트요의 베란다는 특이하게 해골 모양으로 이루어져있고 옥상은 용의 비늘과 창을 표현해 주변 건물에 비해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카사 바트요의 창문 사이에 있는 얇고 긴 기둥은 마치 사람 뼈마디를 연상케한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카사 바트요의 베란다는 특이하게 해골모양으로 이루어져있거나 사람의 뼈마디를 흉내내어 제작됐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카사 바트요의 윗부분을 보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의 비늘이 지붕으로 얹어져있는 듯하며, 베란다는 사람의 해골과 뼈를 표현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다. 특히, 지붕의 뾰족한 탑은 성 조지가 용을 찌른 창을 상징한다.

흔히, 사람들은 가우디의 대표작이자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만든 건축물이라 하면 아무래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만 모든 역량을 바친 것은 아니다. 성당을 짓기 전 카사 밀라의 건축물에 자신이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었다.

카사밀라의 외관 모습. 벽면과 발코니의 철쇠를 보면 가우디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카사 밀라는 카사 바트요를 보고 밀라라는 사람이 가우디에게 의뢰해 지어진 연립주택으로 산을 주제로 디자인됐다. 겉으로 보면 산처럼 물결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시멘트로 지은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석회암과 철로 이루어져있다. 석회암과 철을 정성들여 깎아서 부드러운 곡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카사 밀라는 스페인어로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돌을 캐는 채석장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구엘 저택의 정면. 1층은 커다란 2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입구로 되어있지만 위층에는 성벽과 같은 모습으로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이것 말고도 가우디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에우세비 구엘을 위해 저택을 설계하기도 했다. 바로 구엘 저택이다. 좁은 골목 안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구엘 저택은 외관으로는 2개의 큰 아치와 궁전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있고, 내부는 무데하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옥상에는 가우디 특유의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만든 굴뚝도 있다.

무엇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은 미래적인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기를 꿈꿨는데 이를 위해 큰 규모의 대지를 구입해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아파트의 부지는 바르셀로나의 전경과 바다가 모두 보이는 곳엔 있었지만, 막상 건축을 시작하려하자 여러 문제가 생겼다. 분양지 매입의 조건, 운송 수단의 부재, 주택 단지의 특성 등등으로 인해 결국 1914년 건설이 중단되어버렸다. 이후 구엘이 사망한 뒤에는 그의 상속자들은 부지를 바르셀로나 시청에 제공했는데, 이 단지는 1926년부터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으며, 온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전 세계 관광객들의 인기 유적지인 구엘공원이 됐다.

구엘공원의 입구부터 나무와 다리가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마치 사파리와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한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구엘공원은 무료존과 유료존으로 나뉘는데 유료존에 구엘공원의 대표적인 모습이 다 담겨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구엘 공원의 유료존은 일정 시간마다 관광객을 입장시킨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기둥이 있는 '나선 비탈로'로 파도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구엘공원의 또 다른 시그니쳐 장소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구엘공원 건축 당시 부지를 매입할 때 있었던 건물이다. 가우디가 구엘가족을 위해 약간의 손만 봤다. 공영 공원으로 개방된 후 발디리 레샥 공립학교로 바뀌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구엘 공원의 입구와 경비실의 모습. 모두 깨진 세라믹 조각으로 표면이 처리된 독창적인 지붕 모습을 모여준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오스트리아 정원의 일부. 원래 목적은 주택 건설을 위한 부지였으나 대중에게 개방된 후 60년대에 유이스 리우도르가 디자인한 산책길이 있는 공원으로 모습을 바꿨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오스트리아 정원에서 구엘 공원 경비실을 바라본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자연의 광장에서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와 더불어 바르셀로나의 광활한 바다도 볼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1985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엘공원은 입구부터 야자수와 돌기둥 및 화려한 건축물을 통해 마치 동화 속에 온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유료존이 구엘공원의 하이라이트다. 파도를 형상화한 다리 밑, 독특한 모습의 경비실, 가우디의 시그니처 도마뱀 조형물 등을 볼 수 있다.

구엘공원의 시그니처이자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인 도마뱀이다. 도마뱀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전설도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어린 시절 허약했던 가우디는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자신 주변의 것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양식의 구애 없이 다양성을 추구한 천재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는 아깝지 않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