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다” vs.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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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샤를리다” vs.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5.01.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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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시사잡지 <샤를리 에브도>가 만평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이 언론사에 테러를 가한 사태를 두고, 두 개의 상반된 동향이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운동이다. 두 운동 모두 테러에는 명백히 반대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약간 다르다.

“나는 샤를리다” 운동은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언론 역사와 깊게 연결돼 있다. 세계 최초의 근대적 주간신문은 인쇄술과 국제 무역이 발달한 독일에서 1609년 발행된 <릴라찌온(Relation)> 지였다. 뒤를 이어,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에서도 연달아 신문이 번성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17세기 유럽은 절대왕정 시대였다. 신문을 발행하려는 사람들은 왕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함부로 허가권자인 왕을 비판할 자유가 신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후 유럽은 표현의 자유(좁게는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으로 국왕의 권력이 약해지자, 존 밀턴이 1644년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의회에 대한 논의’란 의미)>란 책을 지어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밀턴은 여기서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에서 진실과 허위가 만나 서로 싸우게 놔두면 나중에는 진실만이 자동적으로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이런 표현의 자유 전통이 이 나라에서 사상, 문화, 과학, 스포츠, 예술의 세계사적 창조자들인 아담 스미스, 뉴턴, 존 로크, 다윈, 비틀즈, 조앤 롤링은 물론, 세계사적 사건들인 입헌군주제, 자본주의, 산업혁명, 프리미어 리그 축구 등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인권선언이 발표됐다. 프랑스 표현의 자유는 바로 이 프랑스 인권선언에 기인에 한다. 나폴레옹은 1792년 권력을 잡은 뒤 “내가 신문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나는 3개월 만에 권력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당시 프랑스는 300여 종의 신문이 성행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 프랑스 지적 자산이 되어, 프랑스에는 좌파지인 <르몽드>와 공산당 기관지인 <리베라찌옹>이 아직도 건재하다. 아마 <샤를리 에브도> 잡지의 신랄한 세태 풍자 전통도 볼테르, 몽테스키외, 샤르트르, 알뛰세르, 푸코, 보들리야르 등 쟁쟁한 프랑스 사상가들의 피를 이어 받은 듯하다.

이런 유럽의 표현의 자유가 대서양을 건넜다. 1781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7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1791년에는 여기에 새로운 10개 조항이 추가됐다. 이때 추가된 10개 헌법조항 중 첫 번째를 ‘미국 헌법 수정1조(The First Amendment)’라 부른다. 조금 긴 이 조항은 “의회는 표현의 자유(중략)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로 요약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그 어떤 법 자체를 의회가 만들 수 없다는 미국 헌법의 이 조항은 현존하는 법률 조항 가운데 가장 멋있고 완벽하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법조항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마도 미국 헌법 수정1조는 “나는 샤를리다” 운동으로 현대에서 다시 불붙고 있는 듯하다.

특히, 미국 헌법에서 절대적 언론자유가 보장된 배경은 미국이 세계 최초로 국가 권력이 단 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에게 집중되지 않는 삼권분립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독점되려는 속성을 가진 권력은 항상 국민들에게 감시되어야 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곧 국민의 알권리이며, 이를 실현할 수단은 오로지 언론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론은 조그만 사기업에 불과해서(실제 당시 18세기 미국 신문들은 영세기업이었다) 거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감시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헌법 기초자들은 헌법의 막강한 후원을 등에 업어야 왜소한 언론들이 권력 3부를 감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정1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론을 행정부, 입법부, 사업부, 3부에 이어 정부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부서인 ‘제4부’라고 별칭하는 연유가 됐다. 그러나 언론이 오늘처럼 거대재벌이 돼서 정부보다 더 영향력이 막강해질 것을 당시 헌법 기초자들이 예견했다면, 수정1조 같은 언론의 절대 자유는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오늘날에는 지배적이다.

수정1조에 근거해서 미국은 민주주의 근간으로 언론자유를 대단히 중시했다. 미국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백악관을 포함해서 각종 내부회의를 언론에 공개해야 하고, 공개하지 못할 때는 회의록을 일정 기간 후에 공개해야 한다. 이를 ‘회의공개법’ 또는 햇빛법(Sunshine Act)이라 한다. 기자는 판사가 법정으로 불러서 어떤 취재에 관련해서 증언하라고 명령해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면책특권이 있는데, 이를 ‘방패법(shield law)’이라 부른다. 회의공개법이나 방패법은 모두는 아니지만 다수의 미국 주가 가지고 있다.

이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 장치들로 인해서, 미국의 공인(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은 명예훼손 소송 등에서 언론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언론의 2대 기능은 보도와 논평이다. 언론은 특히 공인들이 잘하는지, 또는 못하는지를 ‘논평’하는 게 항상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사건건 공인들이 수시로 언론의 논평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다면, 언론자유가 위축된다는 것이 미국식 논리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했다. 미디어도 변했다. 수정1조는 언론을 신문만을 뜻하는 ‘프레스(press)’라 지칭했지만, 오늘날 미디어는 IPTV도 있고, 사물 인터넷도 있으며, SNS도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무한정한 언론자유에 따른 문제를 야기했다. 일부 연예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할 만큼 치명적으로 날조된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로 포용할 수는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83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헤이즐우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생 신문을 발행하면서 10대들의 성생활에 대한 기사를 실으려 하자, 교장이 신문 발행을 중지시켰다. 학생들은 언론자유를 보장한 수정1조를 근거로 학생 언론을 탄압한 교장을 고발했다. 연방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결국 교장의 손을 들어줬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언론자유보다 학교 교육이 앞선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렇게, 수정1조는 사안에 따라서 절대적이던 언론자유 수호자의 지위를 잃게 됐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고등학생들의 소송비용을 댄 후원자가 포르노 잡지 <플레이보이>였다. 이 잡지는 표현의 자유 하나로 존립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남의 표현의 자유 소송도 적극 후원한다. 현재 이런 도색잡지는 표현은 맘대로 하되 배포는 맘대로 할 수 없어서, 청소년들에게는 배포가 금지되어 있다. 이는 성적 표현물을 도덕적이나 교육적 차원에서 혐오하는 사람들이 안 볼 자유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다. 수정1조는 더 이상 산상수훈(山上垂訓)이 아니고 이렇게 상황적이다. 우리가 잘 아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따라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시(戰時)에는 언론자유도 제한 받을 수 있다. 또, 공공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은 미국도 한국처럼 허가제다.

최근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운동은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일종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증오발언, 언어폭력)'로서 종교적 다양성을 간과했고, 극단적인 종교적 증오와 인종차별을 보였으며, 언론자유의 도를 넘었다고 보고 있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혐오하는 무슬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 종교를 포용하며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프랑스적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80년대 한국의 언론자유는 없었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한국에서 언론은 그 위상이 크지 않았고, 언론에 대한 사회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언론을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와 같은 비아냥거림도 있다. 특히, 법원은 언론 편이 아니었다. 많은 소송에서 언론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비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상황이 변했다. 당국의 언론사 압수 수색, 언론인 체포 연행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이 잘 받아주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항을 확대 해석해서 거의 무한정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도 한다. ‘노가리,’ ‘쥐명박’ 등은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시대가 오자 등장한 대통령에 대한 호칭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자유를 헤치는 것이 편견임을 알아야 한다. 편견의 3대 원인은 종교, 문화(인종이나 국가), 그리고 이들이 신념화된 이데올로기다. 샤를리 논쟁도 결국은 표현의 자유냐 표현의 편견이냐의 시각 싸움이다.

몇 년 전 경주에서 학회를 끝내고 기차로 부산으로 오려고 경주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나는 이슬람 복장을 한 백인 여자 한 명을 보게 됐다. 나중에 기차에 오르자, 그녀 자리가 공교롭게도 내 옆이었다. 그녀는 캐나다 여자로 한국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 청년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개신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결혼 후, 그녀가 히잡을 쓰고 학교에 나타나자, 교회에 다니는 동료 교사들은 자신에게 등을 돌렸고, 이를 본 어린 학생들도 왜 ‘사악한’ 종교를 믿느냐고 자신에게 눈을 흘기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처럼 교육자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종교에 관한 편견을 가르치는 나라는 처음 본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육자인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문명의 충돌>을 쓴 사무엘 헌팅턴 교수가 지적한 미래 세계 갈등의 원인은 종교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쓴 미어셰이머 교수는 국가(문화, 인종)가 비관적인 세계 미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미래 10년 후 세계 최대의 리스크는 '국가간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표현의 편견은 아마도 이런 국가간, 문화간, 종교간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종교든, 국가든, 또는 이들로부터 파생된 이데올로기든, 어느 한 쪽에 서서 자기편 표현의 자유는 확대하고 상대편 표현의 자유는 제거하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게 정권이 바뀌면 일어나는 KBS 사장, 방통위원, MBC 이사진 임명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이다.

언론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진실 추구다. 종교, 인종, 문화, 국가,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언론은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의 리스크를 키운다. 언론이 표현의 중심을 잡아야 국내든 국가간이든 평화로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언론이 어느 특정 종교나 인종이나 이념과 탱고를 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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