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 아직도 서민들 구들장을 덥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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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 아직도 서민들 구들장을 덥히고 있다
  • 취재기자 이정은
  • 승인 2015.01.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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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 ...부산 유일 연탄공장 방문기
▲ 흔한 간판도 없고, 빨간 대문만 눈에 띄는, 부산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연탄공장이 남구 문현동에 있다. 이곳에서 아직도 연탄이 필요한 곳으로 배달하기 위해 트럭들이 연탄을 싣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중략) 

이것은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일부다. 연탄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는 이 시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해방 후 난방으로 국민 대부분이 나무를 때다가 조국 산하가 민둥산이 됐고, 그 민둥산을 구해낸 것이 연탄이었으며, 수많은 생명들을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케 했던 저승사자도 연탄이었다.

1960년대 서민들의 주된 겨울나기 난방 수단이었던 연탄. 지금은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등장하면서 연탄의 생산과 소비가 대폭 줄었다. 그 추세는 부산에도 예외가 아니다. 연탄 소비가 줄자, 부산에 있던 15곳의 연탄공장도 90년대부터 차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어느덧 부산의 연탄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2008년 이후 부산에 연탄 공장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연탄으로 겨울을 내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장 14명의 직원은 2015년 새해에도 어김없이 그들에게 전할 연탄을 생산하고 있다.

부산 시내 아침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던 지난 2일 오전 9시가 되기도 전,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연탄을 실은 트럭들이 문턱이 닳도록 공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날리는 석탄가루와 어두운 조명 때문에 공장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공장 밖에서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 연탄 찍어내는 기계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이다. 이 공장은 공장 이름이 크게 적힌 흔한 간판도 없다. 그저 빨간 대문으로 공장의 안과 밖을 구별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아침, 연탄을 받기 위해 트럭이 줄 서 있는 이곳은 부산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연탄공장, 바로 진아 산업이다.

▲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져 나오는 연탄을 트럭에 싣기 위해 직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커다란 컨베이어 벨트는 생산된 연탄을 연신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부산 지하철 2호선 문현역 1번 출구로 나와 그 유명한 문현동 곱창집 골목 방향(남쪽)으로 700m가량 걷다보면 빨간 대문의 공장이 보인다. 연탄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은 연탄공장의 최고 성수기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직원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쉼 없이 쏟아지는 연탄을 트럭에 싣기 바쁘다. 혹시라도 막 나온 연탄이 실수로 엎어질까 조심하기도 하지만, 연탄을 공급처로 빨리 보내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손놀림에서 노련함이 엿보인다.

1967년에 설립된 이 공장은 연탄이 주요 난방 수단이었던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다. 처음에는 부산 초량에 공장이 자리 잡았다가 후에 문현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연탄 공장 운영이 잘 되었을 때는 직원 수가 15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14명밖에 안 된다. 직원 수가 10분의 1이나 줄었다. 그마저도 힘을 쓸 젊은 세대는 없고, 전부 이 공장에서 30, 40년씩 일한 ‘어르신’ 직원들이다. 그들의 평균 연령대가 50대부터 60대에 이른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정항기(56) 씨는 14세 때부터 이 공장에서 일했다. 그 경력이 무려 40년이 흘렀다. 그는 “힘듭니다. 열악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나 아니면 할 사람도 없고. 내가 여기서 제일 일 잘 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연탄 소비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그로 인해 회사 사정이 빠듯해져 직원들을 많이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열악한 공장 환경도 젊은 층이 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피하는데 한몫을 한다. 젊은 직원 없이 나이 든 직원 14명이 부산 일대 공급할 모든 연탄을 생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탄을 생산하기 위해 무연탄 배합부터 연탄 출하까지 모든 공정에서 이 공장의 겨울철은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다. “젊은 사람들도 이런 데 안 옵니다. 젊은이들이 공장을 가도 이렇게 고생하는 곳 말고, 밝은 빛 아래 정돈된 공장에만 가려 합니다”라고 공장장 이재갑 씨가 말했다.

연탄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초부터 2월까지를 성수기라고 일컫는다. 이 시기에는 한 달 150만 장 정도의 연탄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다. 하루 평균 5만 장을 생산하는 셈이다. 비수기인 여름철 한 달에는 5만 장도 채 생산되지 못한다.

▲ 전국 각지에서 온 연탄의 재료인 무연탄은 여러 가지 혼합물을 비율별로 섞어 연탄으로 생산된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이 공장은 강원도 경동탄광, 전남 화순탄광 등에서 연탄의 주원료인 무연탄을 가지고 온다. 이 무연탄을 흙을 섞는 기계를 이용해 각종 코크스, 목탄, 석회 등의 혼합물을 비율을 맞춰 혼합한다. 탄광마다 무연탄의 열량이 달라 비율을 잘 맞춰야 제대로 된 열량이 나오는 연탄이 만들어진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그렇게 비율을 맞춘 무연탄을 물과 함께 배합하고, 배합된 연탄을 하루 이틀가량 숙성시켜 기계에서 구멍을 찍어내면 연탄이 완성된다.

공장에서 출하되는 연탄은 부산 시내뿐만 아니라 김해, 양산의 연탄 판매소로 공급되고, 이곳에서 각 가정으로 연탄이 배달된다. 그런데 요즘 연탄을 쓰는 곳은 도시가스나 기름 보일러 혜택을 보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만이 아니다. 자갈치 시장에 있는 꼼장어(먹장어) 구이집이나 고깃집 중에서 연탄으로 맛을 내는 곳들이 아직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은 화훼단지의 비닐하우스에서도 연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곳에서 연탄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워지는 작물이나 꽃들의 난로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기름값은 요동이 심해서 단지가 엄청나게 큰 김해 대동 화훼단지 같은 경우는 기름으로 온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연탄을 사용합니다”라고 공장장 이 씨가 설명했다.

또한, 겨울철에는 소외된 가정에게 연탄을 기부하는 ‘부산연탄은행’이나 ‘초록봉사단체’ 등 봉사단체들이 연탄을 대량 주문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더 기쁜 마음으로 공장 직원들이 연탄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 연탄의 소비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연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꽤 남아 있어 연탄공장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대한석탄공사에 따르면, 2014년 전국 연탄 소비량은 발전용을 제외하고 민간 사용량 기준으로 133만 톤을 기록했다. 2012년 연탄 소비량 191만 7000톤과 비교하면, 연탄 소비량 수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석탄공사 다른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연탄 소비 가구는 약 20만 가구다. 부산은 그 수치의 6%가량인 1만 2,000가구가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부산 동구 좌천동의 매축지 마을과 남구 문현동 벽화마을 일대가 부산의 주요 연탄 난방 지역이다. 이 씨는 “근데 그마저도 재개발되면서 도시가스 들어오니까, 내년에는 (연탄 사용 가구가) 1만 가구가 될까 말까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 공장 한 켠에 비스듬히 마련해 놓은 공장 관리실에서 공장장 이재갑 씨가 연탄 주문을 받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정은).

언젠가는 연탄으로 난방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줄어 아예 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시대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연탄의 수요가 아예 없어질 때까지, 이 공장은 연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연탄을 생산할 것이다. 매캐한 석탄 가루가 얼굴과 옷 곳곳에 묻더라도 말이다.

‘최고의 품질, 최고의 서비스로 고객에게 봉사하자’라는 이 공장의 모토대로 부산에 하나밖에 없는 연탄공장 직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그들은 연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남은 직원들과 열심히 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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