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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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이야기
  • 편집위원 장동범
  • 승인 2014.12.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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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귀화인 장순용

춥고 밤이 긴 겨울이면 빙하기를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이나, 아니면 자신의 뿌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덕수 장 씨 시조 장순용(張舜龍)은 고려 충렬왕 때 사람으로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 제국대장 공주의 시종무관이었다. 고려 조정은 몽골(원나라)과 오랜 전쟁 끝에 항복한 뒤 무리한 조공과 일본 정벌을 위한 군사와 군량미 차출, 그리고 군선 제조 요청 등이 가중되자, 부담을 덜기 위해 원나라의 부마국을 자청했다. 공주와 함께 고려에 들어와 귀화한 순용은 회회(回回)인으로 원래 이름은 산코(음역은 삼가, 三哥)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찬성사를 지냈고, 왕에게 성을 하사받아 본관을 지금의 개성 아래 덕수로 했다.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 기자로도 활동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1907~1991)는 그의 역사소설 <풍도(風濤)>에서 “인후는 몽고인, 장순용은 회회인, 차신은 어려서 원에 들어가 거기서 자란 고려인이었다. 함께 공주를 따라서 이 나라에 들어온 인물로서 입국하자, 곧 성명을 고쳐 고려 성을 쓰고, 공주의 추천으로 각기 요직을 점하자, 교사를 마음껏 하여 서로 권력을 다투고, 개경에 각기 호화로운 저택을 갖고 있었다. 특히 장순용의 저택은 아름다운 돌과 기와로 외곽 담을 쌓고 화초를 본 딴 문양으로 하여 보기에도 사치를 극한 것으로서, 누가 먼저 말했는지 그 바깥담이 장가장(張家墻)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승전국 원을 등에 업고 고려에 들어온 ‘게린꼬우’(怯怜口, 몽골어로 개인 호위무사)들의 전횡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그 중 장순용의 ‘장가장’은 마치 진시황의 아방궁처럼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비참한 삶 속에 두드러진 호화 생활로 지탄받았음을 알 수 있다.

족보에 의하면, 나는 이 고려 귀화인 장순용의 영공파 26세 손으로 엄격히 말하면 회회계의 피를 이어받았다. 회회는 중국식 표현으로 위구르를 포함한 중국 서북쪽 회족을 일컫고 있으나 문중 내부는 아랍에서 몽골에 귀화한 사람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때 세계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야마니가 한국에 와 자신과 같은 자손들이 한국에 살고 있음을 언급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나는 이처럼 일찍 조상의 비밀을 알고부터는 학교 수업시간에 강조한 ‘우리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배달민족’이라는 순혈주의에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고,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고려가요 <만전춘>에 등장하는 회회아비의 정체와, 신라시대 향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고비심안(高鼻深眼), 즉 코가 우뚝하고 눈이 쑥 들어간 외래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학설에 동의하기도 했다. 하긴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유리공예품은 아랍에서 들어왔고, 고려시대 서해 벽란도는 아라비아를 비롯해 외국 상인들이 붐비는 무역항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반도는 일찍부터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었고 문물교류가 활발한 만큼 잦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한 핏줄’을 유지한다는 게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다민족, 다문화의 열린 공간이 일찍부터 이뤄진 셈이다.

다시 이노우에의 소설 속 이야기로 돌아간다. 징기스칸으로부터 일본 정복의 유업을 물러받은 쿠빌라이는 끝까지 저항하는 삼별초 소탕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착취와 무리한 요구를 한다. 이에 옹색해진 고려 조정은 원나라 황제가 머무는 감숙성 행궁까지 넉 달 넘게 걸려 찾아가 하소연하거나 상소문을 연이어 보낸다. “영내 백성은 모두가 초근목피로 끼니를 잇고 있으며, 징수하려 해도 선뜻 내놓을 만한 여유 있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허덕이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생각을 고쳐 주신다면 숨을 좀 돌릴 것 같습니다.” 상소문을 작성한 김방경(후에 재상이 됨)은 “둔전군에 공급할 군량만으로도 비명을 올리고 있는 이 마당에, (또 다른) 군량 공급을 해야 된다면, 고려 백성은 쌀 한 톨도 입에 넣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탄식한다.

이는 비록 나의 조상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30여 년 전 어렵사리 구해 읽은 소설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분하고 창피한 생각에 몇 차례나 읽기를 멈추고 한숨을 쉬다가 다시 책을 펴곤 했다. 또 하나 창피한 것은 우리의 피 맺힌 박해의 역사를 우리나라 작가가 아니라 외국, 그것도 일본 작가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점이다. 책은 몽골 장수 차라타이(車羅大)가 한반도에 처음 모습을 보인 1254년 한 해의 일을 <고려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해, 몽고병이 사로잡은 남녀는 무려 20만 6,800여 명, 살육된 자는 들어서 헤아릴 수 없었고, 그들이 지나가는 고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몽고병의 침략이 있은 이래 아직 이때처럼 심한 적은 없었다.”

그러면 이노우에는 왜 이처럼 남의 나라 이야기를 그 나라의 방대한 역사 기록을 살펴가며 소설로 재구성했을까? 그는 불교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보관된 천불동 막고굴의 비밀을 파헤친 소설 <돈황>, 징기스칸의 일대기를 그린 <푸른 이리>와 마찬가지로 소설 <풍도>를 쓰기 위해 <고려사>와 중국 <원사(元史)>를 양대 텍스트로 해서 1963년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강화도와 경남 마산, 그리고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강화도는 고려가 몽골에 저항할 때 수군이 약한 점을 이용해 임시수도(강도)로 삼았던 곳이고, 마산은 당시 지명이 합포(合浦)로 여몽 연합군이 두 차례나 일본 정벌을 위해 출발했던 곳이며, 지금도 군사들이 주둔하며 물을 길렀던 ‘몽고 샘’이 남아 있다.

작가는 마치 기자가 취재하듯 사실(fact)을 기록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현장 답사를 한 뒤 일정한 틀(frame) 속에 이야기를 재구성(fiction)하는 ‘액자소설’(Rahmen novelle) 형식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일본이라는 나라를 천지신명이 보호했다는 ‘가미카제’(신풍, 神風) 식의 아전인수를 하지 않았다. 다만 <고려사> ‘김방경전’을 예로 들며 “합포에서 출항해간 4만 명의 장병도, 강남에서 출발한 범문호가 인솔하는 10만의 군사도 그 모두가 일본 근해에서의 전투 중 하룻밤 폭풍에 배가 뒤집혀 죽었다는 것이다”라고 기술했을 뿐이다. 객관적인 서술로 고려도 최대의 피해자임을 입증한 것이다.

자! 다시 조상 이야기로 돌아가자. 순용은 초창기에는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 면이 없지 않으나 뒤에는 고려의 사정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오히려 원나라 조정의 고급 정보를 고려에 제공해 대원정책을 원활히 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순용의 8세손 정(珽)은 무예에 뛰어나 조선 성종 때 선전관에 발탁되고, 연산군 때 한성부 판관을 역임한 뒤, 1504년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장녹수가 차지한 토지를 농민에게 나눠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명관으로 이름이 났으나, 파직됐다가 중종반정에 가담해 일등공신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 덕수 장 씨 후예들은 이후 문무 관직에 고르게 출사해 이름을 날린 이들이 많으며, 현재 남한에 약 5000 가구, 2만 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희귀한 예지만, 아랍인 조상이 귀화한 이후 7백여 년간 후손들이 고려인으로, 조선인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땅에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 소종중(小宗中)의 재실(齋室)에서 시재(時齋)가 열린 날 5대 위 할아버지까지 잔을 올리고 여러 차례 절을 하는 제사에 참석했다. 무릎이 아팠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이 들수록 부모를 비롯한 나를 있게 한 뿌리, 조상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는 탓이리라.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의령에는 덕수 장 씨 집성촌이 있고, 그 곳에 부모 산소가 있다. 산소 앞에 소박한 묘비가 있고,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기미년 1919년에 태어나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장남으로 14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할머니와 다섯 형제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해방 후 귀국했습니다. 3남 1녀를 둔 아버지는 늘 근면, 성실, 그리고 사람답게 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1979년 환갑에 돌아가심에 우리들이 자식을 키울수록 새삼 그리운 정이 더해 오래 홀로 계신 어머니와 나란히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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