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봉사로 얻은 인생진로, '가난한 사람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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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봉사로 얻은 인생진로, '가난한 사람 돕기'
  • 취재기자 오재정
  • 승인 2014.12.2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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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민속 공예품 행상하는 청년 사업가 권선재 씨 이야기
▲ 권선재 씨(사진: 취재기자 오재정)

울산시 남구 무거동에 위치한 울산대 앞. 트럭으로 물건을 싣고 다니며 장사하는 일명 이동상인 한 사람이 오가는 손님들을 향해 외친다. “구경해보시고 가세요! 인도네시아 수제 액세서리입니다!” 트럭을 개조한 판매대에는 화려한 문양을 한 ‘바틱’ 팔찌가 가득 진열되어 있다. 바틱이란 뜨거운 밀랍이나 촛농을 이용해 염색하는 인도네시아 고유의 염색기법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의 바틱 염색기법은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바틱 팔찌는 바틱으로 물들인 천을 둥근 PVC 테에다 직접 오려 붙여 만든 팔찌로 그 천의 문양은 천차만별이고 화려하다. 팔찌의 테두리인 PVC는 탄성이 강해 팔찌의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착용이 가능하게 한다.

트럭 이동상인의 주인공은 권선재(27) 씨다. 권 씨는 원래 울산대 생명공학과 2007학번 학생이었다. 입학하고 입대한 뒤 군대에서 전역한 후, 그는 ‘나는 누구인가? ’ ‘사람은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등과 같은 심오한 인생 고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인생의 큰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었다.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했다.

그의 집은 부유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 가난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는 “가난을 겪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그들의 아픔을 모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자신이 묵고 생활할 비용과 그 나라에 줄 후원금까지 모두 스스로 부담하는 해외봉사를 골랐다. 그리고 그는 학교를 휴학하고 2011년 동티모르로 떠났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있는 티모르 섬 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이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인들과 똑같이 먹고 자야했지만 항상 즐거웠다. 그는 길가의 풀처럼 생긴 풀에 밥을 넣고 끓여 먹는 죽에 쌈발(ssambal, 인도네시아의 소스로 한국의 고추장과 유사함)을 곁들여 먹었다.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해외봉사 기간 막바지 쯤, 그에게는 얼마쯤의 달러가 남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환전해서 쓸 수도 있었지만 현지인들을 위해 이곳에서 돈을 쓰는 것이 그들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권 씨는 동티모르 수도인 달리의 한 시장에 들러 남은 돈을 모조리 탈탈 털어서 수제 팔찌와 같은 장신구를 샀다. 아니, 남은 돈으로 가난한 상인들의 물건을 사주었다. 그렇게 구입한 수제 팔찌와 장신구를 한국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폭발적이었다. 팔면 사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팔찌도 무역 아이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팀을 꾸려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그것이 팔찌 트럭의 시작이었다.

▲ 권선재 씨는 트럭으로 울산 곳곳을 다니면서 인니 산 팔찌와 장신구를 판매한다(사진: 취재기자 오재정).

처음엔 혼자 시작했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2014년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켰다.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경제적 이익을 상부상조하기 위해 모인 단체다.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주로 대학 선후배들로 구성됐다.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지붕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법인등록을 했을 만큼 커졌다. 조합원은 모두 9인으로, 이중 3인은 ‘올인 멤버’라 해서 장사에 전념하고 나머지 6인은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다른 직업이 있으면서 협동조합을 돕는 사람들이다. 권 씨는 “이익보다는 서로의 관계에 더 초점을 두고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협동조합에 비해 조합원 사이가 친밀하다”고 말한다.

권 씨는 협동조합에 전념하면서 아직도 대학은 휴학 중이고 당분간은 팔찌 무역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언제든지 직업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전을 찾아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내가 누구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게 진짜 공부라는 것을 젊은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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