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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산책로 4km 걸으며 충절의 역사 되새기다

기사승인 2014.12.15  09: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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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도 길 내줄 수 없다" 임란 때 결사 항전의 표상 송 부사의 숨결 곳곳

   
▲ 동래읍성 역사축제의 일환인 뮤지컬 <외로운 성>의 한 장면(사진 출처: 동래구청 홈페이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다대포와 부산진을 파죽지세로 함락한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2만여 병력을 이끌고 동래성을 포위했다. 성을 공략하기에 앞서, 고니시는 동래성 남문 앞에 목패(木牌)를 세웠다. 여기엔 “戰則戰矣 不戰則假我道(전즉적의 부전즉가아도)”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이는 “싸울테면 싸운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길을 내달라”는 뜻이었다. 이에 3000여 병력으로 동래성을 지키던 동래부사 송상현은 “戰死易假道難(전사이 가도난)”이란 글이 적힌 목패를 적진을 향해 내던졌다. 이는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곧이어 동래성을 두고 조선군과 왜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송상현 부사의 군대는 아녀자들까지 합세해 기왓장을 던지며 왜군에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동래성은 이틀 만에 함락됐고, 동래성 안은 왜군의 무차별 살육으로 피바다가 됐다.

처절했던 전투 흔적을 남기며 성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송 부사와 동래성 백성들의 혼이 남아있는 동래읍성은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가볍게 트래킹할 수 있는 산책로로 바뀌었다.

동래읍성은 잦은 왜구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고려 말 138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 당시 성은 길이 900m(3,090척)의 작은 규모였지만, 동래성 전투 이후 1731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길이 약 3.8km의 규모로 확대했다. 동래읍성은 동서남북문과 인생문 및 암문 등 6개의 출입문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 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서문에서 남문까지 이르는 성벽과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이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다. 그때 마안산 주변의 성곽만 겨우 성의 모습을 이어갔다. 1979년 부산 동래구가 ‘동래읍성지 정비복원사업’을 통해 북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와 성벽을 복원하고 보수하면서, 동래읍성은 비로소 옛날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 현재의 동래읍성은 두 개의 산책로가 있다. 지도에서 빨간 색으로 표시된 곳은 1코스이고, 파란 색으로 표시된 곳은 2코스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동래읍성 탐방코스는 ‘역사의 산책로,’ ‘충렬의 산책로’ 두 가지다. 제1코스인 역사의 산책로는 길이 2,470m로 동래부 동헌, 송공단, 장관청, 동래향교, 서장대, 북문, 동래읍성 역사관, 복천박물관, 복천고분군, 박차정 의사 생가 순으로 이어지며, 성인 보통 걸음으로 약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제2코스인 충렬의 산책로는 길이 1,960m로 충렬사, 동장대, 인생문, 부산 3·1독립운동 기념탑, 북장대, 북문, 동래읍성 역사관, 장영실 과학 동산으로 이어지며, 약 2시간이 걸린다.

동래읍성을 산책하면, 몇몇 안내판에 각종 설화들이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이중에는 ‘백세의 계단’, ‘의적 정봉단서와 마누라’, ‘동래부사 한배하 젓가락’ 등이 있다. 옛부터 전해 오는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김영환(61, 부산 동래구 복천동) 씨는 “매일 아침마다 등산 하면서 이것저것 읽고 또 읽는다. 매번 재밌게 읽고 간다”고 말했다.

   
▲ 동래읍성 인생문(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특히, 동래읍성 인생문(人生門)에는 이름에 대한 유래가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인생문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이 문을 통해 피난 간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져서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동래읍성 북문 밑에 있는 표지판(사진:취재기자 류효훈).

동래읍성 중에서 특히 북문 쪽에는 볼거리가 많다. 동래읍성의 모형, 동영상, 각종 유물을 전시한 동래읍성 역사관부터,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은 읍성광장,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장영실이 만든 옛 천문의기(天文義器: 해시계, 물시계 등 천체관측 기기를 일컫는 말)가 있는 장영실 과학동산에 이르기까지, 볼거리들이 풍성하다.

동래읍성 북문 앞에는 ‘SMART 동래 관광 도우미’도 설치돼있어 동래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기도 한다. 동래에 처음 온 김희영(28, 부산시 해운대구 반송 3동) 씨는 “어디부터 가야할지 난감했다. 우연히 동래읍성을 둘러보는 중 SMART 동래 관광 도우미를 발견했는데 이 덕분에 동래를 여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동래읍성에 야간 경관 조명이 비추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동래읍성은 낮이 아니라 밤에 산책하면 더욱더 빛을 발한다. 바로 북문에서 북장대에 이르기까지 620m 길이에 경관조명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2012년에 처음 설치된 경관 조명은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문화재와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다. 연인과 함께 간간히 산책하러 올라온다는 안준하(21, 부산 동래구 명륜동) 씨는 “집 근처에 이처럼 인공물과 문화재가 어울려있는 황홀한 곳은 없다.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며 데이트 코스로는 더 없이 훌륭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400년 전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피로 물들여졌던 동래읍성은 이제 아픔의 역사를 씻고, 시민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주면서, 안식처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취재기자 류효훈 reporter@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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