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스스로 대비한다"...‘프레퍼족(준비족)’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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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스스로 대비한다"...‘프레퍼족(준비족)’ 등장
  • 취재기자 이광욱
  • 승인 2014.12.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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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과민반응이라는 시선도

제주도 제주시에 사는 최모(34) 씨는 최근 세월호 참사, 고양 버스터미널 화재 등 잇따른 대형 사고를 보면서 불안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한 포털 사이트의 ‘프레퍼족’ 카페에 가입했다. 그는 “지금까지 사건이나 사고를 남의 일로 여겼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며 나에게도 닥칠 수 있겠다는 위기감에 프레퍼족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경주 체육관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판교 테크노벨리 사고, 에볼라 바이러스 등 대형 참사가 계속 되면서 재난과 사고에 대비해 스스로 생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프레퍼(prepper)족’ 또는 ‘준비족’이라 불린다. 준비를 뜻하는 영어 preparation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그들은 재난, 지진, 태풍 등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테러나 대형사고, 질병 확산 등 각종 재난이나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전후로 인도네시아 쓰나미, 일본과 중국의 대지진 발생 등으로 인해서 일반인들이 프레퍼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상황에서 국가나 관련 기관의 구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을 모색할 필요가 생기면서 프레퍼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났다. 또한, 판교 테크노벨리 사고처럼 안전 불감증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사람들의 프레퍼족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났다.

▲ 프레퍼 족의 인터넷 카페 중 하나인 ‘생존21’이 가입 회원 1만 명을 돌파했다(사진출처: 다음 카페)

사고 예방과 위기 시 생존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 카페 ‘생존 21’은 가입자가 1만여 명을 넘어섰고, 가입자들은 일반 시민부터 경찰, 소방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폭설에서 고립된 사건이나 정전으로 가족들이 공포에 떨었던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발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또한 휴대용 방독면과 같은 재난 대비 용품들이 개발되면 직접 사용해보고 성능을 검증한 뒤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한다.

카페 회원인 김모(41, 대구시 중구 동인동) 씨는 “사고는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다. 평소에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EDC(EveryDay Carry: 늘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는 휴대용 생존용품을 뜻함) 같은 것들이 있다면,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 약간의 준비와 마음가짐이 정말 내 삶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 21의 운영자이자 <재난시대 생존법-도심형 재난에서 내 가족 지켜내기>의 저자인 우승엽(41) 씨는 “프레퍼족은 소수의 별난 사람이 아니라 재난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미리 준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미래 위험을 준비한다는 관점에서, 우리 모두가 프레퍼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프레퍼족의 필수품인 EDC 구성품(사진출처: 우승엽 씨 제공)

프레퍼족은 항상 휴대용 생존팩인 EDC를 자동차에 넣고 다니거나 외출 시는 들고 다니는 가방에 넣고 다닌다. EDC 구성품들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며, 가방의 부피는 구성품 내용이나 수량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또한 프레퍼족들은 집에 건조 비상식량, 지도, 땔감, 물 등을 비치해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레퍼족은 영화관에 갔을 때는 비상구 위치와 휴대용 소화기 위치를 알아두는 것이 기본이다. 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숙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비상시에 먹을 물이 없으면, 빗물이나 시냇물 등 아무 물을 떠서 1ℓ에 락스 네 방울을 떨어뜨리거나 햇빛에 여섯 시간 정도 노출시키면 식용이 가능한 물이 된다는 정보를 프레퍼족은 상식처럼 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프레퍼족의 활동을 보면서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한다. 재난이라는 것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부는 있지도 않을 일에 지나치게 과민반응하는 사람들로 프레퍼족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우승엽 씨는 “프레퍼들은 언론에 노출되는 걸 굉장히 꺼려한다. 한 때 언론에서 한창 프레퍼들을 다루던 때가 있었는데, 언론이 프레퍼를 집에 비상용 통조림이나 비상식량을 쌓아 놓는 괴짜들인 것처럼 희화화했다”며 “그 여파로 카페 회원 중에는 가족들조차 모르게 활동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사는 한 프레퍼 족은 기본적인 EDC를 차량 등에 늘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EDC의 구성품이 그의 회사일과 연관된 물품들이어서 주위에서 특별히 프레퍼족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별스럽게 재난 대비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종의 취미와 비슷한 수준에서 재난대비를 하고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레퍼 족인 박호성(55,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씨는 주변에서 프레퍼 족이라고 하든 말든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박 씨는 "나는 약간 선구자적인 기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멋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도 재난 대비의 필요성을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승엽 씨는 “사는 동안에 어떤 재난이나 사고도 일어날 수 있고,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두가 시스템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는 사회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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