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제발 좀 ‘천천히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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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 제발 좀 ‘천천히 서둘러라’
  • 칼럼리스트 최원열
  • 승인 2018.07.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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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전력(한전) 사장이 페이스북에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는 오묘한(?) 글을 올렸다. 수입 콩 값이 치솟아도 두부 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 값이 콩 값보다 싸지게 됐다는 얘기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한전 사장이 두부장사 하는 건 아닐 테고. 옳거니. 석유를 비롯한 발전연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데 따른 고충을 빗대 전기 값 인상을 슬그머니 끄집어낸 것이렸다? 허, 거참. 한전 사장의 배포 한 번 크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은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하기야 부글부글 끓는 한전 사장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줄곧 흑자를 내던 한전이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해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무려 2500여 억 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냈고, 향후 전망도 암흑천지로 변한 상황이니 전기 값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다. 어쩔 건가. ‘수입 콩 값’이 ‘두부 값’을 넘어서는 형국이 됐다. 더구나 전력 성수기인 한여름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한전으로서는 사면초가에 내몰린 셈이다. 전기 값도 문제지만, 놀고 있는(?) 원전이 많아 전력 공급 역시 초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정부가 큰일을 저질렀다. 멀쩡한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해 지난 15일 조기폐쇄 결정을 내린 거다. 겉으로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표결한 결과지만, 탈원전을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 설계수명이 다할 운명이었지만, 노후 설비를 교체해 2022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났다. 그런데 이 결정이 3년 만에 뒤집어졌다. 아무리 문 대통령 공약이라고 하나 너무 성급했다. 이 결정으로 한수원은 수명 연장에 쓴 6000억 원을 허공에 날리게 됐다. 그 뿐인가. 건설이 백지화된 원전 4기와 땅 매입비를 합하면 족히 7000억 원은 된다. 여기에 월성 1호기 폐쇄에 따른 전력판매 손실금까지 따지면 정부가 보전해줘야 할 돈이 1조 원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짙다. 이 돈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먹고 살기도 힘든 지경에 생돈을 퍼붓다니. 국민이 봉인가!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이면에 숨은 정부의 꼼수들을 보자. 우선 정부가 내세운 ‘경제성 없음’이라는 평가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 정부 때 충분한 경제성이 있다며 엄청난 돈을 들여 보수한 ‘싱싱한’ 원전을 이제 와서 안면을 싹 바꾸다니. 여러분은 이해가 되시는지. 한수원은 최근 3년간 월성1호기 평균 가동률이 57%에 그쳐 폐쇄가 손실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70%를 넘던 가동률이 왜 갑자기 뚝 떨어졌을까. 그건 한수원이 ‘예방 점검’을 이유로 원전을 절반가량 운전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 뿐만 아니다. 국내 원전 24기 중 올들어 가동중단된 원전은 무려 11기까지 늘었다가 현재 9기가 ‘예방 점검’을 이유로 멈춰서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의심이 갈 만하지 않나.

꼼수는 더 있다. ‘벼락치기’ 의결이 이뤄진 건 6월 지방선거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던 때였다. 선거 참패로 힘이 쏙 빠진 야당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비켜가려는 의도였다면 대성공인 셈이다.

꼼수는 통하지 않음을 모르는가. ‘몰락의 법칙’이란 게 있다. 성공에의 도취가 몰락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특정 분야에서 대성공을 거둔 기업이 있다 치자.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르시즘(자아 도취)’에 빠져서, 만사형통할 듯이 보인다. 원칙을 무시하고 무작정 몸집 불리기에 열중한다. 그게 몰락의 시작이다. 직언을 해봤자 손해만 보는 직원들은 입을 닫고 ‘복지부동’ 모드에 들어간다. 기업은 시름시름 앓다 덜컥 중병에 걸린다. 이때가 되어서야 경영진은 위기를 감지하고 꼼수를 들이대며 약발을 기대하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끝내 문을 닫고야 만다. 꼼수는 상대의 실수나 허점을 노리는 치졸한 짓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탈원전’ 꼼수가 불러온 ‘오멘(불길한 징조)’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태양광 산사태’ 말이다. 태풍 ‘쁘라삐룬’이 몰고 온 폭우로 청도 58번 국도 산비탈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다. 축구장 2배 크기의 태양광 시설이 깎아낸 비탈면 토사 200톤과 함께 도로를 덮쳤다. 탈원전한다며 산림을 무차별 훼손한 데 대한 자연의 무시무시한 보복이 시작된 거다. 이건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 무려 5000곳에 이르는 산림태양광 시설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저수지와 호수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문재인 정부가 13년 내에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지난해 6%대에서 20%까지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에 따라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가꿔온 소중한 산림이 벌거벗겨지고 있다.

‘탈원전’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필자는 6년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근무할 당시 수차례에 걸쳐 안전보다 경제성만을 추구한 원전과 핵발전 정책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었다. 그때 썼던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핵발전은 위험천만한 작업이며, 까딱 잘못하면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핵연료 역시 더럽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물질이다…고효율은 더더욱 아니다. 핵연료의 에너지 활용률은 30% 수준에 불과해서 나머지는 전부 바다를 데우는 데 쓰인다. 그건 해양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결국 바다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일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무조건 내달렸다간 몰락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에서조차 EU(유럽연합) 통합전력망과 연계시켜 유사시 전력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계획이 있기나 한가. 전방위적으로 꼼꼼히 살펴서 에너지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 대안도 없이 탈원전에만 매달리다 에너지 상황이 급변하면 어떻게 대처할 건가. 제발 좀 ‘천천히 서둘러라(Haste slo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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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2018-07-08 22:20:44
이란과 미국이 싸우는 통에 유가가 120달러를 예상한다고 신문에 나온다.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은 이런 비상시를대비해서 발전연료 다변화가 필수다. 그중에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없는 원전은 최고의 선택이다. 영국같은 선진국도 지금 신규원전을 한국에 요청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고 경제감각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자칭환경론자들과 일부 탈핵 국회의원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면
태양광 산사태에 전기요금 폭등 블랙아웃 경제위기로 돌아올꺼다. 자신들의 처한 현실을 똑바로 알고 정신들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