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포비아' 앓는 외식업주들…"나이 속이는 학생들 무서워 장사 못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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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포비아' 앓는 외식업주들…"나이 속이는 학생들 무서워 장사 못할 지경"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8.06.14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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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신분증으로 술 마셔도 처벌은 업주 몫…정치권 관련 법안 마련 박차 / 정인혜 기자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1) 씨는 최근 가게 문을 닫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매출 하락, 치솟는 월세, 진상 손님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지만, 김 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이다. 정확하게는 음주를 즐기는 비행 청소년들. 신분증을 위조해 술을 주문하는 청소년들에게 호되게 당한 탓이다.

아르바이트생 2명을 둔 김 씨의 가게는 신분증 검사를 철저히 한다. 아무리 성숙해 보여도 신분증이 없으면 주류를 일체 내주지 않고,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를 외워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판별법으로도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여학생은 성인 언니의 신분증, 남학생은 성인 형의 신분증을 들고 오면 솎아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인 셈이다. 김 씨의 가게는 현재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은 상태다.

김 씨는 “머리 염색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 두 명이 자기 얼굴과 비슷한 신분증까지 들고 와서 성인이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내냐”며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하는데 장사도 못 하고 정말 화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조 신분증을 이용해 나이를 속이고 술을 주문하는 미성년자들 탓에 피해를 겪는 업주들이 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위조 신분증으로 술을 마시는 일부 청소년들 탓에 업주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이 같은 경우 법적 책임은 오롯이 업주의 몫이다. 청소년에게 속은 업주는 형사처분과 함께 영업정지 등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지만, 속인 청소년은 훈계를 듣는 정도에서 그친다. 업주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가 높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업주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방자치단체는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적발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적발시 허가 취소나 영업소 폐쇄 처분을 내린다.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과징금은 1년간의 매출액 등에 따라 산정된다.

업주가 신분증을 확인했다는 CCTV 증거가 있으면 사정이 참작되기도 한다. 이 같은 경우에는 행정처분 강도가 10분의 9까지 감경될 수 있다. 처음으로 적발된 가게가 증거를 제시해 감경된다면 2개월(60일)의 영업정지 처분이 6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완전히 누명을 벗고 싶은 경우에는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 비용 등의 문제로 대부분의 업주들은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혐의가 2차 적발돼 가게 문을 닫았다는 심모(30) 씨는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사는데 어떻게 소송까지 준비하겠냐”며 “한 100일 문 닫으라는 소리는 그냥 장사 접으라는 이야기랑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반면 미성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신분증을 위·변조하는 것은 공문서위조죄에 해당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해 당사자인 업주가 아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온 ‘위조 신분증, 가게의 잘못입니까?’라는 글에는 1288명의 네티즌이 ‘추천’으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 네티즌은 “누가 봐도 서른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술 다 먹고 나갈 때 계산하라고 하니 미성년자라고 협박을 하더라”며 “민증 검사, 지문인식하는 것까지 CCTV에 다 찍혀있는데도 법은 내 잘못이라고 하더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위조지폐로 돈 내면 그 지폐 받은 곳이 잘못한 거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가만히 놔두고 피해자가 처벌받는 게 말이 되나. 무슨 이런 법이 있는지 참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정치권에서도 해결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스타트는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끊었다. 홍 의원은 지난 12일 이 같은 경우 사업 준수 사항을 이행한 업주에게 행정처분을 면제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및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 준수 사항은 ▲신분증 확인 ▲청소년과 동반한 성인에게 청소년 음주행위 금지 고지 ▲청소년 대상 주류 제공 금지 문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를 이행한 업주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면제하자는 게 이번 개정안의 내용이다.

홍 의원은 “신분증을 위·변조한 청소년을 성인인 줄 알고 주류를 제공했지만, 경찰 조사에서 미성년자로 밝혀져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선량한 자영업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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