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범한 아버지들, 노래로 스트레스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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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한 아버지들, 노래로 스트레스 날린다!"
  • 취재기자 남진우
  • 승인 2014.10.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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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행복의 하모니' 만드는 '부산 브라보 합창단' 이야기

부산시 진구 초읍동 세연빌딩 5층 한 귀퉁이에 30평 남짓한 좁은 방이 있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방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피아노와 기타, 드럼 등 악기들이 놓여있고, 간단한 방음장치까지 갖춰, 얼핏 봐도 음악 연습실 분위기가 풍긴다. 이곳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7시가 되면 묵직한 중년 남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이곳은 그냥 평범한 중년 직장인들로 구성된 부산 브라보 합창단의 연습장이다.  

지난 10월초 어느 월요일. 열 명만 들어서도 비좁다고 느낄 이 공간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들 20여 명이 삼삼오오 들어섰다. 그들은 준비된 의자를 차곡차곡 정렬하며 연습 대형을 갖추고 앉는다. 7시가 되었는데도 몇몇 자리는 비어있다. 연습이 시작된 지 15분 정도 지나자, 지각생들이 씨익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조용히 들어와 자리에 착석한다.

이들이 연습하는 노래는 가곡이나 민요, 때로는 흘러간 가요들이다. 성악을 전공한 전문 합창단의 주 레파토리인 클래식이나 오페라 가곡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냥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유행가다.

합창 연습 도중, 피아노 반주에서 ‘삑사리’ 소리가 들린다. 합창단 노래도 박자와  음정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동료들의 실수에 화를 내긴커녕 다들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그들은 무엇인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 그러나 항상 환한 웃음을 띠며, 그 누구보다 더 즐겁게, 더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회사원, 의사, 건축가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연령층도 다양한 아마추어들이다. 그냥 음악이 좋아, 노래를 부르고 싶어 모인 평범한 아버지들인 것이다.  

“가족들이 그냥 재미없고, 문화생활도 모르고, 술 먹고, 혼자 낚시하고, 혼자 운동하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멋없는 아빠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버님들, 술도 마실 만큼 마셔보고, 이젠 뭔가 건강도 옛날 같지 않죠? 시원하게 목청껏 노래 불러 봅시다!“

브라보 합창단이 공식 카페를 통해 단원 모집공고를 할 때 내세우는 문구다. 브라보 합창단은 삶에 찌든 아버지 모습에서 벗어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멋있는 아버지가 되자’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활동하고 있다. 단장 김정도(59) 씨는 ”모두가 행복하려면 가정이 행복해야 되고, 그 가정이 행복하려면, 우선 아버지들이 행복해야 됩니다. 이곳에 모여 노래하는 것이 아버지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큰 행복”이라고 합창단을 자랑했다.

브라보 합창단은 2013년 7월 1일 창단됐다. 창단 당시 인원은 13명으로 합창하기에는 실력이나 재정적으로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운영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직장을 가진 사회인들이다 보니 운영 자금은 단원들이 직접 조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독특한 합창단이 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전해지고 소문나기 시작하여, 현재는 단원이 26명이다. 입소문에 힘입어, 9월에는 한 지역 방송사의 저녁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고, 작년 12월 12일에는 첫 정기연주회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그리고 합창단이 창단된 지 1년 3개월 돼가는 요즘엔 이전에 비해 공연 횟수도 크게 늘었다.

브라보 합창단 단원들 대부분이 직장생활하는 사회인들이고 또 가족이 있는 아버지들이기 때문에, 주간에 연습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에 모여 9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연습한다. 그러나 그 연습시간 조차 짧기 때문에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혹은 이동하는 차안에서 각자 목청껏 노래 부르며 연습하기도 한다.

브라보 합창단의 합창곡들은 정통 클래식 음악보다는 가벼운 가곡이나 가요가 대중을 이룬다. 클래식 음악을 부른다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일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친숙한 노래를 즐겁게 부르는 것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단원들이 모두 음악 비전문인들이라면 합창단 운영과 공연 준비에 어렵지 않을까? 이런 우려 때문에, 브라보 합창단은 부산을 대표하고, 이탈리아에서 오랜 시간 수학했으며, 현재 부산대와 가톨릭 합창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이성훈(45) 씨를 초빙해서 매주 지휘와 발성 연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연 1회씩 정기 연주회를 연다. 정기연주회 때, 이들은 성악가들이 입는 멋진 연미복을 입고,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연습한 곡을 화음에 맞춰 노래하면서 매우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브라보 합창단은 정기공연 이외에도 소외된 곳, 혹은 노래로 봉사할 곳을 찾아 무료로 자선음악회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전달하고 있다.

▲ 10월 10일 정기연주회에서 무대에서 브라보 합창단이 공연하고 있다(사진: 브라보 합창단 제공.)

합창 연습이 길어지고 다소 합창단 분위기가 지루해질 때였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외침과 동시에 옆문에서 중국집 배달부 복장을 입은 한 단원이 등장했다. 동시에 <중화반점>이란 음악이 흘러나오며 단원들이 모두 일어나 노래 분위기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단원들은 팔을 격하게 움직이며 엉덩이를 흔드는 등 웃음을 자아나게 하는 코믹 댄스를 보여주며 현장의 지루함을 날려버렸다. 아버지뻘 되는 분들의 그런 공연은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들은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브라보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열정적인 모습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합창곡이 고급스러운 클래식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추억이 담겨 있고, 행복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 어떤 소리보다도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이들은 지난 23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7회 부산합창제에서 그동안 쌓았던 기량을 뽐내 관객들로부터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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