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경각심 높아졌다지만 ‘훈육용 체벌’엔 여전히 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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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경각심 높아졌다지만 ‘훈육용 체벌’엔 여전히 관대
  • 취재기자 조윤화
  • 승인 2018.06.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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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10명 중 7명 “자녀가 잘못하면 매 들 수도 있다”... 전문가 “체벌을 ‘사랑의 매’로 정당화하기 어려워” / 조윤화 기자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높아져 가는 반면 가정 내 체벌에 대해선 여전히 지지 여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지난해 말 전말이 드러난 ‘고준희 양 사건’은 친부와 내연녀가 고준희(5) 양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사건이다. ‘칠곡 계모 살인사건’은 2013년 계모 임모(40) 씨가 의붓딸에게 배설물이 묻은 휴지를 먹게 하는 등 상습적 학대·구타로 숨지게 한 사건으로 올해 1월 임 씨가 가석방을 신청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두 사건 모두 언론을 통해 전말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두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 모두 경찰 조사에서 “훈육 차원에서 아이를 때린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훈육 차원의 체벌에 대해선 여전히 입장이 갈린다. “매를 들어서라도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다”며 “모든 체벌은 학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 박모(19, 부산시 사하구) 씨는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가 자녀를 때리면 그건 아동학대”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박 씨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본인이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땐 엄마에게 말대꾸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빠에게 집에 있는 30cm자 5개가 모두 부러질 때까지 종아리를 맞아봤다”며 “그렇게 맞고 난 다음 날 종아리 전체가 시커멓게 멍이 들어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고 절뚝거리면서 학교를 가야 했다”고 전했다.

대학교 3학년생 김모(22, 부산시 금정구) 씨 또한 체벌이라면 치를 떤다. 김 씨는 초등학교 시절 혼이 날 때면 식탁 의자를 한 시간 동안 들고 있어야 했다. 김 씨는 “팔이 너무 아파 의자를 들고 있던 팔을 내리면, 앞에서 회초리를 들고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로부터 종아리를 5대 맞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한 시간 동안 의자를 들고 서 있어야 했다”며 “초등학교 1학년이 3시간 동안 식탁 의자를 들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는 “어릴 적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뜬금없이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국회의원(보건복지위·송파구병)에게 제출한 “아동학대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3만 4221명으로 전년도 2만 9674건에 비해 15.3% 증가했다. 이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민감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동학대에 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체벌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관대한 입장이다. 현재 교육현장에서의 체벌은 일절 금지돼 있지만, 가정 내 훈육 목적의 체벌에 대해에선 지지 여론이 높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4월 공개한 '행복한 육아 문화 정착을 위한 육아 정책 여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10명 중 7명은 ‘자녀가 잘못할 때는 매를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자녀가 잘못할 때는 매를 들 수도 있다'는 문항에 ’대체로 동의한다(60.4%)‘와 ’전적으로 동의한다(12.9%)‘고 응답한 비율의 합이 73.3%로 나타난 것이다. 체벌에 ‘전체적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4.3%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훈육을 위한 체벌이 아동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훈육을 위한 체벌과 학대의 기준이 애초에 모호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홍강의 교수는 ‘한국 아동학대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가정 내에서 부모가 아동을 구타할 때 이는 항상 ‘사랑의 매’, ‘교육의 매’,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고 있어 실제로 이를 학대라고 규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아무리 교육적이고 훈육적인 의도로 매를 들었다 해도 그 정도와 빈도가 심각하고 또 그 결과가 엄청난 신체적 손상을 입혔다면 구타의 의도와 관계없이 아동학대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의 건강칼럼에서 “체벌은 대개 부모가 아이들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 아이를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시작된다”며 “체벌은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려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나 가능성이 있다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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