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비리에 ‘불체포 특권’, 국회의원은 ‘법 위의 깡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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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비리에 ‘불체포 특권’, 국회의원은 ‘법 위의 깡패’인가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8.05.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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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드루킹 특검’ 도입을 둘러싸고 여야가 힘겨룸을 벌이면서 개점휴업을 면치 못했던 국회가 겨우 재개돼 ‘특검 도입’과 ‘추경 예산 통과’를 맞바꾸긴 했지만, 여야 의원들은 그 틈에 혁혁한(?) 전과도 세웠다. 각각 사학비리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강원랜드’ 취업청탁 의혹을 받는 같은 당 염동열 의원에 대한 검찰의 체포동의안이 2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

무기명 투표로 실시된 홍문종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275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29명, 반대 141명, 기권 2명, 무효 3명으로 부결됐다. 염동렬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찬성 98명, 반대 172명, 기권 2명, 무효 4명으로 부결됐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은 116명이다. 한국당은 108명, 바른미래당은 27명, 민주평화당은 11명, 정의당 6명, 무소속 5명 등으로 알려졌다. 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찬성 표를 던진 의원은 98명에 불과했는데, 정의당과 민중당 의원이 전원 찬성 표를 행사했다고 가정하면, 더 민주당에서만도 20표 이상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추계된다.

동료 의원 챙기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던 셈이니 ‘동업자 감싸기’이니, ‘특권 카르텔’이니 하는 비판이 쏟아질 밖에. 여야로 패를 지어 낮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밤에는 “형님”, “아우님” 해가며 술판을 벌인다는 그 끈끈한(?) 의리가 투표 결과로 확인된 셈이다. 글쎄,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언제 날아들지 모르니 ‘품앗이’를 들어둔달까, 보험용 반대표를 던진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체포동의안’을 무기 삼아 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원들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난과 함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의 거센 질타도 잇따르고 있다.

헌법상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신분상 특권은 크게 2개다. 하나는 ‘면책특권’이고 또 하나가 ‘불체포 특권’이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특권을 말한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의회의 독립과 자율을 보장하고 정부의 부당한 간섭과 탄압에 대한 방어책이자 국민의 대표자로서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불체포특권’은 '헌법 제44조 ①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②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는 조항에 의거한 것. 이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받지 않고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받도록 보장한 신분상의 특권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면책특권이나 불체포 특권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215년 영국에선 왕의 전제권력을 견제하는 ‘대헌장’이 승인됐지만, 이후에도 왕들은 의회를 무시하는 행위를 계속했다. 걸핏하면 의회를 해산하거나 왕권에 저항하는 의원들을 옥에 가두었던 것. 의원의 신분 보장을 위한 첫 투쟁이 1397년에 있었던 토머스 핵시 사건이다. 하원의원이었던 핵시가 국왕 리처드 2세의 방탕한 생활과 재정 낭비를 비난하는 청원안을 의회에 제출하자 격분한 왕은 그를 반역죄로 몰아 재판에 부친 뒤 의원직과 재산을 박탈하고, 사형까지 선고받게 했다. 그러자 동료 의원들이 들고일어나 사형 집행을 저지했다.

1629년의 ‘존 엘리엇 사건’도 의회 권력의 확대에 기념비적인 사건. 16세기 이후 토지 귀족인 젠트리와 상공인 중심의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의회는 왕권과 정면충돌하게 된다. 엘리엇은 1626년 찰스 1세의 실정을 비판했다가 왕에 의해 런던탑에 투옥됐다. 하원이 이에 맞서 업무 거부 운동을 벌이자 찰스 1세는 마지못해 석방했다. 엘리엇은 석방된 뒤에도 왕의 과세권과 시민에 대한 인신구속을 제한하는 내용의 권리청원(1628년)을 주도했다.

의회의 각종 제동에 화가 난 찰스 1세는 1629년 의회의 휴회를 명했지만, 엘리엇 등 의회 투사들은 의장을 강제로 의장석에 앉힌 뒤 왕의 불법적인 과세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찰스 1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엘리엇 등 주동자들을 런던탑에 가뒀다. 그는 감옥에서 숨졌으나, 절대왕권에 맞선 의회의 투쟁은 청교도혁명(1642년)과 명예혁명(1688년)으로 결실을 맺었다.

1689년 영국은 마침내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채택했다. 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끝내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바로 이것. “의회 안에서 말하고 토론하고 의논한 내용으로 의회 아닌 어떤 곳에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당하지 않는다”(권리장전 제9조)란 면책특권은 새로운 의회 제도를 떠받치는 핵심 중 하나였던 것.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후 면책특권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됐다. 미국은 1771년에 채택한 연방헌법에서 “양원의 의원은 원내에서 행한 발언 또는 토의에 관하여 원외의 어떠한 장소에서도 신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문화했다. 프랑스도 1789년 혁명 때 국민의회가 선포한 칙령에서 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명시했다.

우리나라에선 1919년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법’ 때 면책특권이 명시됐으며, 1948년 제헌헌법에도 거의 그대로 실렸다. 그러나 면책특권은 70년 가까운 우리 헌정사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면책특권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이 ‘유성환 국시 발언 사건.’ 전두환 정권 때인 1986년 10월 대정부질문 때 야당인 신민당 소속이었던 유 의원은 면책되기는커녕 국회 발언으로 구속됐고 심지어는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그는 당시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금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를 전면 문제 삼았다. 검찰은 발언 30분 전에 유 의원이 기자들에게 질의서를 배포한 것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억지 이유로 유 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대법원은 6년 후인 1992년에야 이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면책특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이나 표결뿐 아니라 여기에 부수하여 행해지는 행위까지도 포함해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유 의원의 행위는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는 것.

하지만 2005년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나오는 떡값 검사의 이름을 밝힌 ‘노회찬 발언 사건’(2005년)은 오히려 면책특권의 범위를 줄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에서 폭로 발언을 하면서 보도자료와 함께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이 내용을 올렸다. 검찰은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2011년 판결에서 유죄’라고 판결해 노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다.

‘의원 불체포 특권’도 마찬가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정권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마구잡이로 잡아다 감금, 고문을 한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1972년 ‘10.2 항명 파동’이 대표적.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박정희는 여당인 공화당에 부결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권부 내 세력다툼 끝에 백남억, 길재호, 김성곤, 김진만 등 당시 ‘공화당 4인방’이 계파 의원을 동원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을 가결시켜 버렸다. 그들은 곧바로 남산으로 끌려가 온갖 고문를 받았다. 이 사건은 ‘불체포 특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국회의원을 끌어다 고문한 것은 3권분립 유린, 심각한 의회 무시가 아닐 수 없었던 것.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입법부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인 장치로서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건 사실이다. 행정부의 불법적 탄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의 자주적인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민의를 대변하라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하는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소속 당이 일부러 임시국회를 여는 이른바 ‘방탄국회’도 그 사례의 하나일 터.

특히, 국회의원들이 동료 의원들의 비리를 덮어주는 ‘조폭식 의리’를 발휘하는 합법적 범죄 도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불체포 특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졌다. 실제로 1948년 제헌 국회 이후 61건의 체포동의안 중에 가결된 사례는 13건에 불과하다. 16건이 부결됐고 나머지는 철회되거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것.

근래의 부결 사례만 해도 여러 건이다. 역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던 16대에선 총 15건 중부결이 7건, 폐기는 6건, 철회는 2건으로 가결률은 0%. 15대 국회에선 총 12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돼 부결 건수가 1건에 그쳤으나, 나머지 11건이 모두 폐기 처리됐다. 이 와중에 2012년 저축은행 금품 수수 사건에 연루된 당시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고 2014년엔 철도비리 연루 혐의를 받은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부결됐다.

이처럼 의정활동과 무관한 개인비리조차도 불체포 특권이 남용되니 국민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질 밖에. “국회의원은 법 위의 존재냐”는 비판에서부터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거다. 여야 정당도 이 같은 국민의 비난을 의식해 불체포특권의 폐지를 약속해 왔지만 번번이 공염불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자유한국당으로 말하자면 올해 2월 자체 개헌안에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와 면책 특권 제한 등을 담겠다는 당론을 내세웠지만 이번에 자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선 동료의원들의 감옥행을 저지하는 쾌거(?)를 이룬 게 아닌가.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이 일면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민주주의는 3권 분립의 원칙 아래 유지되는 것이고,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위해선 의원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허용되고 신분 역시 보장될 필요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1950~80년대 독재 시대가 아니다. 어디 요즘 국회의원들이 정권의 눈치 보느라 할 말을 못하는 시대인가. 야당 대표는 청와대를 일러 ‘주사파의 집합소’라고까지 비난하고도 멀쩡한 세상이 아닌가.

국회의원들의 직무 활동이 문제가 돼 구속되는 시대도 이미 지났다. 그들이 받은 혐의는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부당 청탁, 선거법 위반 등 개인 비리가 대부분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보다 훨씬 가벼운 범죄에도 구속되기 일쑤가 아닌가. 개인 비리와 범죄까지 ‘체포 동의안’이란 방탄막 아래 숨겨준다면 그들은 ‘법 위의 깡패’에 다름 아니다. 홍문종·염동렬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소식에 뿔난 국민들이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을 10건이나 제기했다고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독재 권력에 맞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준 특권이지 허위 비방, 개인 비리나 저지르라고 주는 면죄부가 아닌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개헌안이 논의될 때엔 이런 특권을 아예 폐지하든지, 최소한 개인 범죄는 보호 대상에서 빼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들이 제 밥그릇 빼앗기기가 싫어서 미적거린다면, 국민이 ‘촛불 집회’라도 열어 그들의 손에서 남용되는 특권을 박탈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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