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 돕는 잡지 'BIG ISSUE', 한국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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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자활 돕는 잡지 'BIG ISSUE', 한국 상륙
  • 취재기자 장윤혁
  • 승인 2014.10.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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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등 재능기부로 제작...판매 대금으로 소외계층 지원

출퇴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 신림역 3번 출구에는 언제나 밝게 웃음 짓는 아저씨가 어떤 잡지 두 권을 가슴 높이로 들고 서있다. 아저씨의 자세는 행인들에게 그 잡지를 사달라는 제스처인 듯 보인다. 그 아저씨는 환한 인상과 빨간 조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멈추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때 한 행인이 호기심에 가득 차서 아저씨 앞에 서서 그 잡지가 무엇인지 살핀다. 그때서야 아저씨는 “제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잡지는 집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을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잡지”라고 말한다.

▲ 서울 지하철 신림역 3번 출구에서 노숙자를 돕기 위한 세계적 잡지 <빅이슈> 판매원이 잡지를 들고 판매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장윤혁).

그 잡지의 이름은 <BIG ISSUE>다. <BIG ISSUE>는 사회의 빈곤 문제를 주제로 하고 그 판매 대금으로 노숙자 등의 취약계층을 도우려는 취지로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됐다. 영국에서는 홈리스(homeless, 노숙인)에게만 이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홈리스들이 빈곤 문제를 다룬 잡지를 판매해서 자활의 계기를 마련하라는 취지다. 현재 영국의 <BIG ISSUE>는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베컴, 조앤 K. 롤링 등이 무료 표지 모델에 나서는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며, 현재 10개국에서 14종이 발행되고 있다. 100페이지에 달하는 <BIG ISSUE>의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취재, 기고들이 모두 일반인의 재능기부로 꾸며지고 있다.

▲ 한국의 매월 표지는 여러 유명인들의 모델 재능 기부로 채워지고 있다(사진: 빅이슈코리아 사이트 캡쳐)

2008년 10월에 <BIG ISSUE> 한국판 창간 준비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가 개설됐고, 2010년 2월에 노숙인을 돕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거리의 천사들’ 안기성 대표가 자신을 발행인으로 해서 <BIG ISSUE> 잡지 등록을 마쳤다. 같은 해 4월, 안 대표는 빅이슈 코리라란 회사 이름으로 영국 <BIG ISSUE>와 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그해 7월 5일에 한국에서 <BIG ISSUE> 창간호가 발매됐고, 이는 아시아에서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였다. 빅이슈 코리라 관계자는 “<BIG ISSUE>는 단순한 잡지 회사가 아니다. 좋은 잡지를 만들어 그것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좋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돈을 모으고, 전 세계 파트너들과 힘을 연대해서 노숙인들과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BIG ISSUE> 판매원을 약칭으로 ‘빅판’이라고 부른다. <BIG ISSUE>는 다양한 분야의 재능기부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며, 권당 가격은 5,000원으로 이중 50%인 2,500원이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이들 빅판은 서울 시내 52개 지역, 주요 대학가를 비롯해 주로 2030세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지방에서는 대전의 3개 지역에서 빅판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지역별로 한 달에 평균 약 500부씩 판매되고 있다.

<BIG ISSUE>는 매달 빅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영상을 사이트에 올린다. 지난 인터뷰 영상에서 빅판 서정국(65, 대전 갤러리아 백화점 앞 판매원) 씨는 “아직 충분히 몸을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일용직으로도 아무데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BIG ISSUE>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보고 판매를 맡겨주었다”고 했다.

▲ 판매 구조를 보여 주는 그림. 빅판들은 2주 주간 성실히 판매하면 정식 판매원이 되고 나중에는 임대주택에 거주하며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할 수도 있다(출처: 빅이슈코리아 사이트 캡쳐).

<BIG ISSUE>는 서울시와 지자체,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등의 협력으로 판매활동을 보장받으며 2013년에 사회적 기업과 우수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빅이슈>를 통해 2014년 4월 통계 기준 30명이 임대주택에 입주, 13명이 재취업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꾸준한 정기구독자의 증가로 빠르게 빅이슈 판매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빅이슈 관계자 측은 말했다.

▲ 창간 후의 기록들(출처: 빅이슈 코리아).

<BIG ISSUE>는 매월 1일, 15일에 발행된다. 발행부수는 호별로 2만부된다. <BIG ISSUE> 에서 분석한 2013년 자료에 의하면, 구독자들은 여성이 74%, 남성 26%이며, 연령별로는 20대가 60%, 30대가 26%, 40대가 5%였다. 구입자를 직업별로 보면, 학생이 47%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직장인이 39%로 나타났다. 직장인 박득정(29, 서울 마포구 합정동) 씨는 “판매원 아저씨가 아주 밝은 미소로 그저 ‘빅이슈, 빅이슈’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BIG ISSUE>에 재능을 기부한 일러스트 작가 김민지(29) 씨는 “아는 작가분의 소개로 알게 되어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주로 나에게 맡겨진 작업은 빅판 아저씨들을 일러스트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다. 막상 잡지에 내 그림이 실리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작가 김민지 씨가 재능기부를 해서 <BIG ISSUE> 77호에 실린 일러스트 작품(출처: 김민지 씨 블로그).

서울이나 대전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BIG ISSUE>가 판매되지 않는다. 대신, 빅이슈 코리아에서는 우편이나 택배를 이용해서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에게 잡지를 보내고 있다. <BIG ISSUE>는 신문처럼 정기구독을 신청할 수 있고, 신간은 물론 구간 잡지의 구매도 가능하다. 회사원 이형섭(29, 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는 “지난 12월부터 우연한 계기로 <BIG ISSUE>를 정기구독을 하고 있다. 매달 오는 것을 책꽂이에 꽂고 모으다보니 벌써 9권이나 모였다. 노숙인들을 이런 방법으로 도울 수 있으니 마음도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BIG ISSUE> 관계자는 "현재 회사 규모 상 지방으로까지 배포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2, 3년 이내에 부산 등 대도시 지방으로 판매를 넓힐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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