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또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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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또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 칼럼리스트 강석진
  • 승인 2018.04.2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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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강석진

2000년 6월 13일 오전, 필자가 근무하던 신문사에선 아침 편집회의가 예정대로 열렸다. 편집국장과 부국장, 각 부 부장들이 신문 제작 준비를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하지만 회의는 곧 중단됐다.

회의실 밖에서 들리는 "와" 하는 함성, 격하게 소식을 전하는 TV 중계음이 뒤섞여 들려와 도저히 회의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회의 참석자들도 역사적 광경을 TV로나마 보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라 "보고 나서 회의 합시다"라는 말이 누구의 입이라고 할 것 없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차 순안 공항에 도착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환영을 받는 순간이었다.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다.

통일이 눈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거쳐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으로서는 세 번째로 만났다. 무대는 판문점. 콘크리트로 그어진 남북 분계선을 두 정상은 한 걸음 왔다가 다시 갔다가 넘어옴으로써 영원할 것만 같던 분단의 상징을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역사는 콘크리트 블록을 넘나드는 두 정상의 작은 몇 걸음을 분단 극복의 큰 걸음으로 기록하게 될 것인가?

그날 합의된 내용도 많고 29일까지 전해지는 남북 추가 합의 발표 내용도 근사하다. 미디어들은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회담 내용과 전망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도 모이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나눈다. 해외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남북정상회담과 앞으로 열릴 북미(미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대로 악연의 굵은 밧줄을 풀어내고 이 땅에 평화의 축복이 한껏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축복을 받을 자격도 충분하지 않은가? 남북한 동포가 봉건왕조의 악정, 식민 지배의 처절함, 전쟁과 분단의 시련을 겪어 온 지도 100년을 훌쩍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진정 분단 극복의 큰 무대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이번 회담에 내건 슬로건은 ‘평화, 새로운 시작’이었다. 김정은도 방명록에 "새로운 력(역)사는 이제부터"라고 썼다. 2000년에도, 2007년에도 우리는 새로운 역사 전개,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출발 등이라고 말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표됐을 때도,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왔을 때도 새 시대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왜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다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게 된 데는 북한이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 유엔 제재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의 규정에 반해서 시간을 끌면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 왔던 것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어 왔다.

북한 국가 체제도 평화와 거리가 멀다. 대내적으로 공포, 대외적으로 긴장을 먹고 사는 전체주의 국가로 늘 인권 문제와 주민의 빈곤 문제를 안고 있어 국제 사회의 간섭과 비난을 불러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과 미국에도 후퇴의 원인은 있다. 우리의 문제로 좁혀 보면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크게 눈에 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에 대한 대응은 열탕(熱湯)과 빙탕(氷湯)을 오간다. 상대로 하여금 큰 기대감과 실망감을 오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북 정책은 늘 진영 간 대립의 한 축이 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두 가지에 유념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내 컨센서스 형성에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보수 세력이 새로운 출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하고, 그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권의 고언을 북한의 잘못된 결정을 막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 독일(서독)의 여야 정당이 통일의 길을 함께 걸어갔듯이 우리도 여야가 분단 극복의 길을 함께 가야 전진이 더디더라도 후퇴를 막을 수 있다. 야권과 협치하는 자세를 지금이라도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비핵화 프로세스에 난제가 많고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비핵화 이후에도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과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어려운 일들이 첩첩이 쌓여 있고 비용이 엄청 들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논란에서 보듯이 후폭풍을 불러 올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섣부른 기대를 주지 말아야 하고, 자의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검증과 계약을 요구해 나가야 한다.

평화는 이성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공포나 격한 감정은 그 대척점에 선다. 신중함은 희망을 잉태하지만 일방적인 낙관론은 실패를 잉태한다. 이것이 ‘새로운 출발’을 여러 번 겪으면서 얻게 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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