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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민간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통일'에 나서야 할 때”

기사승인 2018.04.26  23: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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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지켜보는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윤태원 교수 인터뷰..."독일처럼 주변국 지지 받아야" / 이종재 기자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노무현 정부 이후 10년 6개월만에 열리는데다 북한 측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하는 등 전례없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 향후 본격적인 남북교류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는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긍정적인 슬로건이 내걸렸다. 오랜만에 원만한 관계를 보이고 있는 남북의 모습 덕분에 ‘통일’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직까지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통일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할 점은 무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독일의 통일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 윤태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경성대학교 글로컬문화학부 윤태원 교수(사진: 취재기자 이종재)

Q: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통일 이전 동서독의 상황은?

A: 2차 대전 이후에는 서독과 동독은 각각 연합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통치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핵심 도시이자 수도인 베를린도 마찬가지로 동서로 분할됐다. 지금 한반도에서의 남북한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동서독도 서로 체제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동독은 스포츠를 육성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선수에게 약물을 주입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경쟁만 한 건 아니다. 의외로 동서독 간의 인적 교류는 활발했다. 동독 국민의 경우 은퇴한 사람에는 제한됐지만, 동서독 간의 방문도 가능했고, 서신 교환이나 방송 매체의 수신도 허락됐다.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특히 서독에서 동질성을 지키려는 정책을 많이 개발하고 실행에 옮긴 편이었다.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체크포인트 찰리(사진: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Q: 설명을 들으니, 동서독도 우리의 남북정상회담처럼 정부 차원의 회담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데.

A: 서독과 동독이 앞서 말한 정책들로 통일의 토대를 조성하긴 했기 때문에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의 남북정상회담처럼 양쪽 정상끼리 모여 통일을 논의한 적은 없었다. 위에부터가 아닌 아래에서부터의 통일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도 독일 사례처럼 아래로부터의 통일 준비가 필요하다.

Q: 통일로 가려면 서로 소통 외에도, 주변국을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수적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외교 부문에서 배워야 할 대목이 있다면?

A: 독일의 통일이 무르익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주변 강대국의 반대였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큰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가 가장 거셌다. 프랑스는 ‘독일이 통일되면 이전처럼 다시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며 반대했다. 독일이 통일되려면 이 두 국가를 반드시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서독 당국은 프랑스와 같은 이웃국가에게 평화를 유지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쉽게 말하면, 신뢰감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통일 후에도 나토(NATO)군이 독일에 주둔할 수 있었다. 또 러시아에게도 위협적인 나라가 아님을 설명했다. 동시에 동독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을 먹여 살릴 여력이 없던 러시아에게 철군 비용은 물론 이후 경제적 지원까지 약속했다. 러시아가 통일을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도 통일을 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특히 남북통일이 주변국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내세워 적극적인 설득전을 펴나갈 필요가 있다.

동방 정책의 선구자인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와 동독의 빌리 슈토프 수상의 만남(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Q: 독일의 통일 전후로 현지에서 유학을 한 걸로 아는데, 현장에서 느꼈던 당시의 분위기는 어땠나?

A: 독일에서 유학할 땐 동서독의 갈등이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하는 한국인은 월셋방을 구하는 게 엄청나게 힘들었다. 처음엔 한국인을 일부러 피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사람에게 먼저 월세방을 내주고 있었던 거다. 정부 차원으로 진행한 정책이 아니었는데도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서독인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들은 진정으로 동독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Q: 본받을 만한 대목인 것 같다. 독일에 비해 우리의 모습을 진단해본다면?

A: 좋은 질문이다. 당시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북한 주민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탈북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의 통일은 소원이라고 하면서 정작 탈북자를 보며 ‘간첩 아니야?’ 같은 시선을 보내곤 한다. 자유를 찾아 탈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북한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Q: 반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남북과 동서독 간의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달라.

A: 앞서 말한 것처럼 동서독은 체제 갈등 속에서도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북한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지만, 당시 동서독에 비하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보다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훨씬 큰 편이다. 동독은 서독에 비해 가난했을 뿐이지 사회주의 국가 중에선 굉장히 부유한 국가였다. 하지만 남북의 경제 격차는 동서독의 차이에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Q: 방금 설명한대로 경제 분야에서 독일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A: 당연한 말이지만 통일을 준비하려면 사회 문화적 교류도 중요하고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다고 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방면으로 남북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게 통일 준비의 시작이다. 통일 후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Q: 하지만 북한과 교류하거나, 북한에 지원하는 데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데.

A: 현물 지원이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이전처럼 북한에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독이 동독을 지원한 것처럼 현물로 지원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또 이전처럼 남북 교류를 비공식적으로 하지 말고, 국회의 동의를 구해 국민들에게 공개한 상태에서 지원하고 교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밀실 지원’이니 ‘불법 지원’이니 같은 시비가 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남북한의 교류와 지원이 단순히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남북 통일을 준비하는 필수 과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Q: 마지막으로 남북 통일의 가능성 내지는 통일에 대한 전망을 말해달라.

A: 통일은 우리가 원할 때에 오지 않는다. 동서독이 교류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통일 후의 여파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 경제력의 70~80% 수준에 머문다. 이만큼 따라오는 데도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남북 간의 교류와 지원은 통일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북은 30년 전 동서독을 보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준비 없이 통일을 맞이하면, 통일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점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재기자 이종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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