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어글리 슈즈(ugly shoes)’가 새 트렌드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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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어글리 슈즈(ugly shoes)’가 새 트렌드로 떴다
  • 취재기자 박수창
  • 승인 2018.04.18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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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바지에 어울리고 편한 게 장점...일부 100만 원 넘는 고가도 팔려 / 박수창 기자

얼마 전 대학생 이도희(24, 부산 남구) 씨는 친구가 새로 샀다며 자랑하는 신발을 보고 경악했다. 친구가 사온 신발이 자랑할 만큼 멋진 디자인의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 씨는 당황한 마음을 숨긴 채 어떤 신발인지 물어봤다. 이 씨의 친구는 "이게 바로 요새 유행하는 '어글리 슈즈'라는 거다”며 “휴지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지만, 그게 이 신발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어글리 디자인 신발의 대표적 예인 나이키 ’에어맥스 플러스‘(사진: 취재기자 박수창)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못생긴 신발 ‘어글리 슈즈’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신발의 유행 흐름이 이전과 180도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3~4년간 단순하고 날렵한 느낌의 ‘미니멀‘ 디자인의 신발이 대세였다. 어글리 슈즈의 유행은 더 이상 보기 좋고 세련된 형태의 신발 디자인의 핵심이 아님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신발 모양을 말하는 미니멀 디자인 신발의 대표적 예인 아디다스 ’슈퍼스타‘(사진: 취재기자 박수창)

영국에선 어글리 슈즈를 아빠가 마트 갈 때 신을 것 같은 신발이라는 의미로 ‘대드 슈즈(dad shoes)'라고도 부른다. 어글리 슈즈는 울퉁불퉁하고 넓고 높은 고무밑창, 촌스러운 색의 배합을 특징으로 나온 제품이다. 기존 스니커즈와 달리 때 어두운 색을 무기로 삼기도 한다. 위 사진의 신발을 보면 늘씬하기보다는 둥근 형태로 보여 발이 작아 보이며 높은 밑창으로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있다.

이미 외국에선 어글리 슈즈가 크게 유행했다. 모델 ‘카일리 제너’, ‘지지 하디드’ 등 패셔니스타들이 신고 나오면서 유행에 불을 지폈다. 또한,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는 어글리 슈즈의 인기를 ‘절정에 다다른 어글리 스니커즈의 시대’라고 평했다.

어글리 슈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어글리 슈즈는 오래돼 보이는 ‘빈티지’, 옛날 스타일의 ‘복고’,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norm core)’ 등의 최신 유행 트렌드뿐 아니라 편안한 착용감을 모두 충족한다. 평소 패션잡지를 정기구독할 정도로 유행에 관심이 많은 이유진(24, 경남 창원시 의창구) 씨는 휠라에서 출시한 어글리 슈즈 ‘디스럽터‘를 구매했다. 이 씨는 “디스럽터의 옛날 신발 같은 투박한 디자인이 매력이 있다”며 “요즘 유즘 트렌드와 딱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어글리 슈즈의 인기는 ‘오버핏(overfit)’ 의류의 유행과도 관련이 있다. 오버핏 의류란 사람의 원래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는 트렌드로 최근 들어 패션계에서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옷이 이전에 비해 커졌으니 여기에 맞춰 신발도 달라지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평소 오버핏 의류를 자주 입고 딱 붙는 바지를 싫어하던 김재민(24, 충남 보령시) 씨는 엄브로에서 출시한 어글리 슈즈 ’범피‘를 구매했다. 김 씨는 “자주 입는 와이드 팬츠(통이 큰 바지)에 어울리는 신발을 찾다가 상대적으로 고무밑창이 큰 어글리 슈즈를 알게 됐다”며 “슬림한 형태의 일반 스니커즈보다 헐렁한 옷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어글리 슈즈 유행의 시작은 아디다스와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협업하여 제작한 스니커즈 ’오즈위고(Ozweego)‘였다. 이어서 아디다스는 뮤지션 ‘칸예 웨스트’와 손잡고 ‘이지러너(Yeezy Rrunner)’를 제작했다. 리복은 프랑스 의류 브랜드 ‘베트멍’과 협업하여 ‘인스타 펌프 퓨리(Insta Pump Fury)’를 선보였다. 스포츠 브랜드의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올리며 어글리 슈즈 유행을 주도했다.

여러 스포츠 브랜드에서 어글리 슈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고급 브랜드들도 어글리 슈즈를 출시했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에스’(약 170만 원)를 시작으로 디올 옴므의 ‘B22스니커즈’(약 150만 원), 구찌의 ’롸이톤’(약 120만 원) 등 100만 원을 호가하는 못난이 스니커즈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비싼 신발을 구매하는 젊은이들은 부유층이 아니라 맘먹고 돈을 모아 신발을 구입하는 신발 패션 마니아 층이다. 신발매장에서 알바를 하는 권솔하(23, 울산 동구) 씨가 바로 신발 패션 마니아다. 권 씨는 아르바이트로 꾸준히 돈을 모아 자신이 근무하는 매장에서 170만 원에 트리플에스를 구매했다. 권 씨는 “지저분하고 투박한 느낌이 다른 어글리 슈즈보다 잘 나타나 있다”며 “무거워 보이지만 편하고 가벼워서 제 값을 하는 좋은 신발”이라고 말했다.

어글리 디자인의 하나인 발렌시아가의 트리플에스(사진: 취재기자 박수창)

고급 브랜드에서 출시한 어글리 슈즈를 가격이 비싸서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저가형 어글리 슈즈를 찾으면 된다. 휠라의 ‘레이‘(약 6만 원), 스케쳐스의 ’딜라이트‘(약 10만 원)가 대표적 저가 어글리 슈즈다. 이들은 10만 원 이하의 가격대지만 뒤쳐지지 않는 퀄리티로 사랑받고 있다. 구찌의 롸이톤을 보고 처음 어글리 슈즈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 손민균(24, 경남 밀양시) 씨는 100만 원 상당의 가격에 구매를 포기했다. 그러던 중, 손 씨는 관광차 방문했던 미국에서 스케쳐스의 딜라이트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결심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할인가 5만 원에 딜라이트 상품을 구매했다”며 “(딜라이트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디자인과 디테일에 신경을 쓴 티가 나고 기능적 측면도 뛰어나다”고 전했다.

중저가 어글리 슈즈 브랜드 스케쳐스의 딜라이트(사진: 취재기자 박수창)

어글리 슈즈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다. 국내 정서상 이해하기 어려운 패션이라는 게 그들의 의견이다. 평소 어글리 슈즈가 별로라고 생각하던 대학생 김종엽(24, 서울 서대문구) 씨는 어글리 슈즈의 디자인이 통상적으로 아름답다는 기준과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기능적인 측면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못생겼다”며 “도무지 비싼 돈 주고 살 신발로는 안 보인다”고 말했다.

어글리 슈즈가 유행이 지속되면서 일종의 새로운 디자인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경성대 패션디자인학과 박숙현 교수는 최근 출시된 어글리 슈즈는 초기의 극단적인 투박함을 극복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신발로 진화 중이라고 보았다. 박 교수는 “어글리 슈즈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처럼 핫한 아이템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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