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원장을 둘러싼 의혹... 언론보도도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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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원장을 둘러싼 의혹... 언론보도도 적폐다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8.04.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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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양혜승
편집위원 양혜승

<로마의 휴일>은 미국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1954년에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펙이 출연한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자 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데뷔작으로 너무 유명한 영화다. 당시는 마릴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같은 글래머 여배우들이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던 때라 오드리 헵번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가냘픈 이미지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아직까지도 ‘헵번 스타일’로 통하는 짧은 커트머리 또한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 ‘진실의 입’도 이 영화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런데 ‘로마의 휴일’이 다시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판에 코미디로 살아났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김기식. 최근 임명된 금융감독원장이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의원활동을 했다.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재벌 규제 등 경제개혁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가보훈처,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을 소관하는 상임위원회다. 어쨌거나 19대 국회활동을 통해 김 원장은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단체라 할 수 있는 참여연대 출신이다. 참여연대는 정치 및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 활동을 주로 하는 시민단체다.

‘그랬던’ 김기식 원장이 야당들로부터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그 의혹의 핵심은 그가 국회의원 시절에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4년 3월에는 한국거래소의 돈을 받아 2박 3일 동안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다. 한국거래소의 우즈베키스탄 증권거래 시스템 구축을 위한 부속계약서 체결 행사에 참석했다 한다. 2015년 5월에는 대외경제정책연구소의 돈을 받아 9박 10일의 일정으로 미국과 유럽을 방문했다. 당시 김 원장은 여러 경제 관련 기구와 기관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한다. 문제는 휴일을 끼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머문 2박 3일의 일정이 주로 개인 일정이었다는 점이다. ‘로마의 휴일’이라고 언급되는 바로 그 대목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김 원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야당이 지나친 정치 공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원장의 출장은 공익 목적이었고, 자리에서 물러날 정도로 부적절한 처신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인 19대 국회까지는 피감기관 지원으로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관행’이었다고도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로비성 출장’이라고 주장한다. ‘포괄적 뇌물수수’일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융감독원장이라는 자리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그야말로 중요한 자리이기에 청렴성이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다. ‘관행’으로 덮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쟁점은 간단하지만 정치권의 속내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의 정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적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하면서 야당의 공세를 이겨냈던 그 맷집을 발휘할 요량으로도 보인다.

야당도 그 태세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김기식 원장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듯하다. 문재인 정부 인사정책의 독선과 오만함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로 선거를 치르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소위 ‘좌파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재벌개혁에 태클을 걸기에 이만한 호재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투운동 등으로 인해 진보세력의 도덕성이 흠집난 상태에서 이번 건은 진보세력에게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든 조만간 결론은 날 것이다. 청와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판단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에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 과연 적법한 것인지 따져달라는 것이다. 중앙선관위에서 불법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너무나 흔했던 ‘관행’을 불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것은 청와대의 결심이다. 야당의 저항을 감수하고라도 ‘김기식 구하기’에 나선다면 그 후폭풍은 정부와 여당의 몫이다. 국민들이 야당의 주장에 동의하고 정부 인사정책의 독선과 오만함을 비난한다면 6월 지방선거의 결과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진통 없는 출산은 없다.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고통과 혼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위법성 혹은 도덕성 논쟁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한 번쯤 거치고 가야 하는 통과의례다. ‘관행’은 영원할 수 없다. 관행이 ‘낡았다’는 지적을 받는 순간 그것은 관행으로 설 자리를 잃는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이 너무 아쉽다. 김기식 원장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언론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언론은 정치권의 충돌과 갈등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공부하고 발굴하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그저 ‘중계 저널리즘’에 충실한 모양새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의 언어는 갈등의 언어다. 하지만 언론은 정치권의 언어를 날 것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서야 거친 표현과 언사가 난무한다고 해도 언론은 자신들만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언어를 구사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국민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게 도울 수 있다. 김 원장의 2015년 유럽 출장에 동행했다는 인턴을 ‘여비서’라고 표현하는 것도 사안의 본질을 오도하는 잘못된 방식이다. 은연중에 미투운동과 결부지어 도덕성을 조금이라고 더 흠집 내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해당 인턴의 SNS 사진을 게재함으로써 사생활 침해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황제 외유’나 ‘땡처리 외유’ 등 정치권의 자극적인 프레임들을 고스란히 옮겨와 보도를 일삼는 보도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서두에 언급했던 ‘로마의 휴일’도 사실은 일부 신문과 방송에서 만들어낸 자극적인 프레임이다.

언론은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한지를 짚어주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이다. 이번 일이 김기식 원장 한 명의 사퇴 여부와 관련된 문제로 끝날 일은 아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들이 누려왔던, 그리고 누리고 있는 수많은 특혜가 어떤 것들인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런 특혜를 누려왔는지,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는 데 그런 특혜들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 문제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들을 개선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국민들에게 면밀하게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언론도 적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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